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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6일 07시 12분 등록

올해 함께 공부하게 될 연구원들을 뽑는 2차 선발 과정에서 세 권의 책을 읽고 정리한 다음 소감을 써보라 했습니다. 나는 그 첫 번 책으로 에릭 홉스봄이라는 역사학자의 자서전인 ‘미완의 시대’를 과제로 주었습니다. 690 페이지짜리 작은 목침만한 두께의 책입니다. 그 안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조금 발췌해 보겠습니다.

“내 또래의 지식인들에게는 두 개의 조국이 있었다. 하나는 자기가 태어난 나라이며, 다른 하나는 프랑스였다. 마찬가지로 20세기에 서양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 아니 세계 어디든 도시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정신적으로 자기가 태어난 나라와 미국이라는 두 개의 조국이 있었다......미국은 굳이 발견될 필요가 없었다. 미국은 우리 존재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 예나 지금이나 하느님은 그렇게 멀 수가 없었고, 미국의 입김은 그렇게 강할 수가 없었다”

19세기 파리는 유럽의 수도였고, 20세기의 뉴욕은 세계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이 두 나라 두 도시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요 ?

19세기 프랑스는 그림과 조각, 빛나는 전통을 자랑하는 프랑스 소설을 제외하면 ‘세계최고’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들도 셰익스피어나 괴테, 단테 그리고 푸슈킨보다 프랑스 작가가 더 훌륭하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가장 독창적인 프랑스 음악도 비엔나의 음악을 따라갈 수 없었고, 프랑스의 철학은 독일의 철학보다 분명히 한 수 아래입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 그리고 세계의 젊은이들이 그때 파리의 허름한 호텔로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 노 역사가의 견해를 따르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랍니다.

프랑스에는 중요한 자산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원하는 외국인 누구에게나 자신의 문명을 선사해줄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누구도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장악한 이태리와 독일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고, 영국에게는 섬나라의 편협성이 느껴졌습니다. 혁명이후 프랑스는 가장 폐쇄적인 궁정문화를 민주화 시켰고, 사람들은 확장된 귀족문화를 즐겼습니다. 가장 국수주의였던 이 나라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원칙을 수호하면서 모든 사람에게 나라를 활짝 열었습니다. 19세기 프랑스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이민을 받아들인 나라였습니다. 파리는 국제문화의 중심지였고, 누구나 한 번은 살아 보고 싶은 도시였고, 살아 보았다고 자랑하고픈 선망의 도시가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뉴욕의 힘과 미국의 힘을 만들어 낸 것은 미국인들의 힘이 아니라 미국을 선호하여 찾아온 세계인들의 힘입니다. 미국자체가 그렇게 여럿이 모여 만들어진 나라입니다. 이미 실리콘 벨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1/3은 미국인들이 아닙니다. 가장 다이나믹하고 창의적인 세계인들에 의해 미국의 국부가 채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려있는지요 ? 서울은 세계인들이 꼭 찾아오기를 희망하는 열린 도시이며, 꼭 한번 살아 보고 싶은 도시인지요 ? 우리는 우리의 문명을 세계인들에게 나누어 줄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요 ? 우리가 세계인들에게 나누어 줄 만한 우리의 매력은 무엇인지요 ?

오늘은 어려운 질문을 드렸습니다. 생각을 모으면 좋은 생각들이 쌓이고 그 생각의 더미 속에서 아름다운 대안들이 나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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