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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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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월 20일 18시 48분 등록

 

타인으로 살려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을 그랬습니다.

어려서는 부모님이나 마을 어른들, 학교 선생님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 애썼습니다. ‘저 녀석 착한 놈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기분 좋아 그 방향이 강화되는 습관을 키웠습니다. 성장해서도 착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을 자연스레 추구했습니다. 어른의 뜻을 거스르거나 대설 때마다 돌아왔던 엄혹한 아버지의 질타가 몸에 저장되었습니다. 내 호기심, 내 열망을 따르기보다 누군가의 그것을 따라야 하는 삶의 절정은 군대시절 이었습니다. 호기심보다는 암기, 질문보다는 그저 명령을 수행하는 것을 선()으로 여기게 된 경험들입니다.

 

스스로 불러일으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그러한 것도 아닌, 외부에 의해 조장되고 억압된 의식이 견고하면 견고할수록 본래의 나를 자각하는 것도, 그리고 그 관성적 흐름을 뒤집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어른 앞에 서거나, 상사 앞에 서서 내 의견을 당당하게 피력하지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그가 불편한 기색을 내거나 다른 주장을 품었다고 판단하면 즉시 유년과 청소년 시절의 다소곳한 내 모습을 꺼내놓았습니다.

 

나는 그렇게 내가 열망하는 가치가 아닌, 세상이 권장하는 가치를 좇으며 청춘을 보냈습니다. 직장에서는 세상의 기준에 준거해서 살았습니다. 그것이 경쟁력 있고 유능해지는 길이라 믿었습니다. 가정에서는 아직 명맥을 잃지 않은 봉건적 준거로 부모님과 아내를 대하고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그 분위기를 책임지는 것이 멋진 사람의 모습인 것처럼 과장된 외향성으로 나를 몰아갔습니다. 그런 내가 어느 날부터 돌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당당해졌습니다. 더 많이 거절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더 긴 침묵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홀로 밥 먹고 홀로 여행하는 것이 좋아졌습니다. 더 거침없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더 부드러워졌으나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할 내면의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내 삶에 이런 돌변이 시작된 것은 인생에 대해 딱 하나를 깨닫고 나서 부터입니다. 그 깨달음 이후 나는 자유(自由)함과 자연(自然)함을 내 삶 최고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말하는 자유함과 자연함이란 냉이가 냉이의 모습으로 자라 냉이의 빛깔과 냉이의 향기로 꽃을 피우는 그 힘과 모습을 뜻합니다. 백합이 되려하지 않는 모습이 냉이의 자연함이요, 누구로부터도 백합이 될 것을 강요받지도 않는 냉이의 모습이 내가 말하는 자유함의 은유인 것입니다. 냉이가 그렇게 사는 것을 알아채고 나도 그래야겠다고, 나도 그렇게 살 힘을 가졌다고 믿게 된 그 깨달음이 무엇이냐고요?

 

인생 전체에서 딱 하나만을 깨달아야 한다면, 가장 시급하고 절박하게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그것을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것은 삶이 오직 한 번뿐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삶은 되감을 수 없습니다. 삶은 오지 않은 앞의 어느 지점으로 건너뛸 수도 없습니다. 결정적으로 단 한 순간도 재생해 볼 수 없는 것이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절하게 깨닫는 사람은 그 삶을 결코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그는 더 이상 타인이 되려 하지 않으며 더 이상 지금을 미래의 언제로 유보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스스로 말미암아 일으켜 세우는 열망을 따르지 못하는 부자유한 삶을 찢어버리려 합니다. 스스로 본래 그러한 모습을 잃고 세상의 제시와 준거를 따르려 하는 부자연한 날들과도 불화를 일으킬 것입니다. 마침내 그는 깨달음이 주는 고통을 겨울처럼 견뎌 제 삶의 꽃으로 피워낼 용기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합니다. 인생 전체에서 딱 하나만을 깨달아야 한다면 그것은 삶이 오직 한 번뿐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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