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경(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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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 떠날 여행(크로아시아&슬로베니아)을 위해 짐을 싸고 있다. 나에게는 나만의 짐 싸는 방법이 있다. 여행 일주일 전부터 드레스룸 한 구석에 여행 가방을 열어놓고 생각날 때마다 물건을 하나씩 던져 넣는 것이다. 그렇게 짐을 싸면 필요한 것을 빠뜨리는 일이 없고,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물건이라도 ‘정말 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묻게 되어 가방의 부피를 줄일 수 있다.
나는 원래 짐을 잘 싸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정도 만이라도 짐을 잘 쌀 수 있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의 세월들이 있었다.
‘비상 호루라기를 불어 구조를 요청하고 구조를 기다리는 동안 부싯돌을 비벼서 불을 피우고 시냇물을 정수해 마셔야 할 상황이 과연 올까 싶기는 했다. 더군다나 책을 다섯 권이나 읽을 만큼 여유가 있을까. 그 전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여행에 가져간 책을 끝까지 읽은 적이 없다. 이게 필요할까 의심이 들면 무조건 빼놓고 가라는 게 경험자들의 조언이지만 나는 그것들을 끝까지 빼지 못했다. 그 결과 자전거 횡단 여행 역사상 둘째가라면 서러울 엄청난 무게의 짐이 탄생했다. 거의 40킬로에 육박하는 무게였다.’
어쩌면 그게 그의 삶의 무게인지 모른다.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고 산다. 집착이 많을수록 삶도 무겁다. 그래서 짐의 무게는 그 사람의 삶의 무게라고 할 수 있다. 짐을 잘 쌀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자유롭다는 것이다. 필요한 온갖 것을 다 들고 떠나야 안심이 되는 사람들처럼 우리 역시 버리지 못하는 어떤 집착 때문에 삶이 한없이 무겁고 복잡한 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늘 말한다, 인생은 나그네요,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그러나 그 말의 의미를 얼마나 삶에 녹이며 살고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이번 주는 내가 진행하고 있는 6기 모닝페이저들의 다섯 번째 모임이 있는 날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주 과제(weekly tasks) 중에 ‘옷장 정리하기’가 있다. 정리한 옷 중에 서로 나눠 입으면 좋을 옷들을 모임에 가져오기로 했다. 이미 경험이 있는 그들은 서로 나누어 입는 것의 즐거움을 알고 있다. 비운 곳에는 새로운 것이 채워진다는 것도 그들은 알고 있다. 나 역시 정리할 때마다 망설여지는 옷들을 과감히 버리는 희열 때문에 벌써 여러 번 옷장을 정리했다. 옷장이 날씬해지는 만큼 삶도 가벼워졌다.
나의 버리는 연습은 모닝페이지 이전에 캐런 킹스턴이 쓴 <아무 것도 못 버리는 사람>이라는 책에서 시작되었다. 그 책을 읽고 나는 둔기로 머리를 심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무엇을 지독히도 못버리는 나는 이전의 묵은 관계와 기억, 심지어 상처마저도 추억이란 이름으로 다 싸안고 있었다. 그 짐들이 내 에너지를 얼마나 앗아가는지를 알지 못한 채…. 못 버리고 싸 안고 있는 과거의 짐들 때문에 내 삶이 앞 뒤 사방 얼마나 막혀있는지, 훤히 보였다. 그 책은 ‘청산’이라는 단어를 대학 이후 내게 다시 돌려주었다.
다행히 나는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버리는 연습을 시작하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올 한 해 나는 더 많이 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종국에는 다 버려도 크게 아쉬울 게 없을 만큼 내 삶이 가벼워지기를!
옷장을 정리하니 이 만큼 다시 버릴 게 나옵니다.
벌써 4번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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