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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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은 서울 나들이가 잦은 편입니다. 어떤 날에는 강의를 들으러 가고 어떤 날에는 강의를 하러 가고 있습니다. 그러던 날 중에 하루 작심하고 서울에서 모처럼 문화생활을 좀 했습니다. 광화문 근처에 있는 서점에 들러 책 구경도 하고, 뒷골목을 누비다가 카페에 들러 도시적 여유와 호사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것은 영화 한 편을 본 것이었습니다.
경희궁 근처 골목 언저리를 돌다가 해머질을 하는 노동자 조형물이 있는 건물의 예술영화 상영관으로 찾아들었습니다. 순전히 작은 간판에 내걸린 제목에 이끌렸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 작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감독의 일본 영화였습니다. 줄거리와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그 영화를 다 보고 나와 누군가를 기다리며 나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참 좋은 영화구나. 아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버지, 나 역시 한 때 그런 아버지였는데... 많은 아버지들이 저 영화를 보면 좋겠구나...’
많은 사람들의 감상평이 집중하는 지점과 달리 나는 그 영화를 타인의 소리를 잘 듣지 못하는 사람이 그 소리를 듣게 하는 영화로 보았습니다. 그대는 아이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줄 아는 아버지인지요? 혹은 엄마인지요? 더 나아가 그대가 남편이거나 아내라면 배우자의 소리를 잘 알아듣는지요? 영화 속 아버지처럼 내게도 아이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버지로 살았던 한 4년 동안의 초보 아비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 나는 아이와 소통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소통하지 못했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내가 세워놓은 어떤 틀로 아이를 대하고 있음을 어떤 충격적인 경험을 통해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내에 대해서도 그랬습니다. 아내는 아내가 형성해 놓은 틀로 나를 보았고, 나는 나의 기준과 틀로 늘 아내를 보고 있었습니다.
아이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경험이 생기고 나서 아주 한참 뒤에야 나는 비로소 아내의 소리, 여자의 소리를 조금 알아듣는 귀가 생겼습니다. 아내와 여자의 소리를 조금 알아듣는 귀가 생길 즈음에서야 비로소 나는 더 많은 타자, 심지어 인간 아닌 다른 생명의 소리를 조금 알아듣는 귀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 함께 사는 개의 소리를 듣고, 부엉이의 노래를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풀, 어떤 나무의 몸짓이 무엇을 말하는지 조금씩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큰 착각을 품고 살았습니다. 귀가 열려 있으니 말로 전하는 소리는 다 듣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귀가 열려 있다고 다 듣는 것이 아님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귀를 닫고서야 진정한 귀가 열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배우고 습득하며 세워놓은 기준과 틀을 허물지 못하는 한 우리는 제대로 들을 수 없는 존재임을 하나씩 깨달아왔습니다. 나를 길러내신 아버지나 어머니의 시선과 음성을 창조적으로 해체하여 불사르지 않고는 내 아이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 비로소 나는 내 아이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남자에 덧씌워진 분칠을 지우고서야 아내와 여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인간만이 가졌다는 그 특별한 오만의 눈을 찔러 눈멀게 하고서야 다른 생명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더 많은 타자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참 충만한 일입니다. 여러 소리를 듣게 되니 마음이 더 소란할 것 같지만, 실은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그럴 수 있을 때 더 고요해지고 평화로워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 영화, 개봉관 숫자는 적지만 아직 극장에 걸려 있습니다. 꼭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귀를 닫아 새로운 귀를 열 수 있는 그 자각의 계기로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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