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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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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5일 07시 48분 등록
“부부 중 한 배우자에게 자녀가 다른 배우자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될 때, 거기에는 잠재적인 정서적, 성적 학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모가 자신의 필요를 위해서 아이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학대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이용은 학대이다.”

 

- 존 브래드쇼의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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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박사는 이혼 후 그를 간호해주던 일레인이라는 간호사와 재혼을 하였습니다. 재혼 이후 호킹 박사는 잦은 부상으로 병원을 찾게 되었는데 일레인은 그를 헌신적으로 보살핌으로써 사람들의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휠체어를 일부러 넘어뜨림으로써 호킹 박사의 몸에 수많은 상처를 입혔던 것이라는 충격적 사실들이 밝혀지면서 결국 이혼하게 됩니다. 그녀는 왜 그래야 했을까요? 정신의학에서는 이러한 사례를 가리켜 ‘대리인에 의한 뮌하우젠 증후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애완동물, 자식이나 가족을 고의로 아프게 하여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만든 다음 헌신적으로 간호함으로써 타인의 인정과 자기가치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바람직한 사랑을 ‘일방적 희생이나 헌신’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주변을 보면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식에게 헌신하는 부모를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아’를 자라나게 하지 못하는 모든 보살핌은 사랑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은 보살핌이 자기만족의 핵심적 원천이기에 상대가 자신의 보살핌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아이라면 손을 놓고 혼자 가고 싶어 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그 손을 꽉 잡고 놔주질 않습니다. 결국 그 보살핌은 성장이 아니라 자기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게 만드는 의존이기에 자기만족을 위해 자녀를 도구화하는 것입니다. 결국 아이가 자라면서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반항이나 단절로 치닫거나 혹은 자신을 보살핌이 계속 필요한 나약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관계의 심리적 연결이 깨지거나 부모가 자신의 삶을 만족하지 못하면 부모는 자식과 과잉결합이 이루어지기 쉽습니다. 부부관계나 삶에서 충족되지 못하는 정서적, 사회적, 심지어는 성적 욕구를 직간접적으로 아이와의 관계나 아이의 삶을 통해 충족시키려 들기 때문입니다. 흔히 딸은 아버지의 ‘작은 공주’가 되고, 아들은 어머니의 ‘작은 남자’가 되어 살아가거나  자식은 부모가 살아가는 삶의 유일한 의미가 되어버림으로써 대리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결국 자아는 억압된채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모를 관계의 그물에 걸린 채 허우적거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좋은 보살핌과 나쁜 보살핌을 구분하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좋은 보살핌은 자아를 발달시키지만 나쁜 보살핌은 자아를 억압합니다. 그렇기에 보살핌의 결핍 만큼이나 과잉 또한 ‘나쁜 보살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누군가를 보살피고 있다면 상대의 자아를 발달시키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억누르고 있는 것일까요?


 

- 2011. 6. 15.  '당신의 삶을 깨우는' 문요한의 Energy Plus 4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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