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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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돌산 옆의 섬에서 오후를 보내고 해남에서 저녁 몇 시간을 지냈습니다. 다시 변산 노을 곁에 머물렀다가 다시 나의 숲에 이르렀습니다. 곰처럼 자고 일어나 거울을 보니 얼굴이 부어있습니다. ‘잠은 제때 자고 사는 겨? 밥은?’ 거울 너머에 감각을 지니지 않은 그 낯선 남자가 내게 말을 건넵니다. ‘그러게… 밥은 잘 먹는데, 이따금 이렇게 잠을 놓치는구먼!’ 감각을 가진 거울 이쪽의 내가 그에게 답을 합니다.
여수와 해남과 변산, 여정으로만 보면 좋은 여행 코스지만 1박 2일의 그 길은 모두 강연을 위해 달려가고 달려온 길이었습니다. 여수에서는 상처받은 어른들을 만났고 해남에서는 도서관을 찾은 고등학생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그 지역의 책 읽는 사람들을 만나 강연했습니다. 변산에서는 상처 있는 사람들을 돕는 사람들을 위해 강연했습니다. 들어보니 여수에서 만난 어른들의 상처는 생존의 문제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이틀간 만난 세 집단 중에 그들이 가장 어둡고 예민하고 거친 표정이었습니다. 한편 해남의 집단 표정은 호기심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변산에 모인 집단의 표정은 가장 밝고 따뜻했습니다. 그중 몇몇의 얼굴은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맑고 투명한!’
나는 세 집단 모두에게 삶에 세 가지 차원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 하나는 오직 생존을 위한 삶이고 다른 하나는 충만하게 사는 삶이다. 당신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 어떤 삶을 위해 이렇게 강연을 듣고 또 공부하고 있느냐? 우리 삶을 구원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은 돈이거나 더 높은 지위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장식과 거죽을 추구한다. 더 큰 집과 비싼 차와 액세서리, 혹은 더 넓은 지식을 가진 존재가 자신이라고 보여주고 싶어한다. 나와 그 거죽을 동일시하여 물질적 우상을 섬기고 사는 그들의 삶이다. 그들의 연봉이 천만 원이든 일억 원이든 그 이상이든 이들이 추구하는 삶의 차원은 다르지 않다.’
‘충만한 삶을 추구하며 사는 이들의 모습은 다르다. 그들은 하룻밤의 잠을 소중하게 여긴다. 그들은 한 끼의 밥을 귀히 만난다. 지금 마주한 밥을 다시 만나지 못할 밥으로 여기며 밥을 먹는다. 지금 마주한 당장의 사랑에 온 감각을 열어 사랑할 줄 안다. 바람 한 줄기 햇빛 한 조각을 놓치지 않는다. 다가오는 모든 순간순간을 더 많이 느끼고 누릴 줄 안다. 이게 충만한 삶이다. 나의 수입이 적어서 누릴 수 없는 것들이 아닌 것을 누릴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당신은 어느 쪽이냐?’
해남의 도서관을 찾은 고등학생들뿐만 아니라 최근 찾아간 다른 고등학교의 인문학 특강에서도 똑같이 물었습니다. ‘그대들은 어떤 삶을 위해 공부하고 있느냐?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더 많은 장식을 구할 무기를 얻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더 깊고 충만한 삶을 위해서냐?’
오늘 편지는 두 가지 질문 혹은 의문을 남기고 여기서 줄이겠습니다. 그 하나는 그대 삶은 어떤 차원을 향하고 있느냐는 질문일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생존과 충만의 차원 너머에 삶의 또 다른 차원 하나가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는데 그것이 있다면 과연 무엇이겠느냐는 것입니다. 거울 속의 나와 거울 밖의 나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해 다음 주 편지에 이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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