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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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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1일 00시 17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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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숲에 사흘 꼬박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봄이 당겨진 것인지 아니면 겨울이 짧아진 것인지 모를 일이지만
이번 비는 꼭 곡우(穀雨) 날 내리면 좋을 비의 포근함을 닮았습니다. 박무에 싸여 지워진 먼 마을 풍경 속에서 부지런한 불빛 몇 점 흔들립니다. 그리운 것들 그리워하기에 좋은 날입니다.

 

산마늘을 가져다 심어놓은 지 일주일이 되었습니다. 일주일 내내 산마늘의 새싹을 그리워했습니다. 녀석들의 변화가 궁금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들 근처를 서성였습니다. 이 놈 그리움에 화답이라도 하듯, 세 개의 작은 화분에 심어 주방 언저리에 둔 녀석들은 어느새 그 잎을 10cm 가까이나 키웠습니다. 하지만 앞마당 배롱나무 아래 심어 둔 녀석들은 며칠째 미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흘간 비를 맞고 나자 그들도 연두색 새 촉을 삐죽 땅 위로 뽑아 올렸습니다. 그들 모습이 참 예쁘고 대견합니다.

 

옮겨와 심은 첫날은 녀석들 새 촉이 언제 나올 지가 궁금하더니 새 촉을 틔우자 곧 언제 윤기 흐르는 너른 잎으로 변할 지가 궁금해졌습니다. 드디어 너른 잎이 되기 위한 완벽한 준비를 끝내자 벌써 그들의 꽃은 언제 피어날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그립다 하여 모든 것을 당장 품고 살 수는 없는 것이 자연의 법칙. 산마늘은 대략 5년을 살고 나야 첫 꽃을 피웁니다. 산마늘의 씨앗이 처음으로 싹을 틔우고 무려 다섯 번의 모진 추위를 무사히 견뎌내야 제 첫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입니다. 저들이 벌을 부르고 나비를 이웃하기 까지, 그렇게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거지반의 인생을 살고 나니 사람도 생명이어서 자연의 법칙과 나란히 걸어갈 때 그 삶이 온전한 자기다움과 거스름 없는 자기성장으로 충만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명 모두는 혼란스럽고 복잡한 관계 속을 헤매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조물주의 뜻이 거기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빚어지는 그 망라적 관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생명과 만물을 관통하는 우주의 질서입니다. 하지만 그 복잡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모든 생명은 자기 촉진의 능력을 지니도록 또한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포착하고 때를 기다려 변혁을 준비한 생명만이 어느 순간 마술처럼 피어날 수 있습니다. 그 순간이 올 때 그를 억제하던 관계와 존재는 모두 걷히고 비로소 마술 같은 변혁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모든 변혁은 국면의 전환을 수반합니다. 산마늘도 씨앗의 껍질을 벗고 나서야 뿌리가 생기고 첫 잎을 자라게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삶은 씨앗의 껍질을 버리는 전환을 통해 첫 번째 변혁에 성공합니다. 태양 빛을 모으고 스스로 자립할 양분을 생산하는 것으로 두 번째 국면 전환을 이끌어냅니다. 그런 뒤에도 5년의 추위를 견디고 나서야 비로소 첫 꽃을 피우는 국면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제 곧 봄은 오겠지만, 꽃은 그냥 피지 않습니다. 자기만의 때를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스스로를 촉진한 자 만이 제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마술 같은 변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숲에 사는 모든 생명의 일생이 그렇습니다. 숲이 고향인 우리의 일생 역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IP *.229.22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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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재
2010.02.11 02:20:35 *.236.255.230
백오산장 어디에 봄이 숨어 있었을까? 형 우리는 참 둔한 것 같죠. 푸른 싹이 나고, 꽃이 펴야 봄을 알 수 있으니.....
산장이 그리운 건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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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8 01:22:13 *.229.250.229
건재~
전화로 알려주었던 그 다큐 '기적의 사과'를 책으로 읽게 되었다.
러시아 연해주에 숲을 지키러 나가 있는 후배가 문득 한 권의 책을 보내주었는데,
받아보니 그게 바로 건재가 알려준 그 분의 이야기더군.
단숨에 읽었는데 참 좋았다.
그분의 사과농장에 가보고싶어졌다. 형편될 때 함께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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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나무처럼
2010.02.11 05:47:55 *.64.107.166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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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8 01:22:44 *.229.250.229
^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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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마음
2010.02.11 08:05:03 *.236.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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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8 01:23:13 *.229.25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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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5 11:43:14 *.67.223.154
행복산장에서는 설을 어떻게 지냈을까요?

보기 1. 행복하게
         2. 가족과 함께
         3.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이상하죠? 용규씨,
내눈에는 이 편지를 볼때마다 초록색 잎이 조금씩 커지는것 같아요.
맨 처음 사진도 이렇게 잎이 사진 꼭대기에 닿을 만큼 자라있었나요?

용규씨의 열렬 독자인 내 친구들은 답장을 하기가 부끄럽다고해서
내가 대신 쓰고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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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8 01:25:57 *.229.250.229
답 2-1. 딸 녀석을 제외한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

초록색 잎이 많이 커진 것입니다.
처음에는 잎이 거의 나오지 않았었죠.

'범'이라는 닉네임을 쓰시는데, 저는 누구신지 가늠이 안됩니다.
친구분들도 제 글을 읽는다니 더 짐작이 안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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