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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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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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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일 00시 01분 등록

열다섯 살에 스승에게 받은 가르침을 평생 지킨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1802년(임술년) 10월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생활 중에 마을 아전들의 자식을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받고 작은 서당을 열었습니다. 어느 날 열다섯 살 소년이 서당을 찾아왔습니다. 다산이 며칠 두고 보니 소년의 재능이 눈에 띄었습니다. 다산은 소년에게 공부에 매진하라고 가르침을 주면서 친필로 그 내용을 적어주었습니다. 그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산석(山石)에게 문사 공부할 것을 권했다. 산석은 머뭇머뭇하더니 부끄러운 빛으로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게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둔한(鈍) 것이요, 둘째는 막힌(滯) 것이며, 셋째는 답답한(戛) 것입니다.’ 내가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 데 민첩하면 그 폐단이 소홀한 데 있다. 둘째, 글짓기에 날래면 그 폐단이 들뜨는 데 있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그 폐단은 거친 데 있다. 대저 둔한데도 들이파는 사람은 그 구멍이 넓어진다. 막혔다가 터지면 그 흐름이 성대해지지. 답답한데도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뚫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틔우는 것은 어찌하나?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네가 어떻게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한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계(三勤戒)를 받은 소년의 이름은 황상이고, ‘산석’은 그의 아이 적 이름입니다. 황상은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워준 스승에게 감격했습니다. 평생 동안 스승의 가르침을 돌처럼 지키고 산처럼 지켰습니다. 황상이 일흔다섯 살 때 쓴 ‘임술기(壬戌記)’란 글이 있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60년이 지나 다시 임술년을 맞는 감회를 적은 글입니다. 그는 열다섯에 받은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뼈에 새겨 감히 잃을까 염려하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61년 동안 독서를 그만두고 쟁기를 잡고 있을 때에도 마음에 늘 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지금은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한묵 속에서 노닐고 있다. 비록 이룬 것은 없다 하나, 구멍을 뚫고 어근버근함을 틔우는 것을 삼가 지켰다고 할 만하다. 또한 능히 마음을 확고히 다잡으라는 세 글자를 받들어 따랐을 뿐이다. (...) 지금 이후로도 스승님께서 주신 가르침을 잃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얘야! 어겨서는 안 된다’고 하신 말씀을 행할 것이다.”

 

스승의 한 번의 가르침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꿨습니다. 정민 교수는 <삶을 바꾼 만남>에서 황상에 대해 “열다섯에 스승과 처음 만난 이후, 그는 죽을 때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스승을 모셨다. 잠시의 흔들림도 없었다. 평생을 지켰다. 바꾸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삶을 바꾼 만남>을 읽는 내내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제자에게 진심으로 가르침을 전한 스승의 마음,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뼈에 새겼다는 제자의 ‘명심누골(銘心鏤骨)’의 마음 때문입니다. 다산 선생과 황상의 만남은 서로의 운명을 바꾼 만남인 듯합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변합니다.

 

내게도 그런 스승과 그 분이 주신 가르침이 있습니다. 2004년 5월 구본형 사부님에게 글쓰기에 관한 한 줄의 가르침을 청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매일 더하고 매일 흐르거라.” 이 문장은 그날 이후 나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이 가르침대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최선을 다해 지켰다고 말할 수 없지만 잊은 적은 없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 흐른 지금 이 가르침은 나의 핵심가치가 되었습니다.

 

‘탐구심, 매일 더하고 매일 흐른다.’

 

가르침은 같으나 시간이 흘러 내가 변함에 따라 가르침의 의미도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글쓰기에 대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삶과 존재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내게 핵심가치는 중요합니다. 존재의 심장이자 삶의 방향성이기 때문입니다. 황상처럼 지킬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그와 같은 마음으로 노력하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sw20120430.jpg

* 정민 저, 삶을 바꾼 만남, 문학동네, 2011년 12월

 

IP *.122.2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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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12:30:28 *.220.23.67

승완이 편지 읽고, 사놓고는 보지 못한 책이

꽤 되는 것 같아..

천천히 읽어야지...

이번 책은 사자마자 읽게 될 듯...

맞아..어떤 만남은 운명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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