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박승오
  • 조회 수 3727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08년 4월 14일 08시 45분 등록

* 담배를 다시 물었습니다. 끊은 지 8개월만의 일입니다. 결코 다시 피우지 않으리라는 굳은 다짐은 한 번의 호기심에 너무나 쉽게 무너졌습니다. 그렇게 나약한 스스로가 한심하고 답답하여 또 다시 담배 한대를 피웠습니다.

* 매력적인 한 여성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살짝살짝 보이는 혼자 웃음과 어리숙한 듯 보이는 순수한 모습에 이끌려 매일 밤잠을 설쳤습니다. 조금 무관심한 사람입니다. 전화를 잘 받지 않고, 부재중 통화가 찍혀 있어도 다시 전화를 하지 않습니다. 좋다, 싫다, 미안하다, 고맙다 등의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 키운 지 5개월이 된 아기 고양이는 여전히 제 품에 잘 안기지 않습니다. 그저 자다 일어난 직후나, 제가 퇴근하여 돌아왔을 때에만 와락 달려들어 볼을 부비고는, 애정 욕구가 충족되면 금새 무릎을 내려가버리는 얄미운 아이입니다.

- 처음 담배를 피웠던 때를 기억합니다. 멋져 보이던 하얀 몸뚱이에 불을 당기는 순간 그것은 너무나도 지독한 맛이었습니다. 그 맛에 익숙해 지기까지 그것은 그렇게 순순히 즐거움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겨우 맛을 알게 되었을 때의 쾌락은 처음에 상상했던 만큼의 반의 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돌아보면 언제나 사형수들의 ‘마지막 소원’ 이었던 그것의 영화 속 환상에 지난 십 년간을 사로잡혀왔다는 배신감마저 듭니다.

- 그녀를 만난 지 한 달. 지금까지 그녀가 먼저 전화한 적은 세 번입니다. 간혹 오는 문자들도 그저 ‘날씨가 참 좋다. 오늘도 파이팅!’ 정도의 가벼운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문자 하나와 전화 한 통에 하루에도 천당과 지옥을 몇 번씩 왔다갔다 합니다. 그녀를 잘 알지 못함에도, 어느새 이상형으로 꿈꿔왔던 모습들을 그녀에게 투사하여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 품에 안기려 하지 않는 아이를 윽박지르고, 엉덩이를 팡 하고 때려주면 아이는 껴안을 때 더 으르렁댑니다. 그럴수록 저는 더 억지로 끌어 안으려 하고, 아이는 ‘하악’ 소리를 내며 도망갈 뿐입니다. 보고만 있어도 좋을 것을 기어이 품에 안으려는 이유를 가끔 저도 모르겠습니다. 집착인 것을 알면서도 멈추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중독이란 결국 ‘결코 채워지지 않을 욕구’에 대해 끊임없는 동경일 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첫 시도가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 대개 우리의 첫 중독은 시작됩니다. 스스로 환상을 높일수록 도달하기 어렵고, 그래서 그 차이만큼의 아쉬움이 더 큰 환상을 만들어내는 기묘한 순환의 굴레입니다.

박찬욱 감독이 초등학생 딸에게 준 가훈(家訓)이 재미있습니다. ‘아님 말고!’ 라고 썼다지요? 불가능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지는 현시대에 일침을 꽂는 말입니다. ‘내려 놓음’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통제 할 수 없는 것, 이미 손에서 떠난 것에 “아님 말고!” 라고 말하며 돌아서는 것도 용기입니다.






IP *.189.235.111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08.04.14 10:22:44 *.209.38.7
주말에 뽕이라도 맞은건가? ^^
능란하게 풀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라 눈을 비비고 다시 보네.

재미있는 것은 박찬욱의 가훈을 나는 정반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
사람들이 도전을 하지 못하는 것은 실패와 타인의 평판을 두려워하기 때문이잖아. 바로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는 주문으로 받아들인거지. 일단 해봐,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하고 저지르고 사랑을 고백하는거야. 아니면 말고! 아니라고 해서 세상이 두 쪽 나지는 않아. 너의 실행력이 훈련되었고, 옵션이 하나 지워지는 성과가 생겼잖아!

같은 표현을 정반대로 해석한 것이 재미있어서 말이 길어졌네,
좋은 일주일!
프로필 이미지
옹박
2008.04.14 10:49:25 *.218.204.156
우선 늘 용기 주심에 두손모아 감사드려요.

ㅎㅎ 저도 사실은 한명석 선생님처럼 생각하고 있었어요. 박찬욱 감독이 그렇게 창의적인 영화들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일단 해보자, 아님 말고!' 하는 실험정신 때문이라 생각했거든요.

우연히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초등학생 딸에게 미리부터 '포기하는 법'을 가르친다는 구절들을 여럿 보게 되어서 '아, 그런 거였구나'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 또한 듣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오해일수도 있을 것 같아요. 어찌되었든 정말 재미있네요. 두 의미가 완전히 반대네요. ㅎㅎ
프로필 이미지
앨리스
2008.04.14 15:24:04 *.252.102.43
저는 그 표현을 언젠가 인간극장인지..암튼 비슷한 프로그램에서 한국여자와 결혼해서 한국에 사는 파키스탄(이란인지...기억이 가물가물^^)인 얘기를 다룬 프로에서 들어었습니다. 그 사람도 처음엔 고생을 무척 많이 했지만 타고난 성격이 긍정적이고 활달해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한국에서 조그만 중소기업 사장이 되었더라구요. 그런데, 그 파키스탄인의 인생모토가 '최선을 다하자. 아님 말고!'라고 했었어요. 경상도 사투리까지 섞어가며 그 말을 하는데, 웃기기도 하고 또 순간 '바로 이거다!' 싶은 생각이 들어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네요. 박찬욱 감독도 그런 얘기를 했었군요^^
프로필 이미지
옹박
2008.04.15 08:54:56 *.218.204.156
ㅎㅎ 그 분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싶네요. 아마도 귀엽고 순수한 표정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이라니 왠지 동질감이.. ^^;
프로필 이미지
소은
2008.04.26 00:56:33 *.127.99.34
글을 참 잘 구성하였다, 옹박, 글이 일취월장하는구나.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