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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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혹시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있나요? 아니라면 이미 사랑에 빠졌다가 실패한 적은 있겠지요. 그도 아니라면 조금 기다려보세요. 장차 기필코 사랑에 빠질 테니까요. 우리는 모두 살아있는 존재, 그중에서도 사랑하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는 특별한 존재, 인간이잖아요. 짝짓기를 한다는 차원에서 본다면 사랑하지 않는 동물이 어디 있을까 만은 차원을 달리해 보면 인간의 사랑이야말로 정말 특별합니다. 여름 하늘을 밝히는 반딧불이도 때 되면 사랑을 하고, 나와 함께 늙어가고 있는 개 ‘산’과 ‘바다’도 때마다 사랑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 하찮다 여기는 지렁이마저 제 온 몸을 부비며 사랑합니다.
하지만 꼭 여와 남, 남과 여, 혹은 남과 남이나 여와여 만의 관계, 즉 성적 대상과만 사랑하지 않는 존재들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인간일 것입니다. 누군가는 보이지 않는 그분을 사랑하고 누군가는 도달하기 어려운 수준의 정신적 경지를 오직 사랑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인간이나 정신적 차원이 아닌 물적 대상을 차라리 사랑하기도 합니다. 그토록 다채로운 대상으로 사랑을 펼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인간뿐일 것입니다.
그 중에 꽃을 사랑한다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습니다. 오늘 오후에도 나는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초대받은 남녘 먼 길의 강연을 앞두고 있습니다. 또 지금, 겨울과 봄 사이에 피어나는 꽃을 사랑하고 그것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전국 각지, 야생화 서식지를 찾아가는 사람들도 무척 많습니다. 인터넷과 SNS가 보편화되면서 아름다운 꽃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덕분에 이미 소문이 난 야생화 서식지는 개화시기만 되면 북새통을 이룹니다.
올해는 목적이 있어 나 역시 그 대열을 이루는 사람의 한 명이 되었습니다. 강연용 자료로 쓰고도 싶고, 새로 구상하고 있는 두어 권의 책에도 쓰고 싶어서 올 한 해 열심히 숲과 생명의 사진을 계절별로 담아볼 계획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해서 나도 자주 카메라를 둘러매고 숲과 식물원을 오가는 중입니다. 지난 편지에도 썼듯이 얼마 전 나 역시 부지런히 발품을 판 덕에 눈을 녹이며 피어나는 ‘얼음새꽃’의 귀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마찬가지 눈 속에서 피어나는 꽃인 ‘앉은부채’의 설중(雪中) 개화(開花) 장면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의 시점과 이 시점 이전에 피어나는 꽃들을 각별히 사랑합니다. 겨울과 봄 사이,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눈과 다 사라지지 않은 추위 속에서 그 가혹한 환경을 이기고 녹이며 피어나는 꽃을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이 있는 현상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연은 이미 오래전부터 인간에게 텍스트였으니까요. 인간은 자연이 펼쳐내는 온갖 장면 속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또 그것을 내면화해왔습니다. 인간은 또한 자연이 펼쳐가는 변화와 현상 속에서 내재된 질서, 혹은 도(道)나 이치(理致)를 발견하였고 이에 부합하는 사고와 행동을 오래토록 추구해 왔습니다. 그러니 눈 속에서 그것을 견뎌내고 피어나는 꽃은 버거움 끌어안고 살아내면서도 마침내 꽃을 피웠다는 측면에서 저 야생화들과 매한가지 존재인 인간들에게 오랫동안 희망과 용기의 텍스트로 읽혀 왔습니다. 이즈음 꽃소식 있는 자리에 카메라 들고 어리대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이유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희망과 용기를 주는 눈 속의 꽃들을 사랑하고 그것을 카메라에 담고 SNS에 나누겠다며 몰려든 이들이 꽃 사진을 담고 지나간 자리 대부분은 끔찍합니다. 꽃과 교감하며 사는 나 같은 이에게는 그 장면들이 차마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폭력적인 장면입니다. 꽃을 사랑한다는 그들은 더 예쁘고 극적인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 쪼그려 앉거나 엎드리고, 삼각대를 꽂기도 합니다. 물론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피사체가 되지 못한 그 꽃 주변의 다른 개화한 꽃이나 개화 중인 꽃, 혹은 막 땅을 뚫고 올라오는 어린 싹들이 무참히 짓밟혀 있는 장면을 꽃소식 듣고 가본 곳마다에서 보았습니다. 심지어는 더 극적인 연출을 위해 이미 눈이 녹은 자리에는 다른 곳의 눈을 가져다가 뿌려서 연출하고, 앵글에 걸리는 주변 것들을 가차 없이 쳐내고……. 그때 꺾이고 부러진 키 작은 꽃들 중에 인간의 사랑을 받고자 핀 꽃 한 송이도 없었을 텐데, 지금 피어나는 꽃 중에 일생 또는 한 해의 삶을 걸지 않고 피는 야생화 한 포기도 없을 텐데…….
누군가를 사랑한다고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이렇습니다. 그를 가만히 바라볼 수 있어야 사랑입니다. 그가 내게 다가오라 신호를 보낼 때까지 가만히 미소 지을 수 있어야 사랑입니다. 사랑은 그를 무엇으로 만들려하지 않아야 사랑입니다. 대신 그가 그로 꽃필 수 있도록 지켜줄 수 있어야 사랑입니다. 그의 열망에 온전히 박수를 보내고 지지할 수 있어야 역시 사랑입니다. 그의 아픔이 내 아픔처럼 스미고 느껴져야 진짜 사랑입니다.
남녀의 사랑도, 부모의 자식 사랑도, 한 국가를 이끄는 이들의 국민에 대한 사랑도, 꽃 한 송이에 대한 당신의 사랑도!
여우숲 3월 인문학 공부모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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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숲 홈페이지(www.foxforest.kr) 여우숲 소식 게시판에 3월 인문학 공부모임이 공지됐습니다. 모레(토요일) 오후 3시부터 "여행이 나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강의를 듣고, 다음 날에는 니어링 부부의 삶에 대한 연구발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참여방법은 홈페이지 게시물에 댓글로 연락처와 참여 의사를 밝혀 공부모임 밴드로 초대받은 뒤 신청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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