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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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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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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4일 01시 01분 등록

멈춤과 전환

 

13, 8, 8, 6, 10, 19, 17, 18, 15, 13, 10, 13, 18!!! 난수표 같은 이 숫자가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2010 1 1일부터 13일까지 기록한 이곳 산방의 최저기온입니다. 앞에 영하만 써주면 됩니다. 같은 기간 동안 밤 9시 뉴스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는 세계의 이상한 날씨 문제를 무엇보다 중요한 뉴스로 다루었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13일 연속 날씨 문제가 밤 뉴스의 주요 소식인 적은 아마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더 이상한 것은 뉴스가 왜 그 근원적 심각성을 다루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년째 갈수록 예보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기상청에 대한 비난은 자주 곁들여지면서도 말입니다. 다행히 어젯밤 뉴스는 평소의 도를 넘는 북극의 혹한과 남극의 엘리뇨 현상의 문제를 분석 보도했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쏟아진 눈으로 서울의 지하철이 지옥철 또는 지각철로 바뀌었다는 소식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추세로 보면 기상이변은 갈수록 심각해질 텐데, 앞으로 과밀의 대명사인 서울은 저런 소동과 불편을 과연 견뎌낼 수 있을까? 감나무는 영하 18℃ 이하에서 6시간 이상 노출되면 동사할 수 있다고 하는데, 곶감농사를 위해 심어둔 밭 주변의 감나무들은 앞으로 다가올 미친 겨울을 견딜 수 있을까? 온 천지가 녹지 않은 눈이어서 새와 산짐승들이 먹이를 구하기가 어렵고 어려운데, 틈만 나면 마당 언저리 눈을 치워놓은 곳에 모여 풀 씨로 몇 날을 견디고 있는 저 수 백마리 참새와 박새와 딱새와 오목눈이들은 앞으로 겨울나기가 얼마나 어려울까?

 

산방의 생활도 하루하루가 수행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여기도 많은 눈이 온 뒤 길 위를 그대로 덮은 채 녹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쌀과 기름이 떨어진 터라 할 수 없이 지게를 지고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숲과 달리 들판을 지날 때는 귀가 떨어질 듯 추웠습니다. 매일 차로 오르내리던 길을 쌀과 기름을 얹어 지게로 오르니 숨도 차고 땀도 났습니다. 남들은 고생스러운데 왜 그 산속에 집을 짓고 사느냐 염려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반복해서 서툰 지게질을 하다 보니 묘한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편리에 젖어 멈출 줄 몰랐던 몸의 이기심이 멈추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듯 오로지 효율과 탐욕스런 욕망만을 싣고 질주하는 문명에 대해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새로운 대안을 고민하는 삶을 살려 했으면서도 내가 얼마나 그 대열과 함께 하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그렇게 멈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구들방을 따끈하게 데워놓고 배를 깔고 누워서 나와 동갑내기 생태학자인 안드레아스 베버(Andreas Weber)를 만났습니다.

 

““시장은 비효율적이다. 사람들이 효율나사를 조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미국의 대통령에서부터 자그마한 동네의 이장에 이르기까지, 애덤 스미스의 후계자들로 구성된 오늘날 거의 모든 정치가들은 그래서 논리적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19세기에 사로잡혀서 21세기의 문제들을 19세기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우리가 이미 그토록 많은 것을 희생한 자유시장, 즉 작은 마을의 조용한 일상, 가족 내 여가, 자연 그리고 인생 자체마저도 희생한 자유시장은 물리학적 유토피아일 뿐이다.”

 

이 마을에서 지게를 지는 사람은 더 이상 없습니다. 산골 마을에서도 노동의 대부분을 문명의 첨단 연장들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중독된 편리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베버가 예시하듯 자유주의에 기반한 산업화는 우리에게서 수많은 것을 앗아간 것 또한 사실입니다. 효율과 편리라는 가치로 수많은 소중한 가치들을 덮어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비극을 껴안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쩌면 더 큰 비극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어 염려스럽습니다. 지금 기억하고 있는 이 자연’, 그 소중한 기억들을 머지않아 모두 잃지 않을까 하는 염려입니다. 물폭탄, 눈폭탄, 추위폭탄 의 반복에 이어질 또 다른 폭탄을 염려하게 됩니다. 지구를 공유지로 여겨온 우리에게 닥칠 공유지의 비극을 염려하게 됩니다.

 

지금이라도 멈출 수 있는 것을 찾으면 어떨까? 개인과 조직이 자유주의에 기반한 문명화를 자연주의에 기반한 문명으로 전환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어떨까? 내가 할 수 있는 멈춤과 전환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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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윤
2010.01.14 09:13:19 *.20.125.86
3개월 째 자전거로 출퇴근 하고 있습니다. 왜 진작에 이런 즐거운 자전거 놀이(출퇴근)을 미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잇거든요.  이곳 제주도에도 폭설이 내려 온섬이 하얗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눈뎦힌 한라산을 다녀와야겠습니다. 글 잘 읽고 느끼고 갑니다.  건강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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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01.26 10:45:23 *.229.223.183
2월 초에 숲에 빠진 분들과 제주에 가기로 했습니다.
혹시 꼭 권해주실 곳이 있으신지요?
그때면 눈은 사라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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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산
2010.01.15 08:40:46 *.246.146.154
그대, 나름 구들장지고 사는 재미가 있겠다.
한 열흘 출장갔다가 어제야 돌아왔네. 체류 기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눈이 오더라.
그 동네 양반들 얘기로는 눈이 자주 오긴 하지만 올해는 더하다고. 시청에서 준비한
염화칼슘도 동이났다네. 뭐 사전에 챙기기로 유명한게 그치들 습성인데도 올해는
정도 이상이라는 얘기겠지. 덕분에 환승할 때 마다 연착되어 수하물을 두 번이나
잊어먹는 진기한 기록을 세우고 왔네.

얼마 전에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를 읽으며 인디언들의 경고를 주의깊게
보았었지. 더 늦기 전에, 이 지구가 못견뎌서 본격적으로 몸을 뒤틀기 전에
인류가 지혜를 발휘해야 할 터인데... 아이티 강진을 보며 더 그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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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01.26 11:08:49 *.229.223.183
잘 지내시는겨?
거기는 이제 많이 따뜻해졌지?
오늘 볕처럼 따뜻하게 지내시기 바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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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해
2010.01.15 09:38:41 *.67.223.154
용규씨
이글루에서 살고 계시나요?
눈덮인 지붕은 해덮인 지중해의 지붕들과 같은 하얀색?

나도 읽고있는 책으로 대화에 참가해볼게요.
제목은 KEEP GOING 입니다.
이 책은 할아버지와 나눈 얘기들이 써 있어요.
그 할아버지는 어디에나 계셨는데요,

"네게 도전해오는 폭풍속에도 계시고, 그것에 용감하게 맞서도록 해주는 힘 속에도 계시지
그분은 절망에 대항하는 희망의 속삭임이자, 매일 아침 새로운 날을 맞이할 때,
네 얼굴을 비춰주는 햇빛이기도 하단다....."

"할아버지, 나뭇잎 사이에서 나는 목소리가 들리세요?"
손자가 물었다.
늙은 매가 미소지으며 부드럽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무슨 말을 하고있는 건가요?"
"삶이 말하고 있는 거란다"

노인의 대답이었다.   "그저 '그래도 계속 가라'고 말하고 있구나."

그래도 계속 가라.

시처럼 들려오는 대화입니다.
산방에서 도란도란 나눌 수 있는 이야기 같습니다.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언제든 날아갈 수 있으니
눈오는 아침에 백오와의 대화에 끼어들어봤어요.
잘 지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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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10.01.26 11:14:51 *.229.223.183
그 책 Keep Going이 읽고싶어집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보고싶군요. ^^

저는 아직 나뭇잎의 속삭임을 들을 순 없지만
그들의 수런거림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공감의 첫 단계가 느낌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입니다.

늘 격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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