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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19일 10시 09분 등록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중학생이 법구경을 읽는다고요?


중학교 1학년 큰 딸과 아내와 내가 함께 책을 읽었다고 하면, 도대체 어떤 책을 함께 읽느냐는 질문부터 받는다. 법구경이나 자본론을 함께 읽었다고 하면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뭐야? 이 사람들, 재수 없어!’라는 반응과 ‘에이! 거짓말 하지 마시오. 중학생이 법구경을 읽는다고요?’라는 반응이다. 

첫 번째 부류 사람들, ‘인문 고전은 재수 없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인문고전 소비자를 재수 없는 ‘명품족’으로 인식한다. 듣는 입장에서 억울하기는 해도 오죽했으면 이리 거세게 반발할까 싶다. 

지금은 다소 잠잠해 졌지만 한동안 한국 사회에 거세게 일었던 인문고전 열풍은 그 목적이 분명코 부자 되는 데 있었다. 유명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 구입한 값비싼 명품 정도는 둘러 주어야 돈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고, 돈 많은 친구와 더불어 나도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명품족’들이 명품을 사랑하는 논리다. 인문고전 열풍을 일으킨 이들은 인문고전이야말로 부(富)를 쌓게 해주는 진짜 명품이라고 외쳤다. 이들은 귀 앏은 학부모들에게 ‘이제는 자녀를 성공시키려면 국영수 만큼이나 인문고전이 중요해졌다’고 속삭였다. 그렇지 않아도 배금주의에 빠진 대한민국을 더더욱 갉아 먹는 논리일 뿐이다. 

두 번째 부류 사람들, ‘거짓말 하지 마시오, 중학생이 법구경을 읽는다고요?’ 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은 인문고전을 읽기 어려운 책으로 기억한다. 어른도 읽기 어려운 책을 아이가 어찌 읽는단 말인가? 

인문고전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짧게는 수 백 년부터 길게는 수 천 년 전에 쓰인 글이다. 당시의 사회와 시대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인문고전이 다루는 주제도 주로 철학이나 사상 같은 세계관을 다룬다. 더군다나 청소년이 게임이나 아이돌 그룹이 아닌 인문고전을 좋아할 이유가 그다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청소년이 읽기 좋도록 인문고전을 재편성한 좋은 책들이 얼마든지 많다. 그리고 청소년 시기는 인생관을 형성하는 시기이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고 했다. 사심 없이 순순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청소년 일수록 인문고전처럼 오랜 세월 검증된 가치관을 접해야 한다. 

사실 아내와 나도 학교를 졸업한 이후 십 수 년 간 인문고전을 온전히 잊고 살았다. 돈 버는 데 지쳤고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바빴다. 그러나 마흔을 넘기며 삶의 홍역을 단단히 앓았다. 가족과 일터로 동시에 몰아치며 사정없이 덥쳐 오는 난관들은 가족을 해체 직전까지 몰고 갔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나와 내 가족을 덥쳤을 때, 주저 앉아 울기도 지쳤을 때, 그때서야 인문고전이 눈에 들어왔다. 인문고전은 횃불이 되어 삶의 어둠 속에서 나아갈 길을 밝혀 주었다. 

인문고전은 두 가지 역설을 동시에 보여준다. 모든 존재는 우주와 시간 앞에서 무한히 자유로우면서도 동시에 우주와 시간 속에 단단히 연결돼 있다.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물러설 것인지 선택은 오로지 내 자신에게 달렸다. 나아갈 길을 찾으려고 책을 읽었다. 읽다 보니 보이기 시작했다. 책을 통해 삶을 다시 찾았다. 

아내와 나는 다시 찾은 삶의 기쁨을 간직하려고 책을 삶의 일부로 받아 들였다. 가족이 책으로 소통하고 싶었다. 책을 함께 읽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방과 거실과 식탁을 손만 뻗치면 책이 닿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온 가족이 함께 책을 읽으며 우주와 역사 속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진실을 매일 매일 경험하며 살고 싶었다. 

자신의 자녀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자녀와 세계 여행을 다닌 부모도 있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는 부모도 있다. 정답은 없다. 선택이 있을 뿐이다. 아내와 나의 선택은 인문고전이다.

다음 번 편지에서는 중학생이 되는 큰 딸에게 인문고전과 벗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아내와 내가 선택한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하겠다.


유형선 (morningstar.y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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