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요한
- 조회 수 2692
- 댓글 수 3
- 추천 수 0
“달라이 라마는 30분 동안 가만히 그 여성 환자의 맥을 짚고 있었다. 마치 이상한 색깔의 새가 날개를 접고 환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 그의 몸속에 있는 모든 에너지가 맥을 짚는다는 단 한 가지 일에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지금까지 수천 명의 환자의 맥을 짚어 왔지만, 진실로 맥을 짚어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 칼 사이몬튼의 <마음의 의학> 중에서 -
------------------------------------------
3년간의 수행을 마친 승려가 스승의 암자에 도착합니다. 승려의 얼굴에는 부처의 가르침을 모두 깨달았다는 자신감과 희열이 가득 차 있습니다. 문을 열고 스승의 거처로 들어선 승려는 스승에게 예를 올리고, 어떤 질문을 해도 모두 대답할 수 있다는 자신에 찬 자세로 앉았습니다. “딱 하나만 묻겠다.” 나지막한 스승의 말에 승려가 대답합니다. “네. 스승님!” 스승이 다시 묻습니다. “들어올 때 꽃이 문간에 세워둔 우산 오른쪽에 있더냐? 왼쪽에 있더냐?” 입도 벙긋할 수 없던 승려는 그대로 물러나 다시 3년의 수행을 시작합니다.
언젠가 선배 정신과의사가 진행하는 집단 상담을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선배는 다양한 수준의 여러 참가자들의 마음에 일일이 공감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상담을 잘 이끌어 갔습니다. 마치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를 매끄럽게 이끌어내어 훌륭한 선율을 만들어내는 지휘자처럼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저는 상담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었었던 선배의 마음가짐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선배는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나는 상담할 때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만일 이 분들이 상담 끝나고 집에 가다가 운 나쁘게도 교통사고가 나서 당장 돌아가시게 생겼다고 해봅시다. 나는 그 때에도 이 분들이 자신의 생애 마지막 시간을 다른 데가 아닌 바로 상담하는데 보냈다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기를 바래요. 그러니 집중할수밖에요." 지금도 마음이 흐트러질 때면 한번씩 그 선배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마음을 곧추 세워봅니다.
어쩌면 깨달음과 완전함이란 멀리 있고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과 대상에 마음을 온전히 기울일 때 일상에 깃드는 것이 아닐까요?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996 | 내 인생의 마지막은 병산에서 [3] | 연지원 | 2013.09.09 | 2716 |
1995 | 단식 예찬 [2] | 오병곤 | 2013.11.08 | 2716 |
1994 | 취하지마라, 출근해야지 | 書元 | 2015.03.06 | 2716 |
1993 | 치유와 창조의 공간 | 승완 | 2013.11.26 | 2721 |
1992 | 23- 유쾌한 택시 기사 [3] | 지희 | 2009.06.17 | 2722 |
1991 | 귀농과 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6] | 김용규 | 2010.11.25 | 2722 |
1990 | 내 하찮음과 위대함을 알게 하는 숲 | 김용규 | 2014.05.08 | 2722 |
1989 | 설국(雪國)에서의 하루 [1] | 신종윤 | 2009.12.07 | 2723 |
1988 | 배려는 감수성의 발현이다 | 연지원 | 2014.05.26 | 2724 |
1987 | 축하는 좀 해가며 살자 [3] | 신종윤 | 2010.02.08 | 2725 |
1986 | 언행 불일치의 한 해를 돌아보며 | 연지원 | 2013.12.30 | 2728 |
1985 | 멈추라 | 김용규 | 2014.06.26 | 2729 |
1984 | 몇십 년 만에 거리에서 반바지를 입다 [2] | 한 명석 | 2014.08.27 | 2730 |
1983 | 베트남에는 왜 오토바이가 넘칠까? | 차칸양(양재우) | 2015.09.01 | 2731 |
1982 | 수요편지 16. 그녀의 행복이 곧 그의 행복 | 구본형 | 2009.04.29 | 2732 |
1981 | 예측능력이 향상되고 있는가 | 문요한 | 2013.09.25 | 2734 |
1980 | 차마 버릴 수 없는 위험한 생각 [18] | 김용규 | 2010.03.11 | 2738 |
1979 | 나에게 일어났던 일 모두가 좋은 일이었다. [5] | 해언 | 2013.11.09 | 2744 |
1978 | 사진은 말한다 | 書元 | 2014.08.30 | 2747 |
1977 | 감동은 순환된다 [4] | 문요한 | 2010.05.26 | 27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