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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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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21일 17시 45분 등록

      

부르르 - - -’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휴대전화가 반복해서 몸을 떨었습니다. 봄이 올 즈음 모처럼 펴내기로 작정한 새 책의 탈고를 위해 끙끙대고 있던 엊그제 오후의 일입니다. 발신자가 누군지 모르는 번호였습니다. 지끈대는 머리도 식힐 겸 -’, 화면을 밀어 전화를 받았습니다. 30대 중반의 목소리, 여자는 전화 받은 내가 나인지 조심스레 확인하더니 지난 가을 ○○도서관 학부모를 위한 나의 연속 강연을 빠지지 않고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막 바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 아이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전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 젊은 엄마의 목소리에서는 막막함과 절박함이 대번에 느껴졌습니다. 가만히 사태를 들어보았습니다. 내가 궁금한 것도 물어 이 엄마의 고민이 무엇인지, 사태의 본질적 원인이 무엇인지 최대한 자세히 헤아려보았습니다. 다행히 겪고 있는 아이 문제에 대해 내가 조언을 할 만한 지점이 있다고 판단하게 됐습니다. 대강의 지점은 이렇습니다.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딸, 남동생이 하나 있다. 어려서부터 아이에게 학습지와 교구, 그리고 이런저런 선생님들을 붙여 아이를 뒷바라지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엄마가 아이 교육에 관한 이런저런 강의도 듣고 공부도하면서 아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일체 끊었다. 그런데 지금 그 아이는 도무지 의욕이 없다. 초인적 인내심을 발휘해가며 공부 안 해도 뭐라고 안한다. 하지만 해도 너무 한다. 공부는 물론이고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 심지어 준비물도 제대로 챙기지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을 그저 멍하니 보낸다. 무얼 해야 할지도 모르고 그저 엄마에게 같이 놀자고 만 한다. 한편 둘째 아이, 남동생은 스스로 알아서 척척 하고 혼자서도 잘 논다. 둘은 사이가 나빠 매일 다툰다.’

 

제 딸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이 안에 다 접혀 있다고 하셨고, 그것이 스스로 터지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 하셨잖아요. 무얼 주려고 하기보다 제 가진 것이 터지도록 하는 것이 제대로 된 교육의 핵심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저렇게 무기력한 아이를 그냥 둬도 될까요?” 절박한 질문에 묘한 책임감이 들어 한 시간이 넘도록 그 엄마와 통화를 했습니다. 내 대답의 초점은 그 딸을 어떻게 해야 할까가 아니라 엄마가 지금부터 무얼 해야 할까에 맞춰졌습니다.

 

열 살이 됐는데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모르는 아이, 학교 선생님이 내주시는 숙제나 준비물도 스스로 챙길 줄 모르는 아이를 보면 엄마 마음이 얼마나 애타고 불안할까요? 그 엄마의 불안이 공감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원인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야기 해보니 8년이나 그래왔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원하지 않는 데도 엄마의 판단에 의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세월을 대략 8년 동안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곳저곳 제대로 된 엄마 되기를 공부해 보니 사람들마다 아이가 스스로 주도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라고 했고, 그래서 엄마는 8년 동안 해왔던 일체의 조장(助長)을 딱 멈췄는데 아이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는 것이지요.

 

이야기 끝에 엄마는 핵심 원인이 바로 그 지점, 8년여 동안 아이가 자발(自發)을 따를 기회를 거의 주지 않은 데 있음을 알아챘습니다. 유아기에 아이들은 자발적 호기심과 궁금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끝없이 묻지요. “? 그래서 왜?” ?” “?” …… 많은 어른과 부모들은 그게 인간이 오랫동안 해온 진짜 공부의 시작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아이들은 지칠 줄 모르고 놀려합니다. 이 시대의 많은 부모들은 놀이에 대한 열망이 인간 안에 접혀 있는 또 다른 본능이요 본성인 것을 무시합니다. 놀이조차 제시하려 합니다. 놀이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조직해 학습적 성취로 연결하려고 하지요. 부모들은 아이 스스로가 궁금해 하는 것을 따라가며 채울 수 있는 자발적 기회를 거의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제시된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하는 학습지가 대체합니다. 스스로 찾아내고 탐구하며 놀 줄 아는 아이들의 본능적 자발성을 온갖 규격화된 놀이나 프로그램에 이끌려가야 하는 수동성이 또 대체합니다. 그 엄마의 딸도 그 세월을 8년여 가까이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을 이끌던 모든 지침들이 갑자기 사라져버렸습니다. 아이가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지요.

 

나 역시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자 조직을 떠나던 초창기에 그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옷 차려입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기 까지 하루의 일정을 다이어리에 기록하며 살던 내 하루는 갑자기 기록할 일정이 별로 없었습니다. 자발성을 따라 살지 못한 세월이 길면 길수록 그것을 회복하는 데도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나는 엄마에게 8년간 채워주지 못한 자발성을 채워주는 것부터 하라고 조언 했습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소를 모는 목동의 태도를 취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 것,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함께 발견하고 이루어낼 때마다 진심으로 칭찬하고 격려할 것, 조금씩 더 큰 발견과 실천으로 옮겨갈 것, 넉넉하게 한 8년 쯤 회복시킨다고 마음먹고 믿고 기다려 줄 것, 무엇보다 지시와 야단을 치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놀 수 있는 친구가 될 것, 그 소중한 관계부터 회복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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