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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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철이라 회사가 한산합니다. 출근한 직원들의 얼굴에도 느긋한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저는 저번 주보다 더 바빠졌습니다. 제가 모시고 있는 임원도 파트장도 모두 휴가를 떠나 당연히 여유로운 한 주를 보내겠거니 예상했는데, 며칠째 집에 늦게 가고 있습니다. 아마 오늘도 그럴 예정입니다. 업무시간에도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앉아서 머리를 싸매고 있습니다. 다음 주 지나자마자 큰 보고를 맡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부서에 협조 요청을 보내고, 자료를 만들고, 고객들의 요구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숫자들에 논리를 부여하고 나면 하루 업무시간이 거의 끝나 있습니다. 그동안은 시장 조사를 주로 해서, 개발팀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고객 요구사항을 우리 회사의 규격에 맞게 환산하는 일은 해보지 않았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소요되었습니다.
여기에 추가로 팀원들에게 할 일도 분배해 주어야 했는데 그 분배가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해낼 수 있을지, 어떤 정보를 주어야 빨리 끝낼 수 있을지, 납기는 언제로 정할지에 대해 정해주어야 하고, 혹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때에도 인내심을 갖고 결과를 내기 위한 시간과 지원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맡은 부분도 해내면서 말이죠.
그동안 다양한 책을 읽으면서 관리자의 역할에 대해 상상해 보기는 했는데, 막상 납기까지 남은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엄청나게 큰 업무를 맡아보니, 개인 업무와 관리 업무의 결이 다르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크게 느껴집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작년까지 10년 동안 막내 생활을 해서 다른 사람들의 업무를 고려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첫 시도부터 깔끔하고 저답게 해낼 수는 없겠지만 너무 잘 해야 된다는 부담감을 버리고 업무적 관점에서 일을 나눠서 진행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 기질이 회사 생활에 그다지 잘 맞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점입니다. 변동이 많은 업무를 대할 때의 순발력이나, 일과 사람을 매치할 때 각 사람들의 장점과 캐릭터를 파악하는 능력이 도움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자료 작성을 위해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 것도 어렵기는 하지만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자신의 강점이 새로운 상황을 만나자 더욱 집중적이고 효과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고, 그동안 피해 다니기만 했던 역할에 자신을 놓고 관찰해 보면서 더욱 나 자신을 잘 알아가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준비 중인 보고가 완료되면 저도 휴가를 떠나야겠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작은 희망을 갖고 긴 시간들을 버텨보겠습니다.
즐거운 휴가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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