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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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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2일 14시 54분 등록

나이 들면서 단순한 삶을 더 사모하게 된다. 내가 단순한 삶을 사모하는 이유 역시 단순하다. 삶에 더 이상 끌려다니고 싶지 않아서다. 50년의 내 인생을 돌아보면 내가 삶을 이끈 것보다 삶이 나를 끌어온 분량이 훨씬 크다. 일을 잘 저지르고 앞에 나서길 좋아한 나였지만, 삶의 내막을 면밀히 뒤져보면 얼마나 수동적인 삶을 살았는지가 보인다. 꽤나 주도적인 삶을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다. 그래서 결론은 남은 인생은 좀 더 주도적으로 살자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삶이 나를 끌고 가지 못하도록 단순화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 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 '절제'라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나는 가장 작지만 민감한 절제 목표를 세웠다. 그건 사고 싶은 것을 덜 사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내 절제를 필요로 하는 '책'을 덜 사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책을 정말 이전에 비하면 덜 산다. 그러나 한 가지 절제를 일부러 하지 않는 아이템이 있는데 그건 노트다.


나는 노트'광'이다. 나에게 노트는 창조적 사치의 영역이다. 어떤 소비가 기분을 좋게 하고 삶의 질을 조금이라도 높인다면 그건 창조적 소비라 할 수 있다. 내게는 노트가 그렇다. 사실 여행을 많이 하는 나로서는 어디서든 괜찮은 노트와 만나게 된다. 공 들여 잘 만든 노트는 가격이 제법 나간다. 거기에 브랜드까지 알려진 것이면 사실 쉽게 살 수 있을 정도의 가격은 아니다. 그런 노트는 정말로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을 때나 가끔 산다. 그러나 나는 디자인과 질감이 괜찮다면 언제나 예외 없이 노트 몇 권을 사들고 돌아온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온 오프라인 팬시 용품점이나 대형 문고에서 내가 가장 자주 들르는 곳이 문방구 코너다. 요즘은 종류와 사이즈, 가격, 질감, 그리고 용도 별로 실로 다양한 노트들이 출시되고 있다.


노트를 다 쓰지도 못하면서 '절제'하지 않고 사는 이유는 한 가지다. 나 자신이 쓰기 위해서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다. 누구를 만나러 갈 때 가볍고 부담없는 선물로 노트만한 게 없다. 더구나 쓰기의 효용을 누구보다 삶에서 오래 체험해온 나로서는 '쓰기'까지 상대에게 강권(?)할 수 있어서 노트 이상으로 유용한 게 없다. 나름의 안목으로 꼼꼼히 고른, 각기 특색있는 노트를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아직 나는 그런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도 아침마다 모닝페이지를 같이 한 친구들에게 프라도 미술관 기념품코너에서 구입한 명화 노트를 일일이 선물했고, 여행지에서 하나 둘 사모은 노트를 교회 셀 모임 식구들에게도 선물했다. 함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한 분에게도 바르셀로나의 한 서점에서 산 플레임트리 노트를 선물했다. 그리고 이번에 우리 셋째 생일을 맞아서도 조금 특별한 컨셉의 노트를 선물했다. 아래는 아이에게 노트를 선물하면서 그 노트 속에 끼워준 편지의 내용이다. 여기 공개하는 이유는 내가 노트를 선물하는 이유를 조금 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여러분은 어떤 창조적 소비 아이템을 가지고 있는가. 나에게 공개해주시라. 정말 듣고 싶다. 

 

행복 프로젝트, 한 문장, 5년 일기 (The Happiness Project One-Sentence Journal: A Five-Year Record Diary)

365일, 5년, 1,825개의 사건을 담을 수 있는 일기장이야. 손에 쏙 들어오는 아담한 사이즈라 좋고, 일기를 길게 써야하는 부담도 없으니 더 좋고. 엄마가 이 일기장을 뉴욕공립도서관 기념품 가게에서 발견했을 때 아, 하고 감탄했어. 이런 식의 일기도 있을 수 있구나. 잠들기 전에 날마다 하루를 마감하는 하나의 의식(ritual)으로 네가 이 일기장을 채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일기쓰는 네 모습을 상상하면서 이 일기장을 샀으니 잘 쓰길 바래. 그렇지만 이 일기를 어떻게 이용할지는 온전히 너의 자유야. 다만 네 생일에 이 일기를 너에게 선물할 수 있어서 기뻐. 긴 일기를 날마다 쓰라고 하는 건 일종의 압박일 수 있지. 글쓰는 걸 좋아하는 엄마에게도 일년 다이어리를 꾸준히 채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그러니 이런 한 문장 일기는 아주 멋진 대안이라고 할 수 있지.


이 일기장은 같은 제목의 책(The Happiness Project)을 먼저 낸 그레첸 루빈(Gretchen Rubin)이 만든 거야. 아마 이 일기를 다 마칠 때쯤이면 네 안에서도 아이디어가 탄생하겠지. 그녀보다 더 창의적이고 새로운 형태의 일기장 아이디어가.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도 별다른 게 없어. 어느 비오는 날 오후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데 ‘하루는 이리 더디 가는데, 돌아보면 일 년은 왜 그리 빨리 가는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해. 하루라는 긴 시간을 잘 보내면 1년이란 시간이 그렇게 허망하게 흘러가버리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돌아보니 진짜 자신에게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제대로 관심도 가져보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대. 그래서 시작한 게 ‘1년 행복 프로젝트’였고, 그 결과 삶이 많이 달라졌다고 해. 동명의 책까지 내고 이후 작가로 데뷔해 계속 책을 내고 있고.


일기장은 오늘 날짜를 펴서 거기부터 시작하면 돼. 앞으로 5년 동안 하루 한 가지씩 기억할 만한 순간이나 혹은 머리에 떠오르는 좋은 생각을 꾸준히 적는다고 생각해봐. 5년 후에는 네가 기록한 너만의 역사가 너만의 방식으로 완성되는 거잖아. 더구나 특정한 날짜를 열면 5년 동안 그 날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으니 얼마나 멋지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감탄하며 빠져들게 될거야. 일기장 제목대로 엄마는 네가 이 일기장과 더불어 네 삶의 ‘행복 프로젝트’를 시작하면 좋겠어. 노트 매 페이지마다 행복프로젝트에 어울리는 인용문이 하나씩 소개되어 있어. 영어공부도 할 겸 번역문과 원문을 동시에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 같은 곳에 날마다 올리는 것도 좋을 것 같아.


1월 1일의 인용문은 What you do every day matters more than what you do once in a while 이네. 너도 알겠지만 ‘날마다 무엇을 하느냐가 가끔 무엇을 하느냐 보다 중요하다’는 뜻이야. 인생을 잘 살려면 ‘날마다’의 힘을 경험해야 해. 어느 것 한 가지를 정하면 조금씩이라도 날마다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해. 이 일기장을 5년 동안 채우는 것 역시 그런 일 중의 하나가 되겠지.


사랑하는 딸의 22번째 생일을 축복하며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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