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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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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30일 14시 18분 등록

지리산에 다녀왔습니다. 오후 백무동에서 장터목으로 올라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새벽 천왕봉에서 일출을 기다리다 내려왔습니다. 서울에 살 때는 거의 매주 근교 산에 올랐었는데, 정작 산중에 살면서는 뒷산의 정상에 오르는 일도 드물게 살아왔습니다. 삶이 참 재미있습니다.

 

백무동 코스는 중산리 코스와 함께 지리산 천왕봉에 오를 수 있는 최단 코스입니다. 1915m의 해발 고도를 6km 내외의 거리로 오르는 길이 바로 이 두 코스입니다. 따라서 아주 가파른 오르막을 돌파해야 하는 코스입니다. 왕년에 산을 즐겼기에 이 코스를 선택하는 것에 별 부담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산행을 시작하고 500m쯤 가파른 길을 올랐을 때 알았습니다. ‘, 이러다 죽겠구나.’ 심장 박동이 용량을 초과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입구 표지판에 쓰여진심장 돌연사 예방을 위해 무리한 산행을 하지 맙시다라는 문구가 떠오를 정도였습니다.

 

휴식의 길이를 잘게 나누어 몸에게 적응을 유도하고 점점 보행 길이를 늘려가는 방법으로 겨우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세석으로 뻗어나가 다시 여러 갈래로 몸을 누인 지리산의 원경을 조망하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간 참 방탕했구나. 숲에 살아 좋은 공기가 몸을 살려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자 전보다 더 많은 양의 담배를 즐겼고, 이러저러한 일을 일으키느라 심신을 되돌아보는 일도 게을리 했구나. 서서히 배가 나오는 것과 타협하더니 이렇게 저질 체력이 되었구나.’

 

하지만 이것은 어설픈 성찰에 불과했습니다. 하산 길에서 나는 더 참담한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오른 쪽 무릎이 구부릴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통증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가파른 내리막길이 그간 불어난 체중을 무릎에 가중한 탓이었습니다. 두 개의 손수건으로 무릎을 묶어 충격을 줄여보았지만, 올라간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고 나서야 겨우 기듯이 출발지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교차하며 만난 등산객이 나를 세우더니퇴행성 관절염일 가능성이 있다고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 보탭니다. 자신이 그랬었다고, 꾸준한 등산으로 거의 완치했으니 진단 후에 잘 관리하라고 당부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한 이틀 쉬고 나니 관절의 통증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지만 자괴감을 떨칠 수는 없습니다. 통증이 주는 아픔이 슬픈 것이 아니라, 맑고 꼿꼿하게 살지 않아 몸이 먼저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합니다.

 

어떤 이는 스스로를 성찰하기 좋은 장소로 선방과 병원과 감옥을 말합니다.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선방이라는 장소에 드는 것은 자유의지에 의한 것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두 곳은 거의 강제로 부여되는 성찰의 기회라 할 수 있습니다. 선방과도 같은 산방에 살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는 생활을 하자 신이 더 강력하게 성찰의 기회를 주시는 모양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모든 통증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가을을 맞고 있습니다. 그대 부디 아프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산방의 인터넷에 고장이 발생, 늦은 편지를 드리는 점 양해를 구합니다.

IP *.20.20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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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10.09.30 23:10:54 *.252.50.66
살빼고, 운동하슈.  오늘은 강의하느라 통화못했네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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