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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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주제로 3년 가까이 ‘마음편지’를 써왔습니다. 가끔 스스로에게 질문합니다. ‘나는 왜 이미 글로 가득한 책을 다시 글로 표현하는 걸까?’ 오에 겐자부로의 책 <‘나’라는 소설가 만들기>에서 마음에 드는 답을 찾았습니다.
“표현하는 것은 새롭게 경험하는 것, 다시 경험하는 것, 그것도 깊이 경험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독서에 만족하지 않고, 읽은 책을 글로 표현하는 이유입니다. 좋은 책일수록 여러 번 읽는 과정에서 그 책을 ‘새롭게, 다시,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독의 장점입니다. 그런데 한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그 책을 재료삼아 글을 쓰는 건 또 다릅니다. 그 책을 글로 표현하면 읽을 때보다 ‘더 새롭게, 다시,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소설가란 가슴이 두근거리는 자신의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이다. 그리고 일단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어떤 식으로든 뻔뻔스러워져서 끝까지 계속 이야기를 하고야 마는 인간이다.”
‘책꾼’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보물섬에서 보물 찾듯이 책 속에 묻혀 있는 비밀을 발견합니다. 때로는 무인도에서 보물을 발견하듯이 무명 속에 묻혀 있던 명저를 발견하곤 합니다. 그러면 신이 나서 자신이 발견한 보물과 비밀을 이야기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슴을 떨리게 하는 책을 만나고 탐구하는 희열로 사는 사람이 책꾼입니다.
‘책꾼’ 겐자부로는 말합니다.
“내가 내 삶을 마무리지을 생각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것들을 묘사한다면, 그것들은 철저하게 복잡한 이레코사이쿠(여러 개의 상자를 크기순으로 포개어 안에 넣을 수 있게 만든 그릇) 상자가 되어, ‘인용 속의 인용의, 또 그 인용 속의 인용의’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을까?”
99페이지를 사라지게 하는 한 페이지, 99개의 문장을 날려버리는 하나의 문장을 만날 때 내 가슴은 뜁니다. 그러면 책에 나오는 구절을 거리낌 없이 인용하고, 거기에 내 생각을 흔쾌히 더 하면서 글을 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그 책을 읽은 나는 또 하나의 저자가 되고, 그 책은 나에 의해 다시 태어납니다.
훌륭한 책꾼에 의해 책 한권이 물리적으로 재탄생할 수도 있습니다. 박웅현은 <책은 도끼다>에서 자신에게 울림을 준 책을 소개하면서 “나의 도끼였던 책들을 독자 제현(諸賢)에게 팔아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고 광고인답게 말합니다. 판화가 이철수 선생은 <이철수의 웃는 마음>에서 말합니다. “광고인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가 이미 절판된 ‘전시도록’과 몇 판화집을 되살려놓았습니다. 이철수의 판화에 담긴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친절하게 안내하고 설명해준 덕분이었습니다.”
책꾼이 절판된 책을 멋지게 표현하여 다시 살려놓듯이, 내 ‘마음편지’를 통해 안 팔리던 책이 몇 권 더 팔리고, 잘 팔리는 책은 더 많은 이들이 찾으면 좋겠습니다.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계기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더 욕심을 내서 누군가 어떤 책을 읽고 다시 글로 표현하여 그 책의 또 다른 저자가 된다면 큰 보람일 것 같습니다.
오에 겐자부로 저, 김유곤 역, ‘나’라는 소설가 만들기, 문학사상사,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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