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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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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3월 10일 00시 14분 등록

그대 혹시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있나요? 아니라면 이미 사랑에 빠졌다가 실패한 적은 있겠지요. 그도 아니라면 조금 기다려보세요. 장차 기필코 사랑에 빠질 테니까요. 우리는 모두 살아있는 존재, 그중에서도 사랑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특별한 존재, 인간이잖아요. 짝짓기를 한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사랑하지 않는 동물이 어디 있을까 만은 차원을 달리해 보면 인간의 사랑이야말로 정말 특별합니다. 여름 하늘을 밝히는 반딧불이도 때 되면 사랑을 하고, 나와 함께 늙어가고 있는 개 바다도 때마다 사랑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 하찮다 여기는 지렁이마저 제 온 몸을 부비며 사랑합니다.

 

하지만 꼭 여와 남, 남과 여, 혹은 남과 남이나 여와여 만의 관계, 즉 성적 대상과만 사랑하지 않는 존재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인간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그분을 사랑하고 누군가는 도달하기 어려운 수준의 정신적 경지를 오직 사랑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인간이나 정신적 차원이 아닌 물적 대상을 차라리 사랑하기도 합니다. 그토록 다채로운 대상으로 사랑을 펼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일 것입니다.

 

그 중에 꽃을 사랑한다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오늘 오후에도 나는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초대받은 남녘 먼 길의 강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또 지금, 겨울과 봄 사이에 피어나는 꽃을 사랑하고 그것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전국 각지, 야생화 서식지를 찾아가는 사람들도 무척 많습니다. 인터넷과 SNS가 보편화되면서 아름다운 꽃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덕분에 이미 소문이 난 야생화 서식지는 개화시기만 되면 북새통을 이룹니다.

올해는 목적이 있어 나 역시 그 대열을 이루는 사람의 한 명이 되었습니다. 강연용 자료로 쓰고도 싶고, 새로 구상하고 있는 두어 권의 책에도 쓰고 싶어서 올 한 해 열심히 숲과 생명의 사진을 계절별로 담아볼 계획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해서 나도 자주 카메라를 둘러매고 숲과 식물원을 오가는 중입니다. 지난 편지에도 썼듯이 얼마 전 나 역시 부지런히 발품을 판 덕에 눈을 녹이며 피어나는 얼음새꽃의 귀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마찬가지 눈 속에서 피어나는 꽃인 앉은부채의 설중(雪中) 개화(開花) 장면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시점과 이 시점 이전에 피어나는 꽃들을 각별히 사랑합니다. 겨울과 봄 사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눈과 다 사라지지 않은 추위 속에서 그 가혹한 환경을 이기고 녹이며 피어나는 꽃을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이 있는 현상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연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에게 텍스트였으니까요. 인간은 자연이 펼쳐내는 온갖 장면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또 그것을 내면화해왔습니다. 인간은 또한 자연이 펼쳐가는 변화와 현상 속에서 내재된 질서, 혹은 도()나 이치(理致)를 발견하였고 이에 부합하는 사고와 행동을 오래토록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니 눈 속에서 그것을 견뎌내고 피어나는 꽃은 버거움 끌어안고 살아내면서도 마침내 꽃을 피웠다는 측면에서 저 야생화들과 매한가지 존재인 인간들에게 오랫동안 희망과 용기의 텍스트로 읽혀 왔습니다. 이즈음 꽃소식 있는 자리에 카메라 들고 어리대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이유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희망과 용기를 주는 눈 속의 꽃들을 사랑하고 그것을 카메라에 담고 SNS에 나누겠다며 몰려든 이들이 꽃 사진을 담고 지나간 자리 대부분은 끔찍합니다. 꽃과 교감하며 사는 나 같은 이에게는 그 장면들이 차마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폭력적인 장면입니다. 꽃을 사랑한다는 그들은 더 예쁘고 극적인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쪼그려 앉거나 엎드리고, 삼각대를 꽂기도 합니다. 물론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피사체가 되지 못한 그 꽃 주변의 다른 개화한 꽃이나 개화 중인 꽃, 혹은 막 땅을 뚫고 올라오는 어린 싹들이 무참히 짓밟혀 있는 장면을 꽃소식 듣고 가본 곳마다에서 보았습니다. 심지어는 더 극적인 연출을 위해 이미 눈이 녹은 자리에는 다른 곳의 눈을 가져다가 뿌려서 연출하고, 앵글에 걸리는 주변 것들을 가차 없이 쳐내고……. 그때 꺾이고 부러진 키 작은 꽃들 중에 인간의 사랑을 받고자 핀 꽃 한 송이도 없었을 텐데, 지금 피어나는 꽃 중에 일생 또는 한 해의 삶을 걸지 않고 피는 야생화 한 포기도 없을 텐데…….

 

누군가를 사랑한다고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이렇습니다. 그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어야 사랑입니다. 그가 내게 다가오라 신호를 보낼 때까지 가만히 미소 지을 수 있어야 사랑입니다. 사랑은 그를 무엇으로 만들려하지 않아야 사랑입니다. 대신 그가 그로 꽃필 수 있도록 지켜줄 수 있어야 사랑입니다. 그의 열망에 온전히 박수를 보내고 지지할 수 있어야 역시 사랑입니다. 그의 아픔이 내 아픔처럼 스미고 느껴져야 진짜 사랑입니다.

남녀의 사랑도, 부모의 자식 사랑도, 한 국가를 이끄는 이들의 국민에 대한 사랑도, 꽃 한 송이에 대한 당신의 사랑도!

 




여우숲 3월 인문학 공부모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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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숲 홈페이지(www.foxforest.kr) 여우숲 소식 게시판에 3월 인문학 공부모임이 공지됐습니다. 모레(토요일) 오후 3시부터 "여행이 나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강의를 듣고, 다음 날에는 니어링 부부의 삶에 대한 연구발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참여방법은 홈페이지 게시물에 댓글로 연락처와 참여 의사를 밝혀 공부모임 밴드로 초대받은 뒤 신청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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