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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박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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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9일 05시 54분 등록

젊다고 믿었기 때문이었겠지요? 마음이 원하는 그 일에 온 힘을 다 쏟으며 살아온 그 시간 들속에 몸을 위한 배려가 어찌 그리도 부족했는지. 하지만 마흔은 더 이상 그렇게는 살 수 없는 나이의 시작인가 봅니다. 전에 없는 잦은 잔병치레에 좀처럼 가시지 않는 피로, 거기에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어지럼증까지.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격한 신호에 밀린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명분만은 그럴 듯했지요. 마지막 원고를 넘긴 다음날부터 규칙적인 식사와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 홀대를 받으면서도 끝까지 약속을 지켜준 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었거든요. ‘엄마의 시간통장이라는 이름의 일지에 그 과정까지 꼼꼼히 기록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일지의 도움을 받으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100일이 지날 무렵, 그동안의 일지를 훑어보다 뜻밖의 발견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몸사랑프로젝트라고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실은 몸을 개조해 보고 싶은 욕심이 8할도 넘는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원하는 만큼 자원을 배분해 주면 몸도 제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변해주어야 한다고 믿었던 겁니다. 환골탈태를 꿈꾸었던 거죠. 그러나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몸은 제 기대를 무참히 저버렸습니다. 솔직히 화가 났습니다. ‘쏟아부은 노력이 얼만데 네가 이럴 수 있는 거냐구. 뭔가 변하는 시늉이라도 내야 맞는 거 아니냐고. 이건 도리가 아닌 거라고. 몸도 어떻게든 저의 기대에 부응해보려고 애를 써주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타고 난 유전자까지 어쩔 수 있을까요?

 

취약 부분인 허벅지 사이즈가 줄어감과 동시에 가슴과 얼굴에서도 꼭 그만큼의 속도로 지방이 빠져나갔습니다. 인간의 다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잃어야했던 인어공주의 슬픈 선택이 내 삶 속에도 숨어있을 줄이야. 늘씬한, 아니 보통 사람과 같은 다리를 갖고 싶다는 지극히 소박한 소망을 위해 수유 후 간신히 모양새만 유지하고 있는 가슴과 팔자주름의 진행을 가까스로 막고 있는 귀한 볼살을 대가로 치르는 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그나마 남아있는 여성과 젊음의 끝자락을 어떻게든 지켜보고 싶다는 욕망과 평생에 한번쯤은 사람의 다리로 걷고 싶다는 욕망 사이의 치열한 육탄전.

 

결국 저는 인어공주와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헤엄치는데 지장없는 라인에서 욕심을 접는 대신 가슴과 볼을 지키기로 한 것이죠. 그 지점이 딱 60킬로. 운동을 시작하기 전 체중에서 2킬로도 채 줄지 않은 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아니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 숫자가 내 몸의 가능성이 최적으로 구현된 숫자라니. 이 평범함에 이르기 위해 내가 그토록 공을 들였다고 생각하니 억울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잘 하던 운동이 재미가 없어지고 식단대로 챙겨먹기가 귀찮아졌습니다. 마음 하자는 대로 묵묵히 따라준 몸에 대한 감사는 간 데 없고 그저 박미옥으로 남기 위해 쏟는 수고가 낭비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찌어찌 약속한 100일을 채우기는 했지만 한번 식어버린 가슴을 데우는 건 좀처럼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사랑을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화폐라고 믿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평범함에는 참으로 인색한 사람이라는 것도. 이런 내가 존재 자체로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고, 그러니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무리하게 애를 쓰며 동동거렸던 거구나. 그래서 아이를 기다려주는 것이 그리도 힘들었던 거구나. 아이가 특별해지지 못할까봐 그래서 사랑받지 못할까봐 불안해하고 있었던 거구나. 가진 것 없는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니 어쩔 수 없는 거라고 합리화하기전에 먼저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알게 해 줘야 한다는 것을 잊었구나. 그 느낌을 가르치기 위해서라도 나는 먼저 스스로를 사랑하는 연습부터 다시 해야겠구나.

 

아들과 함께 하는 차기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100일은 그냥 마음이 원하는 일을 흠뻑 즐길 수 있도록 놓아두려고 합니다. ‘~해야한다는 부담없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봐주려고 합니다. 지극히 평범한, 때로는 그마저도 버거운 저와 아이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품는 연습을 해보려고 합니다. 아무 것도 바라는 것 없이 주는 연습, 그리고 부담없이 기꺼이 받는 연습을 해보려고 합니다. 사랑을 그 자체로 즐기는 연습을 다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다시 가슴이 부풀어 오릅니다. 여전히 서툴기만한 마흔의 사랑, 남아있는 시간들이 새삼 소중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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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0 02:00:51 *.148.27.30
도둑처럼 몰래 찾아온 마흔이 그렇더군요. 공감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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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10 13:46:38 *.1.160.49

그렇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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