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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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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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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7일 13시 59분 등록

산방에 인터넷 공급이 중단된 지 두 주째지만 AS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산중에서 세상을 보는 가장 유용한 눈이 고장이 나자 처음엔 조금 답답했는데 이제는 그것도 괜찮습니다. 다만, 이렇게 편지를 보내야 할 때 예전처럼 면사무소 신세를 지다 보니 받는 분들에게 송구한 시간이 있습니다. 배짱 좋은 통신회사지만 그래도 다음 주에는 고쳐주지 않을까요? 양해바랍니다.

 

요즘 아랫마을을 지나노라면 사람 얼굴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가을걷이 철이라 모두 들에 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의 가을은 상대적으로 여유롭습니다. 올 한 해 나의 농사는 나무와 토종벌 농사에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감나무나 매실나무는 최소 2~3년을 기다려 수확을 시작할 수 있고 풀조차 뽑지 않는 농법을 쓰니까 크게 할 일이 없었습니다. 상강 어귀에 수확할 토종꿀 농사 역시 그들이 주는 만큼만 거두는 방식이라서 크게 손 줄 일이 없었습니다. 다만 딸 녀석이 좋아하는 고구마와 땅콩 농사만 쥐 오줌만큼, 그것 역시 퇴비만 듬뿍 주고 온갖 풀 속에 버려두었습니다.

 

올해도 역시 내버려둠 농법이지만, 고맙게도 고구마와 땅콩이 결실을 맺었습니다. 지난 주말 딸 녀석과 함께 우선 먹을 만큼만 아주 조금 고구마를 캤습니다. 풀을 들추고 피복한 비닐을 걷어내자, 녀석이 작게 흥분하며 호미를 들고 고구마를 캡니다. 녀석은 작년에도 그랬듯 고구마 줄기가 시작된 땅을 직접 파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하면 고구마가 상처를 입거나 부러지기만 할 뿐 덩이줄기 전체를 캘 수가 없습니다. 고구마 덩이가 묻혀 있을 만한 곳에서 먼 곳부터 조심스레 흙을 지워 나와야 상처 없는 고구마를 얻을 수가 있는데, 당장 결과를 보고 싶은 마음이 앞서는 탓입니다. 요령을 다시 일러주어도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때로 소중한 결과는 더 느린 방식으로 얻어진다는 것을 녀석이 깨닫기 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보입니다.

 

상처입고 부러진 고구마를 캐내면서도 녀석은 즐거워합니다. 녀석의 관심은 거기 있고, 나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나의 관심은 오직 땅심이 얼마나 향상되었나 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땅심의 척도는 두 가지입니다. 호미질을 하면서 불쑥 만나게 되는 지렁이가 얼마나 많이 늘었는지, 지난 해에 비해 고구마 크기는 얼마나 커졌는지. 이곳에 벌써 3년 째 풀을 뽑지 않는 농사를 짓고 있고, 초봄에는 지렁이 똥인 분변토도 뿌렸으며 겨우내 썩힌 퇴비도 듬뿍 뿌렸기 때문에 그로 인해 땅이 얼마나 더 좋아졌는지가 가장 큰 관심이었습니다.

 

지렁이 수가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남들은 기상조건이 나빠 올해 고구마의 상품성이 많이 떨어졌다는데, 나의 고구마는 지난 해에 비해 두 세배 크기가 커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수확량도 서너 배 늘었습니다. 작년에는 줄기가 시작된 땅을 파도 가는 뿌리만 있고 고구마 덩이가 없는 자리가 많았는데 올 해는 거의 모든 줄기에 덩이를 맺었습니다. 아직도 이 고구마에 상표를 달아 시장에 내보기에는 부족하지만, 자자산방을 찾는 손님들에게 아궁이에 넣어 구워 드시라 하기에는 충분한 결과입니다. 내게는 이 보다 큰 기쁨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미련한 놈으로 보거나 지나치게 게으른 놈으로 보기도 하지만, 나는 이런 방식의 성장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비료나 농약을 주어 단기적 성과를 얻는 성장의 방식은 나의 가난을 구제하는데 조금 더 보탬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 땅을 이어서 써야 할 다음 세대에게 더 큰 가난을 안겨줄 것입니다. 지구 전체가 더 크게 병들게 될 것이 뻔합니다. 일기가 확연히 나빠졌고 강 주변의 농토를 없애면서 자연스레 배추 값과 채소값이 폭등하고 있는 것을 몸으로 겪으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성장방식을 되돌아볼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늘 당장을 위해 살고 늘 당장의 성과에 목을 매고 있습니다. 이는 딸 녀석이 고구마가 있을 자리에 직접 호미질을 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딸 녀석도 고구마를 캐면서 생각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온전한 고구마를 얻기 위해 더 풍부한 거름이 필요하고 호미질을 하는 방식에 더 느린 방식이 유용하다는 것을. 고구마를 캐면서 그날을 그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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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2010.10.07 16:03:23 *.216.249.82
용규 형님! 안녕하세요
서울에서 부르던 사장님이란 호칭 대신 항상 제 마음속에 품고 있던 형님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저도 형님 만큼이나 "고질적인 수줍음"이 있는것 아시죠^^)
문득 형님생각이 나 오랜만에 이곳에 들어와 올리신 지난 글들을 읽었습니다.
글들을 읽어가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네요.(요새 뻑하면 운다고 와이프가 놀립니다)
30대 초반 만난 형님이 열정적으로 사업을 벌이던 모습도 생각나고
어느밤인가 진탕 취해 흐느적거리는 저를 위로해 주시던 모습도 생각나고
진지하게 형님의 꿈을 이야기하던 모습도, 그 꿈을 실행하겠노라며 홀연히 떠나시던 것도,
이제는 나와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고 계시는 형님에 대한 그리움도, 내 생활에 젖어
대부분은 형님을 잊고 지내는 시간의 야속함도, 여러가지가 생각나며 형님 산방을 찾아 밤새도록 소주잔을
기울이고 싶은 생각에 눈물이 멈추질 않습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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