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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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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12일 09시 24분 등록


1.

나는 배움을 즐긴다. 즐길 뿐만 아니라 실제로 자주, 많이, 부지런히 배운다. 배움은 나의 일상이다. 신형철은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라고 썼다. 그 말을 부러움이나 절망감 없이 멋지다고 여겨왔다. 정말 그의 삶이 부럽지는 않았다. 읽고 쓰는 즐거움을 몰라서가 아니라, 나는 여행, 만남, 와인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형철의 푯대를 향한 듯한 헌신적 모습을 갈망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가 오롯히 하나의 우물을 파는 느낌이라면, 나는 산만하게 들쑤시고 다닌다.


2.

엊그제 (2014년 1월 5일자) 신문을 읽다가 '울리히 벡'의 부음 기사를 읽었다. 『위험사회』라는 저서로 유명한 사회학의 거장 벡은(1944~2015)은 산업사회를 성찰했고 근대화의 길 하나를 제시했다. 신문 기사를 읽어서 알게 된 지식은 아니다. 나는 20세기 후반을 빛낸 사상가들의 이름, 주저, 영향력을 많이 안다. 20대의 7~8년을 서점과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다.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나는 참 많은 걸 알지만, 제대로 아는 것들이 거의 없다.


3.

롤랑 바르트가 떠오른다. 수잔 손택은 『우울한 열정』에서 롤랑 바르트를 추모하며, 그를 잘 알지 못하는 데도 그것에 대해 말하는 유형이라고 지적했다.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지성의 깊이가 상대적이라는 사실도 안다. 최고의 식견을 가진 전문가는 자기보다 얕은 깊이의 동종업계 전문가들을 답답해한다. 답답함의 역사도 유구하다.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의 답답한 지혜에 대응하기 위해 대화편을 썼고(기원전 4세기), 월터 카우프만은 "시사적인 것을 다루기 좋아한 반면 견실함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한나 아렌트를 저널리스트 유형의 학자라 평했다(20세기).


4.

내가 롤랑 바르트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매혹적인 통찰 외에도) 그와 내가 경박함이라는 공통점을 지녔기 때문은 아닐까. 아는 것과 말하는 것의 불일치를 경박함이라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경박이라는 단어가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들만의 리그를 대상으로 말하는 중이다. (일반인을 제외한, 최고 지성인들끼리의 비교.) 바르트가 프랑스 최고 대학의 교수 자리에까지 오른 데에는 애인 푸코의 추천이 얼마간 기여했을 테고, 훗날 교수들이 바르트의 임용을 후회했다는 풍문도 있으니, 바르트의 경박함은 따져 볼만한 문제다. 학자들의 명실상부함도 여러 수준일 테니까. 그의 명성은 실력에 부합하는 걸까? 


5.

앎을 내세울 게 못된다면, 나는 어디에서 자부심을 찾을 수 있을까? 나는 분명 부지런히 살고, 미덕을 추구하며, 잘 살려고 노력하는데...! 오랫동안 고민해 온 질문이다. 오늘 문득 나도 무엇인가에 헌신해 왔음을 발견했다. 조금 민망하지만, 신형철과 비슷하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신바람나서 말하거니와, 나는 세상만사 모든 순간으로부터 배운다. 그것은 내 삶의 거의 전부다."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이 말은 나를 기쁘게 한다. 여행을 떠나도, 책을 펼쳐도, 사람을 만나도 나는 배우고 또 배운다. 삶은 인생을 알아가는 수업이고, 나는 100년짜리 학생이다. 이것이 학습자로서의 내 신념이다.


와우! 내게도 헌신해 온 영역이 있다니...

오늘 나는, 아르키메데스가 된 기분이다. 유레카!


유레카.jpg

<그림출처:ⓒdebrfreeinduba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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