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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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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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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4일 00시 52분 등록

<장자>를 보면 ‘귀신같은 솜씨를 지닌 목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목수의 이름은 경(慶)인데, 그가 만든 거(鐻)를 보고 사람들이 ‘귀신같은 솜씨’라고 찬탄했습니다. ‘거’는 악기의 일종이기도 하고 악기를 거는 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노나라 임금이 그의 작품에 감동하여 물었습니다. “자네는 무슨 기술로 이렇게 만드는가?” 경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는 목수일 뿐, 무슨 특별한 기술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오직 한 가지 있기는 있습니다. 저는 거를 만들 때 기(氣)를 함부로 소모하지 않고, 반드시 재계(齋戒=금식)를 하고 마음을 가라앉힙니다. 사흘을 재계하고 나면, 축하나 상을 받고 벼슬이나 녹을 타는 생각을 품지 않게 됩니다. 닷새를 재계하고 나면 비난이나 칭찬, 잘 만들고 못 만들고 하는 생각을 품지 않게 됩니다. 이례를 재계하고 나면 문득 제게 사지(四肢)나 몸뚱이가 있다는 사실마저 잊습니다. 이때가 되면 이미 공무니 조정이니 하는 생각도 없어져, 오로지 기술에만 전념하고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외부적 요인이 완전히 없어집니다. 그런 후 산의 숲에 들어가 나무의 본래 성질을 살펴 모양이 더할 수 없이 좋은 것을 찾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거기서 완성된 거(鐻)를 보게 된 후야 비로소 손을 대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둡니다. 이렇게 되면 하늘과 하늘이 합하는 것입니다. 제가 만드는 것들이 귀신같다고 하는 것이 여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경의 대답 속에서 거를 만드는 일이 나라(왕)의 요청에 의한 것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왕과 직접 대면한 것을 보면 제법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경이 이 일에 임하는 자세가 인상적입니다. 그는 재계(금식)를 하며 작업을 위한 준비에 공을 들입니다. 먼저 그는 작업으로 얻을 수 있는 외적 이득(축하, 상, 벼슬, 녹)을 잊습니다. 다음으로 작업의 성패 여부, 그리고 그에 따른 외부의 칭찬과 비난을 잊습니다. 다음으로 작업을 요청한 주체(조정)와 작업의 성격(공무)을 잊고, 마지막으로 자신마저 잊습니다.

이렇게 되면 그의 내면에는 작업과 관련된 외부적 요인을 사라지고 ‘거 만들기’ 자체가 유일한 목적으로 남습니다. 다시 말해 그의 마음에 ‘거’라는 작품만이 존재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신이 거와 하나가 된 상태에서 작품의 재료를 찾아 숲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거와 가장 잘 맞는 나무를 찾습니다. 이 과정에서 ‘거’라는 자신의 존재와 나무 사이에 공명이 일어납니다. 이 공명을 그는 기술의 수준이 아닌 ‘하늘과 하늘이 합하는’ 차원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렵고 남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적 체험에 가깝습니다. 이 차원에서 내면의 거와 외면의 거가 하나로 통합됩니다. 그러면 거는 최소한 절반은 완성된 셈입니다. 이 두 측면의 통합이 실제 작업을 통해 신이 만든 것 같은 훌륭한 작품으로 귀결됩니다.

내면의 비범성에는 외부에서 그 비범성을 표현할 방법을 찾아낼 수 눈이 있습니다. 이 눈을 맑게 만드는 방법은 집착을 버리는 것입니다. 버려야 할 집착은 욕망과 두려움, 그리고 의무입니다. 경이 버린 것이 바로 이것들입니다. 이 세 가지를 버릴 때 우리는 경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초월할 수 있고, 그가 거와 나무의 본질을 꿰뚫어 본 것처럼 핵심을 통찰할 수 있습니다. 욕망과 두려움과 의무는 어떤 일의 출발점일 수는 있으나, 이 출발점이 일의 완성도를 방해합니다. 이 세 가지는 지각을 왜곡하고, 과거와 미래에 매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sw20100913.gif
* 장자 지음, 오강남 풀이, 장자, 현암사, 2003년
* 홍승완 트위터 : @SW2123

IP *.255.18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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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화
2010.09.14 09:44:11 *.253.124.89
"버려야 할 집착은 욕망과두려움 그리고 의무입니다". 란 문구가 가슴에 팍하고 박힙니다.
빠른 시일내에 장자를 읽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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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완
2010.09.15 00:19:35 *.255.183.127
넵! 저도 감사합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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