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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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은 무덥지만 이 무더위가 제 시절인 생명도 많습니다. 이 숲만 놓고 보면 개망초는 무더위 속에서 한 물 갔습니다. 하지만 코발트빛 닭의장풀과 주황빛 참나리, 혹은 담홍색 누리장나무 꽃이나 우유빛깔 사위질빵 꽃 등은 무더운 지금이 물 만난 고기처럼 제 시절입니다. 이 무더위 조만간 물러나면 물봉선이나 칡꽃이 이 숲 속에서 제 빛과 향기를 마음껏 피울 것입니다. 숲에 살아보면 어느 생명이건 제 시절이 따로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무더위를 제 시절로 사는 생명이야 지금이 좋다지만, 삼복 더위에 강아지를 낳아 한참 육아중인 개 ‘바다’의 고통은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바다’는 남편 ‘산’을 꼭 빼 닮은 흰색 강아지 두 마리를 달랑 낳았습니다. 지난 편지에 고해드렸듯이 짓고 있는 손님방의 구들 놓을 자리에 터를 잡았습니다. 멀쩡한 집을 버려두고 건축 중인 흙 집의 흙 바닥에다 새끼를 낳은 까닭은 아마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바다’에게 미안했지만, 손님방 건축을 마무리해야 하는 입장인 나는 하는 수없이 눈도 뜨지 못한 강아지 두 마리를 개 집으로 정성스레 옮겨주었습니다. 잠시 어미인 ‘바다’를 묶어두고 깨끗한 수건에 강아지 두 마리를 감싼 뒤 개 집으로 옮겼습니다. 곧 ‘바다’를 풀어주자 바다는 개 집으로 쏜살같이 달려가서 아기들의 몸에 코를 대고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으로 집 주변을 샅샅이 조사하더군요. 혹시 아기들에게 해가 될 요소가 개 집 주변의 풀섶에 있지 않을까 아주 면밀하게 조사하는 눈치였습니다. 이후 바다는 한 이틀을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 나는 손님방에 구들을 놓았습니다. 새벽부터 형님과 동네 목수들이 모여 함께 작업을 시작하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불을 때고 열기를 응축해 구들 속의 고래로 그 열기를 전달하기 위한 자리인 함실 아궁이 속에 바다가 새끼들과 함께 누워있었습니다. 녀석들을 데리고 다시 이 흙 집의 흙 바닥으로 회귀한 것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개 집에서 폭염을 견디며 새끼들을 기르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고 판단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들이 함실에 있다고 해서 구들 놓는 일에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닌지라 그대로 구들장을 덮어 나갔습니다. 바다는 밥 먹는 때 빼고는 그 자리를 사수했습니다. 오히려 마치 그곳 함실이 자신을 위해 만들어준 웰빙 개 집이라고 여기는 듯 편안해 보였습니다. 문제는 다시 한 나절 만에 불거졌습니다. 구들장을 다 놓은 뒤 불을 지펴 보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첫 불을 때는 이유는 구들이 제대로 설계되고 마무리되었는지, 구들장 틈새로 연기가 새어 나오는 곳은 없는지를 살펴 보강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강아지를 개 집으로 옮겨놓고, 불을 지폈습니다.
불은 활활 잘 탔습니다. 굴뚝 자리로 연기도 잘 흘러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때 바다가 아궁이 쪽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깽깽대는 강아지를 입에 물고 있었습니다. 바다는 불타는 아궁이 앞에서 안절부절 어쩌지 못하며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바다는 이 아궁이가 새끼들을 양육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라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바다’에게 방 안에 데려다 놓으라고 하자 강아지를 문 채 욕실과 주방, 그리고 방 사이를 오가며 자리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어디도 마땅하지 않은 지 아궁이에서 조금 떨어진 구석 자리에 새끼를 내려놓고 새끼의 몸을 혀로 핥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뒤 남은 한 마리의 새끼도 데려다가 핥아주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큰 돌멩이와 흙이 섞여 있어 불편해 보였지만, 녀석은 집을 버리고 그곳을 선택하고 있었습니다.
스티로폼을 깔아주었지만, ‘바다’는 그냥 흙 바닥을 고수했습니다. “나도 모르겠다. 알아서 키워라. 바다야.” 그렇게 하루가 지난 오늘 아침 밖으로 나오자 ‘바다’가 달려왔습니다. 바다보다 새끼들이 궁금해 어제 그 자리에 가보았습니다. 없었습니다. 다시 사방을 찾아보았지만 새끼는 없었습니다. 덜컥 걱정이 되었습니다. ‘바다’에게 새끼들 어디 있냐고 여러 번 물었습니다. 바다는 본관 백오산방 가장 낮은 마루 밑으로 시선을 주었습니다. 그곳 흙 바닥에 ‘산’을 닮은 새끼 두 마리가 귀여운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습니다. 가슴을 쓸어 내리며 ‘바다’의 밥을 챙겨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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