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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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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8일 22시 04분 등록

 

유시민은 일급의 저술가다. 나는 그를 대한민국 최고의 지식유통업자로 손꼽는다. 유통업의 가치는 유통하는 상품의 가치가 어떠한지 그리고 효과적인 매개가 이루어졌는지에 달려있다. 글로 지식을 유통하는 경우, 다루는 지식의 가치과 전달해내는 필력이 되겠다. 유시민은 섣불리 단정 짓지 않고 촘촘하고 논리적으로 사유하는 힘 그리고 정연한 문체와 독자를 사로잡는 문장력을 지녔다. 

 

나는 『나의 한국현대사』를 특히 좋아한다. 서문에서부터 일급의 저술가가 어떻게 글을 쓰는지 드러난다. 그는 현대사 서술의 위험성을 몇 문장으로 단박에 전달한다. "우리는 이승만 박근혜까지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과 그들이 한 행위에 대해 강한 호불호의 감정을 느낀다. 그들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왕처럼 느긋하게 대하지 못한다."(p.9) 그리고 역시 서너 문장으로 그 위험한 정글을 간단하고 명료하게 헤쳐나간다.

 

"나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았다. 없는 것을 지어내거나 사실을 왜곡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선택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로 묶어 해석할 권리는 만인에게 주어져 있다. 나는 이 권리를 소신껏 행사했다."(p.11) 노련하고 유능한 필력 앞에 현대사 서술의 위험이 대폭 누그러졌다.

 

비극적인 일이지만, 뉴라이트의 등장 이후 우리는 두 개의 한국 현대사를 갖게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든, 박정희 대통령이든,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인물들은 양극단의 평가를 받는다. 유시민은 하나만 옳다는 정치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 대신 객관과 주관, 좌우의 관점을 모두 검토하여 취할 것이 있다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취한다. 관점이 없이 우유부단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는 하나의 관념에 사로잡혀 편협함에 빠지지 않는다. 내가 읽은 한국현대사 책 중 박태균 교수 다음으로 균형 감각이 빛나는 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아래, 박정희 대통령에 관한 서술을 보자.

 

"어떤 이들은 (1960~70년대의 경제성장을 두고)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며, 박정희 대통령을 무에서 유를 창조한 '반신반인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칭송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민생이 파탄에 빠지고 국민경제가 성장 동력을 잃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한국 경제를 불평등과 반칙이 난무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자본주의'라 비판하며 그 책임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묻는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면 골고루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p.103)

 

이제 유시민의 균형감각을 보자. "어느 쪽이 맞을까? 나는 둘 모두 옳고, 또 둘 다 옳지 않다고 판단한다. (중략) 대한민국은 박정희 정부 이래 개발독재와 재벌 중심의 자본 축적, 수출주도형 산업화의 길을 걸었다. 민주화를 이루었지만 낡은 경제 구조를 혁신하지 못했으며 IMF 경제 위기를 거치면서 과거와는 양상이 다른 정글법칙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10년의 진보정부는 '역사적 경로의존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사실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p.104)

  

좌우를 통합하는 양극적 사유와 옳고 그름의 합리성을 따지는 비판적 사유는 『나의 한국현대사』에서 십분 발휘된 유시민 사유의 특징이다. 책의 내용은 제목대로 한국 현대사다. (현대사라고는 하지만 유시민 선생의 생몰연도에 한하여 서술되어 해방 이후의 정국과 대한민국 건국의 과정 그리고 한국전쟁은 제외되었다.) 두 개의 한국현대사를 비교적 중립의 입장에서 서술한 책이다. 진보사관의 대표주자인 서중석, 한홍구 대 뉴라이트 사관의 책들 사이 합리적 지점에 위치하려고 애쓴 것처럼 보였다.

 

나는 민족문제연구소가 내놓은 연구 결과와 사관이 백번 옳다고 믿지만(유시민 선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술 방식만큼은 유시민 선생이 더욱 지혜롭고 세련된 방식이라 생각한다. 덜 감정적인 태도를 취했고, 양극적 사유에 더 능통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쉬운 문체인데다가 필력이 좋아 지식인들과 대중 모두에게 편안하게 다가서리라. 한국은 지금 국정 교과서 등 역사 문제로 진통하고 있다. 깨어있는 국민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시대다. 내게 발언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 책과 박태균 교수와 민족문제연구소를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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