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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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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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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5일 01시 02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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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은 무덥지만 이 무더위가 제 시절인 생명도 많습니다. 이 숲만 놓고 보면 개망초는 무더위 속에서 한 물 갔습니다. 하지만 코발트빛 닭의장풀과 주황빛 참나리, 혹은 담홍색 누리장나무 꽃이나 우유빛깔 사위질빵 꽃 등은 무더운 지금이 물 만난 고기처럼 제 시절입니다. 이 무더위 조만간 물러나면 물봉선이나 칡꽃이 이 숲 속에서 제 빛과 향기를 마음껏 피울 것입니다. 숲에 살아보면 어느 생명이건 제 시절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무더위를 제 시절로 사는 생명이야 지금이 좋다지만, 삼복 더위에 강아지를 낳아 한참 육아중인 개 바다의 고통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바다는 남편 을 꼭 빼 닮은 흰색 강아지 두 마리를 달랑 낳았습니다. 지난 편지에 고해드렸듯이 짓고 있는 손님방의 구들 놓을 자리에 터를 잡았습니다. 멀쩡한 집을 버려두고 건축 중인 흙 집의 흙 바닥에다 새끼를 낳은 까닭은 아마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바다에게 미안했지만, 손님방 건축을 마무리해야 하는 입장인 나는 하는 수없이 눈도 뜨지 못한 강아지 두 마리를 개 집으로 정성스레 옮겨주었습니다. 잠시 어미인 바다를 묶어두고 깨끗한 수건에 강아지 두 마리를 감싼 뒤 개 집으로 옮겼습니다. 바다를 풀어주자 바다는 개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가서 아기들의 몸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으로 집 주변을 샅샅이 조사하더군요. 혹시 아기들에게 해가 될 요소가 개 집 주변의 풀섶에 있지 않을까 아주 면밀하게 조사하는 눈치였습니다. 이후 바다는 한 이틀을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나는 손님방에 구들을 놓았습니다. 새벽부터 형님과 동네 목수들이 모여 함께 작업을 시작하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불을 때고 열기를 응축해 구들 속의 고래로 그 열기를 전달하기 위한 자리인 함실 아궁이 속에 바다가 새끼들과 함께 누워있었습니다. 녀석들을 데리고 다시 이 흙 집의 흙 바닥으로 회귀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개 집에서 폭염을 견디며 새끼들을 기르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판단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들이 함실에 있다고 해서 구들 놓는 일에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닌지라 그대로 구들장을 덮어 나갔습니다. 바다는 밥 먹는 때 빼고는 그 자리를 사수했습니다. 오히려 마치 그곳 함실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준 웰빙 개 집이라고 여기는 듯 편안해 보였습니다. 문제는 다시 한 나절 만에 불거졌습니다. 구들장을 다 놓은 뒤 불을 지펴 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첫 불을 때는 이유는 구들이 제대로 설계되고 마무리되었는지, 구들장 틈새로 연기가 새어 나오는 곳은 없는지를 살펴 보강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강아지를 개 집으로 옮겨놓고, 불을 지폈습니다.

 

불은 활활 잘 탔습니다. 굴뚝 자리로 연기도 잘 흘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때 바다가 아궁이 쪽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깽깽대는 강아지를 입에 물고 있었습니다. 바다는 불타는 아궁이 앞에서 안절부절 어쩌지 못하며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바다는 이 아궁이가 새끼들을 양육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라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바다에게 방 안에 데려다 놓으라고 하자 강아지를 문 채 욕실과 주방, 그리고 방 사이를 오가며 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어디도 마땅하지 않은 지 아궁이에서 조금 떨어진 구석 자리에 새끼를 내려놓고 새끼의 몸을 혀로 핥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뒤 남은 한 마리의 새끼도 데려다가 핥아주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큰 돌멩이와 흙이 섞여 있어 불편해 보였지만, 녀석은 집을 버리고 그곳을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스티로폼을 깔아주었지만, ‘바다는 그냥 흙 바닥을 고수했습니다. “나도 모르겠다. 알아서 키워라. 바다야.” 그렇게 하루가 지난 오늘 아침 밖으로 나오자 바다가 달려왔습니다. 바다보다 새끼들이 궁금해 어제 그 자리에 가보았습니다. 없었습니다. 다시 사방을 찾아보았지만 새끼는 없었습니다. 덜컥 걱정이 되었습니다. ‘바다에게 새끼들 어디 있냐고 여러 번 물었습니다. 바다는 본관 백오산방 가장 낮은 마루 밑으로 시선을 주었습니다. 그곳 흙 바닥에 을 닮은 새끼 두 마리가 귀여운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바다의 밥을 챙겨 주었습니다.

 

바다는 집 짓느라 복잡해진 이곳에서 고집스럽게도 최적의 자리를 찾으려 애썼습니다. 벌써 보름 가깝게 무더위와 해충, 설치류들로부터 새끼들의 안전과 위생을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그간 실로 눈물겨운 모성을 보았습니다. 문득 어머니가 보고 싶고, 잠시 서울에 올라가 있는 딸 녀석이 그리워졌습니다. 나의 어미도 저 개의 마음 이상으로 나를 키우셨을 텐데, 나는 저 개 같은 부모 되기를 하고는 있나?
IP *.20.20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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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2010.08.05 06:18:53 *.174.185.244
아름다운 넘.
건강하시게. 행복하시고 여름 잘 나시게나. 바다와 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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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8.05 07:40:43 *.67.223.154
휴~ 가슴을 졸이면서 겨우 읽었어요.  원, 아슬아슬 해서리...
날이 너무 더워 새우깡도 못챙겼는데...
바다는 숭고한 ..사람같은 개 ... 이군요.    여름 잘 견디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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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민
2010.08.06 13:13:19 *.114.22.75
 글을 읽다 제 가슴이 새카마 졌더랬습니다
결론땜시리...
글을 읽으며 제가 어릴적 키우던 '멍멍이(실명)' 생각도 했습니다.
멍멍이도 새끼를 많이 낳았더랬지요. 벌써 30년이 넘어버렸네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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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개
2010.08.09 10:51:19 *.143.199.135
아이고 깜짝이야..^^ 놀랬어요..다행이네요. 바다 가족이 모두 잘 지낸다니..
바다네 가족 소식을 이렇게 또 듣게되어 반가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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