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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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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6일 18시 44분 등록

 

내게 스키를 처음 가르쳐 준 형이 있습니다. 스키 착용 방법부터 배웠지요. 플레이트에 두툼한 부추를 단단히 끼워 넣고 고정하자마자 익숙한 걸음의 자유가 사라졌습니다. 옆으로 걷는 방법을 익히자 형은 다음으로 넘어지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이어서 멈추는 기술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둘 다 역설적이었습니다. 설원을 질주하려는 욕망을 장착하고 제일 먼저 배우는 것이 넘어지는 방법과 멈추는 방법이라니.

 

늦은 고백이지만, 나는 요즘 많이 약해졌습니다. ‘청춘이란 것이 이렇게 꺾어져 기우는 것인가 보다.’ 생각한 시간이 최근에만도 몇 번 있었습니다. 딸 녀석을 찾아가 학교 앞에서 기다렸다가 데려오고 데려다 주는 일을 자주 하고 있습니다. 약해지자 자꾸 녀석이 더 애틋하게 느껴져서입니다. 삶을 자주 돌아보게 됩니다. 자꾸 나의 본질, 내 삶의 이런저런 갈래 곁을 스스로 서성이고 있습니다.

 

시작은 꽤 되었습니다. 어느 날 운전을 하다가 순간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았던 짧은 경험이 출발이었는데, 요사이 자주 어지러움을 느끼면서 더욱 그렇습니다. 연속 네 시간이든 열한 시간이든 강연을 하다가 단 한 번도 앉은 적이 없는데, 이제는 여섯 시간 강의를 할 때도 짬짬이 빈 책상에 엉덩이를 대고 앉는 나를 발견합니다. 한 번 타협을 한 탓이었을까요? 오늘은 두 시간 강연을 하다가도 살짝 책상에 걸터앉아 말을 이어갔습니다.

 

한 달여 전에 한의원을 찾았습니다. 한의사는 내게 그것을 검은 어지러움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의 흐름과 순환에 비중있는 문제가 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습니다. 특수한 장비로 촬영한 사진에도 그것은 드러났습니다. 호흡은 횡경막의 위와 아래를 자유롭게 넘나들지 못하고 주로 위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화가 가슴에 쌓여 있다고도 했습니다. 무책임한 조언으로 들리겠지만, 진행하고 있는 많은 것을 멈추라고 했습니다.

 

내 몸이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음을 이미 내가 잘 알고 있고, 멈춰야 할 부분이 있음을 나도 잘 아는데, 삶이 스키를 타는 일보다 훨씬 다루기 어려워서 일까요? 멈추라! 그것이 잘 안되는군요. 혼자서만 살아가는 삶이 아니어서 더욱 그렇겠지요. 하지만 나는 이제 하나씩 멈춰보려 합니다. 스키를 타다가 멈출 때처럼 먼저 속도를 줄여보려 합니다. 내가 닿으려는 곳은 하루아침에 이를 수 없는 곳이니 멈추어 걸어온 산천과 길을 살피는 순간 자주 가져보려 합니다.

 

오늘 남원 지리산 어귀에서 만난 자귀나무, 그 꽃이 참 붉었습니다. 봄이 다 가도록 잎을 피우지 않던 녀석이 저렇게 붉어질 줄 압니다. 오래 멈추었던 놈들 다 저렇다는 것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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