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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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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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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0일 00시 36분 등록


IMG_1355.jpg

벌에게 제대로 쏘였습니다. 분봉하는 벌을 받아 앉히기 위해 필요한 도구를 가지러 다른 벌통 앞을 지나다가 이마의 한 가운데를 쏘였습니다. 워낙 갑작스러워서 처음엔 벌이 그냥 이마를 물어보는 줄만 알았습니다. 일하기 위해 쏜살같이 날아가던 벌이 자신의 길을 가로막은 어떤 물체를 탐색하기 위해 다리로 더듬어보고 물어뜯어보는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꺼이 얼음이 되었습니다. 오직 녀석이 조용히 날아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위협하던 벌도 가만히 있으면 날아가니까요.

 

그렇게 얼음이 된지 한 20여 초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느낌이 이상했습니다. 녀석이 심하게 날개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날아가려는데 날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꿀벌은 침을 쏘면 자신의 삶도 마감해야 합니다. 일벌의 예리한 침이 누군가의 살에 박힐 때 침에 연결된 내장도 함께 떨어져 나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벌의 날개 운동 소리가 사라졌습니다. 벌은 없어졌지만 나의 이마에는 녀석의 몸 일부가 달린 침이 남아 있었습니다.

 

마침 벌 공부를 위해 찾아오신 손님에게 부탁하여 침을 뺀 뒤, 분봉 중인 벌을 마저 받아 앉혔습니다. 귀 밑까지 화끈거리고 호흡도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을 마치고 손님과 차를 마신 뒤 거울을 보았더니 낯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거울 속에는 흠씬 얻어맞고 내려온 복싱 선수가 있었습니다. 정신이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얼른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내가 우는 모습의 사진을 꼭 찍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문득 흠씬 얻어맞은 것처럼 부어 오른 이 모습도 간직해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곧 어느 대학에 강의를 하러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정신을 챙기자 걱정이 되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읍내 병원 응급실에 가서 엉덩이 주사 2대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부어 오른 얼굴이 가라앉기까지는 며칠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국 부은 얼굴로 강의를 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했고 민망했습니다. 하지만 강의가 끝나고 받은 피드백에서 나의 부어 오른 얼굴 때문에 청중들이 아주 진한 리얼리티를 느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숲의 일원이 되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40대 중반 한 남자의 살아있는 삶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에게 분봉하는 벌을 받는 일은 무척 신나는 일입니다. 쉼 없이 집을 짓고 꿀과 꽃가루를 수집하여 새끼 벌을 키우며 강군이 되어가는 벌통을 살피는 일도 신나는 일입니다. 그것은 저 하나의 통 속에 들어 있는 벌들의 삶을 통해 늦가을 두어 되의 꿀을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벌쟁이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오늘은 벌의 침에 쏘여 제대로 넘어져보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다시 벌통 앞에 서는 것을 한 동안 주저했을 텐데 나는 오히려 벌들을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벌이 어떤 상황일 때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접근을 불허하는 지를 더 깊이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 제 길을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넘어져보는 경험이야 말로 삶의 리얼리티입니다. 리얼리티가 있는 삶이라야 진정 살아 있는 삶입니다.

IP *.229.236.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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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6.10 01:27:08 *.219.168.123
emoticonemoticonemoticon와아, 꿈벗 모임 해산 이후 백오산방에 들렀을 때, 아이폰에 담긴 영상보며 단군일지 새벽기상 모습 제발 찍지 말아달라고 해서 그날부터 안 찍었는뎅, 나도 리얼리티를 남기는 중이었거덩. ㅋㅋㅋ 다시 찍어야겠당.

안 아푸셈? 좋은 인물 망가졌네. 벌이 그대에게 생명을 받쳤으니 그 몫까지 달달하게 잘 사셔야제.
우는 모습을 찍고 잡다고? 울려드릴까? 다시는 울지 말고 부디 잘살라는 벌님의 애절한 유언 같구먼.

어쨌든 멋지다!!!  장렬히 산화한 벌의 혼령 때문인지 오늘따라 글도 힘차구먼. 탈리다 쿰!!!  아우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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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2010.06.10 04:22:46 *.123.110.13
진실한 사진 처럼 보입니다. 고군분투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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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나무처럼
2010.06.10 04:29:11 *.64.107.166
웃어야 할 상황이 아닌데도 웃음이 나오네요..

언제나 형님을 만나면 제대로 촌놈이 되어 간다는 생각에 늘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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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
2010.06.10 06:50:20 *.102.107.122
새벽부터 빵 ~ 터졌습니다.
제대로 촌놈 되셨네요.
목숨바쳐 큰 웃음 선사해 준 꿀벌에게도 명복을 빕니다.
그나저나 ' 벌에게 쏘이지 않는 비법'이 담긴 책 없나 찾아봐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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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한
2010.06.10 08:57:05 *.41.37.43
ㅋㅋㅋ 아침부터 빵 터지네요.
아따 이거 서울촌놈은 무서워서 놀러 가겄습니까?
그나저나 제대로 다큐컷 하나 얻으셨네요. 피사체의 진솔함이 화각이나 색감으로 포장할 수 있는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훌륭한 작품이어요.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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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금희
2010.06.10 09:13:58 *.30.108.33
사진의 모습 보고는 많이 놀랐어요.
거기다 벌에 쏘인 것이라 하니 또 놀랐고요.
헌데 제대로 넘어져 보고, 더 유심히 관찰하게 되셨다는 말씀에
안도하며, 용기를 얻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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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란
2010.06.10 09:26:35 *.137.144.102
저도 그냥 지나갈 수가 없네요~
스스로도 어색하고 민망한 넘어진 모습, 하지만 생활인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이렇게 공유해주신(^^)
용감한 용규님의 40대 중반의 삶에 화.이.팅.을 외쳐봅니다~~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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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수
2010.06.10 10:29:16 *.168.105.111
캬... 제대로 쏘였네. 기도가 부어올라서 호흡곤란이 오지 않았던 것이 천만다행이네. 아름다운놈은 운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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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일
2010.06.10 13:30:11 *.144.41.48
 얻어맞은 서세원 인줄 알았습니다. 초대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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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6.10 16:19:52 *.131.127.50

용규 아우!
건강조심하시게...
걱정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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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현
2010.06.10 22:14:48 *.82.29.117
에고, 많이 아프셨겠어요.
이제 좀 괜찮으세요?
사진보고 깜짝 놀랐네요..
조심, 또 조심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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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4 12:05:11 *.183.7.113
넘어져보는 경험...  지금의 제가 꼭 해봐야될것 같은 경험 같습니다.
님의 글을 읽고 나니 제가 요즘 힘든 이유가 넘어질때가 됐는데 
안 넘어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어서인것 같습니다.
넘어져서 한번 구르고 다시 일어나도 될것을 너무 버티는것만 같습니다...

한번 제대로 넘어져서 구르고 다시 벌떡 일어나야겠습니다...
물론 상처가 남겠지만 그건 넘어질때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한 흔적으로 안고 살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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