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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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2009년 7월 혼자 여행을 떠난 적이 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해 부산과 경남 김해를 거쳐 광주와 전남 화순과 강진, 해남으로 이어지는 4박 5일의 여정이었습니다. 이때까지 한 번도 홀로 여행을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성격은 외향적이고, 길치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었기에 혼자 여행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혼자 떠난 이유가 있습니다. 내게 이 여행은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일종의 의식(ritual)이었습니다.
5년 전 나는 해남 대흥사(大興寺)에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여행을 시작한지 5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대흥사는 내가 홀로 가본 가장 먼 곳입니다. 하지만 원래 목표로 잡은 여행 기간은 7일이었고, 최종 종착지는 보길도였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여행 중간에 포기한 것입니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변명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외로웠고 불안했습니다. 더 멀리 가고 싶지 않았고 더 걷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당시 나의 수준이었고 한계였습니다.
5년이 지났습니다. 다시 떠나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홀로 배낭을 메고 걷고 싶습니다. 5년 전의 그 코스를 다시 밟아보고 싶은 마음이고, 발길 가는 대로 떠돌고 싶기도 합니다. 다만 혼자 떠난 첫 여행 때보다 조금 더 길게, 그때 발걸음을 멈춘 곳보다 좀 더 멀리 가고 싶습니다. 그때보다 배낭은 가볍게 하고 좀 더 많이 걷고 싶습니다. 5년 전보다 내가 얼마나 나아졌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왜 떠나려고 하는가?’ 그 동안 읽은 책들, 서재를 둘러싼 책으로부터 탈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지난 5년간 책과 그것으로 가득한 공간은 내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행복했습니다. 기쁘고 슬프고 고독했습니다. 스스로를 알아내기 위해 애썼고 좌절했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이것이 지난 5년간의 내 삶의 뼈대였습니다. 이 뼈대가 믿을만한지, 아니면 관념적 허상에 불과한지 살펴보고 싶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변방을 찾아서>에서 말합니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은 부단히 변화한다. 변화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다. 중심부가 쇠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변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변방이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은 그곳이 변화의 공간이고, 창조의 공간이고 생명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묻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지난 5년간 얼마나 나아졌는지, 또 책으로 쌓은 뼈대가 얼마나 튼튼한지 알기 위해서 굳이 먼 곳까지 여행할 필요가 있는가?’ 성찰 없는 실천은 맹목적이고 실천 없는 성찰은 공허한데, 여행은 성찰과 실천을 결합할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습니다. 또 여행은 삶과 닮았고 죽음 또한 상징적으로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 곳은 변방(邊方)인데 이곳이야말로 스스로를 성찰하기에 적합합니다.
무엇보다 먼 길을 걷고 싶은 이유는 다시 시작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었는지 알아보고 싶습니다. 신영복 선생이 ‘변방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변방을 찾아가는 길’이란 결코 멀고 궁벽한 곳을 찾아가는 것이 아님을, 각성과 결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변방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깨달음은 떠나본 자의 것입니다. 나 또한 변방으로 떠나 변방을 확인하고 변방성(邊方性)을 몸과 마음에 심고자 합니다.
신영복 저, 변방을 찾아서, 돌베개, 2012년
* 안내 : 오병곤 연구원의 신간 <회사를 떠나기 3년 전> 출간
변화경영연구소의 오병곤 연구원이 <회사를 떠나기 3년 전>을 출간했습니다. 저자의 치열한 체험과 3년간의 치밀한 연구를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책의 자세한 소개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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