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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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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3일 13시 00분 등록

 

 

[짧은 소설] 나는 분리수거 의식이 투철하다. 작은 종이 한 장 허투루 버리지 않고, 재활용이 가능한지 헷갈리면 끝까지 검색을 한다. 음식을 담았던 1회용 용기는 세척해서 버리고, 박스에 붙은 스카치테이프도 별도로 분리한다. 사실 종이, 페트병, 유리, 고철류 등을 분류하는 일은 입주민 몫이지만, 분류를 충실히 따르는가의 여부는 입주민마다 다르다. 별별 사람이 다 있다. 쓰레기들이 가득한 박스를 분류하지 않은 채로 던져만 놓는 사람도 있고,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부피가 큰 패트병을 공기도 빼지 않은 채 쌓아두고 간다. 어느 날 팻말 하나가 붙었다. “직접 분리수거 하고 가세요.”

 

우리 아파트 재활용쓰레기 처리장은 지하 4층에 있다. 어느 날, 나는 책이 배달되었던 택배박스를 버리려고 10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탔다. 1층에서 두 사람이 탔다. 한 분은 경비, 다른 이는 입주민이다. 교대 근무하시는 분들 중 가장 무뚝뚝하고 인사도 잘 받지 않는 경비 아저씨였다. 인사성 좋은 나도 언젠가부터 그에게는 인사하지 않던 터였다. 입주민은 지하 5층 버튼을 눌렀다. 나와 경비 아저씨는 지하 4층에서 내렸다. 나는 재활용쓰레기 장으로 부리나케 달려가 박스를 종이 수거함에 내던지고 엘리베이터로 얼른 돌아왔다. 지하 5층으로 갔던 엘리베이터를 타면 시간이 절약되니까.

 

엘리베이터가 이미 지하 3층을 올라가고 있었다. 잠시 기다려야 했다. 무심결에 재활용쓰레기 처리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경비 아저씨가 방금 내가 내던진 박스의 뚜껑을 열어보더니, 종이만 담긴 것을 확인하고 다시 닫았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얼른 몸을 숨기며 생각했다. ‘아니, 나 같이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는 사람을 의심하다니!’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빴지만 금세 풀렸다. 그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저렇게 해 주셔야 대충 버리는 일을 줄일 수 있지!’ 나는 무뚝뚝한 표정의 아저씨가 마음에 들었다. 싹싹하지 못하다고 흉을 보는 입주민 아줌마들에게 아저씨의 일면을 전해주고 싶어졌다. ()

 

 

[사족]

 

1) 싹싹하고 친절한 사교형의 사람들이 일솜씨가 꼼꼼하고 확실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것은 폄하가 아니다. 인생사의 양면성을 보여줄 뿐이다. 그들은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느라 상대적으로 일처리에 관심과 신경을 덜 쓰는 쪽으로 살아온 것이다. 세상에는 친절한 미소도 필요하고, 확실하게 처리하는 일솜씨도 필요하다.

 

2) 사람들을 존중하는 방식도 사람마다 고유하다. 어떤 이들은 만나는 사람에게 미소와 친절로 섬기고, 어떤 이들은 자기가 맡은 책임을 완수함으로 섬긴다. 이들은 종종 서로를 오해한다. 한쪽은 불친절하고 싹싹함이 없다, 다른 한쪽은 가볍고 실속이 없다. 신은 생각하리라. 세상 기여도에 있어서는 같은 수준이라고.

 

3) 한 사람이 싹싹한 친절함에다 철저한 일처리마저 해내면 좋겠지만, 매우 드물다. 이상적 인간상을 품고 살면 모든 사람에게 불만을 품게 된다. 친절하면 그것으로 좋고, 일을 잘 하면 그래서 좋아야 한다. 상대를 이해하여 그에게 기대할 바를 기대하는 것이 존중이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할 줄 알면, 나도 그도 좀 더 행복해진다.

 

4) 미소나 일처리가 자기다운 방식으로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라면, 시민의식은 공동체를 존중하는 공통의 방식이다. 시민의식은 거창하면서도 일상적인 개념이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역사적으로는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시민사회를 성립시킨 이념이었고, 오늘날에는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부르주아 의식이나 도시주민으로서의 시민의식으로도 쓰이지만,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이 독립한 인간으로서 책임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도 시민의식이다.

 

5) 나는 시민의식의 일상적 실천만으로도 지금보다 살기 좋은 세상이 되리라 믿는다. 수돗물과 전기 아껴 쓰기, 철저한 분리수거 실천, 양보와 원칙 중심의 교통질서 준수,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투표권 행사, 양심에 따른 공공질서 지키기 등 말이다. 정의로운 정부 비판만큼이나 아름다운 시민의식도 선()이다. 누군가는 깨우쳐 사회를 지켜야 하고(경비警備), 그런 이들이 많을수록 살기 좋은 사회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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