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정재엽
  • 조회 수 733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8년 10월 31일 15시 01분 등록

[일상에 스민 문학]

- 뉴욕에서의 한 가을 날

 

오늘 저는 이 글을 뉴욕의 한 호텔에서 보냅니다. 이번 편지도 해외 출장 일정 중에 보내게 되어서 지난 편지와 같이 현장의 생생함을 전달 합니다.


여기에서 학교를 다녔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이 곳곳에 널려있습니다. 특히 11월과 같은 가을에는 이제 기말고사를 준비하느라 늘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때 미처 느끼지 못했던 이 도시의 활기참을 다시 느껴봅니다. 66번가 줄리어드 스쿨을 들러 음악책 몇 권을 만져봅니다. 베토벤의 전 생애에 걸쳐 작곡했던 곡들 뒤에 숨어있는 음악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책에 자꾸 손이 갑니다. 비즈니스 미팅 때문에 거래처에 방문한 회의실 창문 너머로 펼쳐진 센트럴 파크의 단풍에도 눈이 자꾸 갑니다.

 

점심을 잠시 혼자 먹겠다고 하고 나와 근처 델리 가게에서 두툼한 베이글에 달짝지근한 커피를 주문합니다. 센트럴 파크의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합니다. 여기에 이렇게 앉아 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저는 기업회생의 늪에 빠져 과연 이 기다란 터널을 건널 수 있을지 갸우뚱거렸습니다. 비록 비행기 좌석이 제일 안좋은 곳에 배치 되었더라도, 연착으로 몇 시간을 더 걸리고, 빙 둘러서 가야 목적지에 겨우 도착하더라도, 심하게 흔들리는 비행기에 심장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경험을 하면서도, 저는 지난날 저의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 또 감사합니다.

 

제품 설명을 하다가 벽에 부딪칠 때, 그리고 미리 준비해 오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들더라도 그저 저는 덤덤하게 제가 할 수 있는 것들만 잘 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 여기에, 저에게 주어진 길만을 잘 만들고 수행하겠다는 소박한 다짐을 해봅니다.

 

벤치에 앉아 있다 보니, 로밍을 해 간 스마트폰에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올라옵니다. 제 책을 읽고 지금 개인 파산 신청을 결정했던 한 독자로부터 도착한 메시지입니다.

 

형님, 지금 책을 읽고 있는데, <파산수업>에 이런 문구가 있네요.

나와 같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는 나의 모습을, 나는 상상했다. 그리고 또 상상했다. 나의 이 비천한 경험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쓰는 상상을."

저도 상상합니다. 이 고통의 끝에 같은 아픔이 있는 사라에게 도움을 주는 상상을요. 감사해요. 출장 잘 다녀오세요.

 

이 가을에, 센트럴 파크의 한 벤치에 앉아 베이글을 입에 듬뿍 묻힌 채, 점심을 먹던 저는, 저 문자에 그저 눈물이 핑 돕니다. 누구에게는 또 한없이 지나가 버렸으면 하는 가을의 한 날입니다. 저의 뉴욕에서의 가을을 이렇게 젖어갑니다.

 

정재엽 (j.chung@hanmail.net)드림.

 

IP *.195.184.131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096 [수요편지] 영상언어의 범람에 대해 불씨 2023.09.06 760
4095 [변화경영연구소]#따로또같이 월요편지 106_우리집 가훈 [1] 습관의 완성 2022.05.01 761
4094 꾸준하게 나를 바꾸는 법 [1] 어니언 2022.06.02 761
4093 화요편지 #따로또같이 프로젝트 - 가을단상, 일과 나, 그리고 우리 [1] 종종 2022.09.06 761
4092 검은 끝에서 생명이 가득한 자산으로 [1] 어니언 2022.10.20 761
4091 가족처방전 – 딸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file [1] 제산 2018.04.23 762
4090 가족처방전 –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여덟 번째 이야기 제산 2018.12.10 762
4089 [화요편지] 삶의 맛이 달라질 때 file [1] 아난다 2019.01.15 762
4088 나를 찾는 방법으로써의 글쓰기 불씨 2022.02.08 762
4087 나의 욕망에 솔직해지기 어니언 2022.06.23 762
4086 다시 마음을 추스르며 제산 2017.09.24 763
4085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24. 다시, 책으로 제산 2019.05.20 763
4084 [수요편지] 가을, 그리고 마흔, 나를 사랑할 적기 [1] 불씨 2022.09.06 763
4083 가족처방전 – 엄마, 트럼펫 배우고 싶어요. [2] 제산 2018.08.20 764
4082 [수요편지] 스승은 어디 있는가 장재용 2019.04.10 764
4081 [화요편지]3주차 워크숍_내 안에서 가장 서럽게 울고 있는 그녀 file 아난다 2019.07.30 764
4080 가족처방전 -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열일곱 번째 이야기 제산 2019.10.21 764
4079 누리는 걸까, 소비당하는 걸까 [1] -창- 2017.09.09 765
4078 가족처방전 -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습니다, 열네 번째 이야기 제산 2019.09.30 765
4077 나의 기준을 세워라 [1] 어니언 2023.05.11 7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