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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2015년 3월 1일 09시 38분 등록

어머니를 집에 모셔다 드리고 저는 지금 뉴욕에 와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3달의 동거를 통해 어머니와 저 사이에는 이전에 없었던 정서적 밀도가 생겼습니다. 어머니와 헤어지는 것이 참 힘들었지만  예정된 스케줄에 따라 저는 뉴욕으로 날아와야 했습니다. 2010년부터 매년 2-4월 사이에 뉴욕을 방문하는 것은 저의 연례행사입니다. 어깨에 진 짐이 상대적으로 무거운 저에게 두 주 동안의 뉴욕 생활은 모든 물리적 의무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의 시간입니다. 손에 들린 감사일기 덕분에 이번에는 좀 더 질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상황이 달라진 건 없습니다. 뉴욕은 여전히 저의 모든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줄 세상 최고의 도시입니다. 그리고 제 옆에 있는 친구 역시 이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뉴욕의 매력이나 친구의 매력 때문에 더 행복한 건 아닙니다. 굳이 이유를 대라면 행복하기로 결정한 저의 ‘선택’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라온 배경과 문화가 전혀 다른 친구와는 자주 부딪힐 요소가 생깁니다. 그러나 그런 부딪힘이 이제는 더 이상 저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부딪히는 순간은 언제나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한 번 실패한 관계에서 얻은 죄책감의 앙금이 매번 새 관계를 위협했습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처를 덜 줄 ‘괜찮은’ 사람을 선택해야한다는 강박이 제 안에 있었고, 갈등이 생길 때마다 그가 바른 사람인지 의심해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강박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그가 최선이라고 내 스스로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힘이 내게 있기 때문입니다. 

 

언짢은 감정이 일어나면 언제나 평화주의자인 제가 참았습니다. 인내는 모든 인생의 스승들이 가르치는 인생 최고의 덕목입니다. 그러나 다른 옵션이 없어서, 바른 선택을 할 용기가 없어서 인내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라면 그 순간 불행을 자초하는 희생자가 됩니다. 제가 모든 관계에서 희생자 마인드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70퍼센트 이상이 ‘쓰기’ 덕분입니다. 2007년 모닝페이지가 제게 다가오기 전부터 쓰기는 제 옆에 있었고, 가장 절망의 순간마다 저를 건져주었습니다. 그러나, 모닝페이지 이전의 쓰기는 ‘문제’를 대면할 용기 보다는 인내하는 쪽으로 저의 행동패턴을 강화시킨 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상황을 인지해도 용기있는 행동까지 나아가는데는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참는 것이 제게는 가장 편하고 에너지를 가장 쓰지 않는 최고로 쉬운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는 것의 결과는 언제나 초라했습니다. 표면적인 평화는 얻었지만 가슴 속에서는 하루에도 열 두번 이상 깊은 균열이 일어났습니다. 참는 저에게 사람들은 언제나 칭찬을 얹어주었고 저는 다시 그것에 길들여졌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글쓰기 방식인 모닝페이지와 함께 제가 가장 많이 하게 된 것은 갈등 상황을 피하고 언제나 참는 것을 선택하는 자신과 싸우는 일이었습니다. 좀 더 그럴싸한 명분을 가진 싸움이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알았습니다. 참는 것과 잘 싸우면 내 인생에 분명한 변화가 생길 거라는 것을요. 그래서 힘들 때마다 더 열심히 썼는지도 모릅니다. 매일 쓰고 있으면 힘들더라도 궁극적인 만족과 유대를 주는 쪽으로 선택하는 일이 좀 더 쉬웠습니다. 참아야 하는 경우라도 ‘자발적인’ 선택이 아닌 경우는 경계했습니다. 점차 제 안에서 분노가 사라졌습니다. 점차 제 자신이 좋아졌습니다. 제 안에서 자유와 행복이 흘러나가 점차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습니다.


쓰지 않고 있을 때는 자발적인 의지도 약해집니다. 똑바로 섰다고 느끼는 순간이 가장 넘어지기 쉬운 순간입니다. 매일 써야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잘 써야 합니다. 전통적인 일기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잘 쓰고 있는 한, 저는 제 안에서 모든 것을 얻습니다. 겸손도 행복도 용납도, 지금 이 순간을 마주할 용기와 힘과, 그것을 누릴 감각까지도. 자신과 평화하는 순간이 저에게는 자유입니다. 사랑의 에너지로  휩싸이는 순간입니다. 네 맞습니다. 저는 ‘쓰기’의 광신자입니다. 쓰기의 힘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 마음이 두근거리는 쓰기의 전도사입니다. 쓰기가 함께 하는 한,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넘어져도 바로 일어날 것입니다. 일에 대한 동기 역시 경쟁심이 아니라 내적인 열정에서 얻을  것입니다.


모닝페이지의 역할을 지금은 감사일기가 이어가고 있습니다. 감사일기는 빠른 시간에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바꾸어 줄 수 있어 모닝페이지와는 다른 면에서 귀한 도구입니다. 제가 지금 쓰는 일기는 얽힌 감정들을 풀어내고 마음에 공간을 만들어주는 모닝페이지의 장점과, 매 순간 닥친 것을 앞에 놓고 다른 시각으로 모험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감사일기의 장점을 모은 ‘감사+일기’입니다. 

 

또 한 번의 정신적 진화가 필요한 시점에 감사일기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과거의 모든 선택들을 용서하고 그것들과 진정으로 화해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 어느 것도 나를 해치지 못한다는 것을 문자가 아닌 가슴으로 납득합니다. 모든 것은 나를 상처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고 세우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그래서 두려움 대신 용기를 선택합니다. ‘순간을 산다’는 것은 그것들이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온전하게 누리기 위해,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는 내 안의 부정적인 것들과 대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는 피하지 않습니다. 신은 정말이지 절묘한 때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감사일기를 저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남과 경쟁하지 않고 오로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선택을 하도록 날마다 기도하고 훈련합니다. 그 과정 속에 감사일기가 저와 함께 합니다.


뉴욕에 왔으니, 여러분들에게 뉴욕 소식을 전하면 좋을텐데, 제 생각과 달리 오늘 편지는 이렇게 흘러왔네요. 그래도 좋습니다. 이게 제가 진심으로 쓰고 싶은 편지였는지도 모르니까요. 쓰는 것은, 재능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타고난 권리(born right)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저께는 44번가에 있는 벨라스코(Belasco) 극장에서 <헤드윅>을 보았습니다. 정확한 제목은 Hedwig and the Angry Inch입니다. 앵그리인치는 헤드윅의 락밴드 이름이지만 또 다른 텍스트적 의미도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은 찾아보세요. 영화로도 나왔고, 같은 제목의 뮤지컬 넘버도 있으니까요.


암튼 운좋게도 로터리(lottery) 티켓에 당첨이 되어 37불에 오케스트라 석에서 감상을 했답니다. 감사일기에 ‘당첨을 감사합니다’ 미리 선언하고 친구를 졸라 저녁에 시내에 나가 로터리에 응모했는데, 정말 당첨이 된 겁니다. 오프 브로드웨이 쇼였고, 오프 브로드웨이적인 요소가 많은 헤드윅은 당당히 작년부터 브로드웨이 무대에 입성해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원작자이자 오리지널 헤드윅이었던 존 카메론 미첼이 마침 제가 이곳에 있는 동안 헤드윅을 맡게 되었으니 저는 얼마나 운이 좋은지요. 무릎 부상을 딛고 불편한 가운데서도 그는 작은 몸으로 무대를 꽉 채워주었습니다. 가발과 옷을 벗어던진 채 극적으로 무대에 등장해 Midnight Radio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은 생각할수록 압권입니다. 헤드윅의 관객이라면 누구나 잊지 못할 명장면이지요. 무대공연의 감동은 본 사람만의 것이어서 여러분들에게 적절하게 전할 수가 없는 게 유감입니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온전한 한 인간으로, 마침내 스스로를 구속했던 감옥에서 자신을 해방하는 헤드윅의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해결의 열쇠를 밖이 아닌 자신 안에서 찾아낸 것이지요. 요즘 제 감사일기에 ‘결정과 자유’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해서일까요, 그 장면이 특히나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를 가두는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입니다. 남이 아니라 나라는 사실이 감사합니다. 해결이 내 안에 있고,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이니까요. 해결할 힘을 내 손에 주신 그분의 사랑에 그 어느 때보다 감사하고 있습니다. 자유의지 말입니다. 이 세상 모든 죄악과 불행의 씨앗이라고 생각한 그것이 꼭 같은 이유로 모든 불행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는 걸, 날마다 ‘선택’하면서 느낍니다. 선택할 자유가 내게 주어졌다는 것, 그것이 그렇게 큰 사랑의 선물인 줄 몰랐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능력이 내게 있다면 내가 대신 다 해주고 싶습니다. 부족함을 참아주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해줄 수 있는데도 참고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고 배울 수 있도록 바라봐주는 것은 정말 인내가 필요한 일입니다.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이 요구되는 힘든 일이지요. 온전한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동시성일까요, 어제는 하루 종일 5번가에 있는 반즈앤노블 서점 <Self-Improvement>코너에서 보냈습니다. 사려던 책은 거의 없었지만 눈에 띄는 제목의 책들을 꺼내 책장 사이의 복도에 퍼질러 앉아 읽다보니 밥 먹는 일도 잊었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책들이 원서로 그곳에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특히 새로 나온 웨인 다이어의 책 <I Can See Clearly Now>를 다른 책보다 좀 더 공을 들여 읽으며 행복했습니다. 저자로서 심혈을 기울여 썼을 책의 가장 마지막 문장들이 요즘 내가 생각하는 주제와 관련,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노트에 적어온 덕분에 여기 여러분과 나눌 수 있어 감사합니다.


I encourage you to make a commitment to be absolutely faithful to that which exists nowhere but within yourself. This is the great secret for seeing ever more clearly and living your life from a place of passion and purpose.

어디에도 없고 다만 당신 자신 안에만 있는 것에 절대적으로 충실하겠다는 다짐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당신 인생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고 열정과 목적을 가지고  살 수 있게 하는 위대한 비밀이기 때문이지요. 


3월 21일-4월 18일 한달 동안 감사일기를 함께 쓸 3기를 모집합니다. 관심있는 분은 저에게 메일(loishan@hanmail.net)로 그 이유를 20줄 이상 적어서 3월 18일까지 보내주세요. 그 기간 동안 기꺼이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전념할 분이면 좋겠습니다.

IP *.14.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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