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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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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25일 13시 44분 등록
오늘은 욕망이라는 것에 대해 들여다 보려고 합니다.

인생사의 희노애락은 욕망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가장 근원적인 욕망은 생존 본능입니다.  생존 본능은 모든 생명체의 기저에 깔려있는 원초적인 욕망입니다. 살고자 하는 욕망은 결국 죽지 않으려는 헛된 불사의 욕망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살고자 하는 본능부터 더 많은 것을 가지고자 하는 욕망까지, 욕망이 우리를 살게 하고, 우리가 욕망을 살게 합니다.

부처의 말대로 인간사의 모든 번뇌는 욕망에서 비롯되지만,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상 욕망에 초연해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수양을 많이 쌓고 단단한 내공을 쌓아 번뇌에 시달리지 않고 독야청청하다고 자타가 인정하던 사람들조차 한순간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삽시간에 무너지기 일쑤죠.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욕망은 목표는 가지는 것(having)입니다. 근래에 동일한 이름의 베스트셀러가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인지, '없지만 가지고자 하는 것'인지에  따라 Having 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전자가 감사함이라면, 후자는 욕망입니다.  후자인 가지고자 하는 욕망을 이루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행위(doing)입니다. 벼랑 끝으로 밀어도 살고자 하는 욕망이 없으면, 어떠한 행위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에게 있어 욕망이 더 큰 에너지로 전환되지 못하고 소멸할 때 그것은 좌절과 무기력으로 바뀝니다. 이 단계에서 행위의 에너지는 0으로 수렴합니다. 그 마지막 끝에는 죽음, 즉  개체의 소멸이 있습니다. 욕망의 절대 부재는 개체의 소멸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삶으로 깨어나지만, 다시 죽음으로써 다시 깨어나는 존재입니다.

존재(being)는 나 자신 그대로를 말합니다.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완전합니다. 하지만 비단 밀란 쿤데라의 유명한 책이름을 빌리지 않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존재는 참을 수 없이 가볍습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존재하는 이른바, 실존은 쉽지 않습니다. 진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가 어려운 이 세상에서 우리는 남이 되기 위해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99%의 사람들의 출발선은 욕망이고, 그 욕망은 결국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고자 하는 것(being another)',  Being another, 즉 having입니다. 다시 말해 '타자에 대한 욕망'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바로 욕망의 실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타자의 욕망을 위해서는 결국 무無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 앞에 출발선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욕망을 평생 충족시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잠깐의 의지로 짧은 환희를 맛볼수는 있겠지만 그 노력을 평생 지속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샤르트르가 말한대로 타인은 지옥일 뿐입니다.

욕망이 아닌 존재 자체로부터 나오는 행위만이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지속 가능합니다. 하지만 존재로부터 나오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자연스러운 것들이지만, 외부 세계에서는 자연스럽게 보이지 않습니다. 외부세계는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어려운 장치들로 가득합니다. 자본주의가 그렇고, 경쟁사회가 그렇고, 입시제도가 그렇고, 사실 거의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살기 위해 본연의 존재는 설 곳을 찾기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꼭 기억해야 하는 한가지는 외부세계에서는 가져야 하지만, 존재의 세계에서는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것이 아닌 남의 것을 가지려고 애쓰는 노력은 결국 허무에 그칠 뿐입니다. 삶의 전면으로 나아가려면 자신의 존재를 외부로 확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진정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좋아하고, 잘 하고, 재미있는 일을 삶의 중심에 놓는 것이 현실적인 최선의 방편일 것입니다. 무엇을 더 가지기 위함이 아니라, 행위 자체가  목적이 되면 행위와 존재는 동일해집니다. 존재로부터 행위가 나오고, 행위는 존재를 증명합니다. 이 관계에서 타자의 욕망은 설 자리가 줄어듭니다. 저에게는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저의 존재를 증명하는 행위입니다. 잘 쓰는지 못 쓰는지는 존재의 차원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변명으로 매사 일관하고 있지만요^^ 마음편지를 쓰는 것은 저의 존재를 외부로 확장하는 것이 되겠네요. 이런 행위에 어떠한 사심도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그 욕망들은 부차적인 것들일뿐 지금 제가 글을 쓰고 있는 제 존재의 본질에는 개입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좋아서 쓰는 것이니까요.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는 물론 있지요.  그래도 인간(人間)이기 때문입니다. 좋아하시는 일들로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하루하루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IP *.239.3.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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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30 17:36:44 *.169.227.25

끌린다는 것은 어느 쪽일까요 ?   선택의 귀로에 서면 그 판단의 기준은 무엇이지요 ? 

꼭 그 끝까지 가봐야만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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