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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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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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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5월 14일 12시 52분 등록

소설가이자 신화 연구가인 이윤기 선생은 스스로를 ‘회색분자’라고 말합니다. 그는 신학대학을 다닌 경력과 예수님 말씀을 좋아해서 스님들로부터 예수쟁이로 몰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처님과 선불교를 좋아해서 기독교인들로부터는 ‘절집 처사(處士)’로 비판 받은 적이 있습니다. 고향은 경상도인데 전라도 문화를 좋아해서 고향 지인들에게 ‘족보가 의심스러운 놈’으로, 전라도 친구들로부터는 ‘무신경한 경상도 놈’으로 낙인찍힌 적도 있습니다. 또 영어 책 번역을 생계수단으로 삼고 미국에서 10년 가까이 머문 적이 있어서 한글 순혈주의자들로부터는 ‘미국 놈 똥구멍 빨다 온 놈’으로, 진보적인 어문학자들로부터는 ‘언어 국수주의자’로 공격 받은 적도 있습니다. 이상은 이윤기 선생의 유고 산문집 <위대한 침묵>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윤기 선생은 스스로를 ‘이류’로 규정하기도 합니다. 2009년 여름, 그는 2000년에 초판을 찍은 산문집 <잎만 아름다워도 꽃 대접을 받는다>의 개정판 출간을 위해 교정본을 만들면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어째서 꽃 이야기를 바로 하지 않고 잎을 통하여 꽃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일까?” 처음에는 부잣집에서 태어나거나 일류 대학을 나오지 못한 젊은이들, ‘얼짱’이나 ‘몸짱’이 아닌 평범한 청춘들을 격려하고 싶은 마음에 이런 제목을 잡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잎’들을 향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한 가지를 붙잡고 거기에 시간과 노력을 줄기차게 쏟아 부으면 언젠가는 능히 ‘꽃’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하고 싶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정판 원고를 준비하면서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었던 격려가 결국은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였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시 묻고 답합니다. “너는 너 자신을 ‘꽃’으로 규정할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지? 그럴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이류’로 규정하는 데 버릇 들어 있다.” 이 말에 뒤이어 그는 자신의 이력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윤기 선생은 고등학교를 3개월만에 그만두고, 대학입학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신학대학에 진학하지만 대학을 포기합니다. 서른 넘어 다시 대학에 들어가지만 이번에도 중도하차합니다. 그의 공식적인 최종 학력은 대학 중퇴입니다. 그는 쉰네 살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인생의 대부분을 ‘3등칸’에서 보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자신의 소설은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이 아닌 ‘가작 입선’했고, 미국의 한 대학에서는 학교에서 월급을 받는 ‘연구원’이 아니라 보수가 없는 ‘초빙 연구원(Visiting Scholar)’이었으며, 같은 대학에서 ‘교수’가 아닌 ‘객원교수(Visiting Professor)’를 지냈습니다. 그의 대학 졸업장은 나이 예순에 받은 ‘명예 졸업장’이고, 그는 종종 ‘박사’로 불린 적이 있지만 실제로는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게 전부입니다.

 

이윤기 선생은 많은 번역서를 내고 오랫동안 소설을 쓰고 30년 넘게 신화를 공부했지만 그 어디에서도 주류는 아니었던 듯한데, 스스로도 주류에 합류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딸과 나눈 인터뷰 형태의 대화에서 우여곡절을 거쳐 ‘2등칸 인생’에 올라섰지만 ‘1등칸’으로 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상을 받고 여러 권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음에도 그는 스스로를 ‘이류’로 여기며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입선, 중퇴, 초방, 객원, 명예…… 보라, 한 번도 ‘꽃’으로 피어 보지 못한 채 나는 ‘잎’으로만 살았다. 그래도 잘 살고 있다.

 

그러니 젊은이들이여, 힘들 내시라. 이렇게 살아온 사람도 있으니.”

 

나는 이윤기 선생이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회색분자’나 ‘이류’는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내게 그는 ‘경계를 걷는 사람’입니다. 경계인(境界人)이었기에 신화와 현실, 영웅과 필부, 강단(講壇)과 강호(江湖), 한글과 영어, 기독교와 불교, 이렇게 서로 다른 세계를 넘나들 수 있었습니다. 나는 그처럼 경계를 걷는 이들에게 마음이 갑니다. 칼 구스타프 융, 조지프 캠벨, 스티브 잡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고 나의 스승 구본형 사부와 같은 사람들. 이들은 세상이 규정한 대로가 아닌 자신의 소명과 천복과 신념을 따랐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틀에 스스로를 맞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괴짜’였고, 세상이 만들어준 길이 아닌 자신들의 길을 만들어서 갔다는 점에서 ‘창조자’였습니다. 내가 이들을 ‘창조적 괴짜’라고 부르는 까닭입니다.

 

그들은 종종 세상과 불화하고 타협할 줄 몰랐으며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고집스러워 보이고 괴팍해 보이고 이상하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쫓겨나거나 파문당했으며, 세상물정 모르는 이상주의자 혹은 아웃사이더로 치부되곤 했습니다. 그들은 어김없이 불안과 고독 속에서 방황하며 시련의 시기를 거쳤습니다. 그런 시기에도 소명과 천복과 신념을 담금질하여 마침내 자기다운 세상 하나를 만들어내었습니다. 그들이 창조한 세계에 진실이 흐르고, 그 세계가 감동적이고 매혹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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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저, 위대한 침묵, 민음사, 2011년 1월

 

* 안내 : 구본형 선생님 추모의 밤

스승의 날인 5월 15일 수요일에 네 번째 추모의 밤을 진행합니다. 이번 행사는 ‘나의 스승, 구본형’이라는 주제로 변화경영연구소 동문회장 장성우 연구원이 주관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www.bhgoo.com/2011/497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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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6 00:37:38 *.153.239.100

승완씨 글 참 좋다.

선생님 제자 다운 글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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