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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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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3일 00시 42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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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괴산군의 한 농부가 밭에서 옥수수를 따다가 말벌에 쏘여 사망한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습니다. 뱀에게 물려 사망하는 사람보다 벌에게 쏘여 목숨을 잃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통계가 말하듯, 벌은 인간에게 확실히 위험한 존재입니다. 특히 말벌과의 벌들은 대부분 어른의 새끼손가락 반 정도의 크기로, 사람에게도 무척 위협적인 벌입니다. 말벌과의 많은 벌들은 숲 혹은 숲 언저리에 자신들의 집을 짓습니다. 아마 애벌레 같은 동물을 잡아먹는 생활사를 발전시켜왔기 때문에 먹이가 풍부한 숲의 경계지대가 좋은 거처가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전의 편지에도 담았듯, 내가 사는 이곳 산방 곳곳에도 말벌과의 벌들이 집을 지어 함께 살고 있습니다. 대충 세어보아도 다섯 채가 넘는 집입니다. 그 중에는 그 집 자체가 정말 경이롭고 예술적인 건축물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공모양의 말벌 집이 두어 채, 넓적하게 노출된 육각형의 바다리나 등검정쌍살벌의 집이 세 채 정도 있습니다. 네 채는 오두막 처마에 지었고, 한 채는 안방 바깥쪽 창틀에 지었습니다. 안방 바깥쪽 창틀의 벌집은 검은등쌍살벌의 집인데, 이제 그 집의 길이가 약 25Cm에 달할 정도로 커진 상태입니다. 뜨거운 햇살이 드리우는 7월과 8월의 숲은 확실히 모든 생명의 삶이 한 해의 정점을 향하는 시간인가 봅니다. 벌들의 사회 또한 왕성한 번식과 팽창의 시간입니다. 이제 안방 앞을 지날 때면 녀석들의 존재감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얼마 전, 나는 그 검은등쌍살벌에게 뒷 목덜미를 쏘였습니다. 내가 그들을 해하려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녀석들 집 근처의 마당에 배수 문제를 살피고 있었을 뿐입니다. 몇 마리로부터 느닷없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위력은 대단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 하는 날개짓의 소리도 대단했지만, 벌에 쏘인 자리에 느껴지는 통증이 마치 그곳에 송곳처럼 날카로운 쇳조각이 박힌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통증은 길게 남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난 뒤 나는 저들을 응징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고민했습니다. 마당에 있는 토종벌을 관리할 때 쓰는 모자와 보호망을 착용하고 두툼한 옷으로 중무장을 한 뒤, 소위 토치 램프라 부르는 소형 화염방사기로 다 그을려 씨를 말릴까, 아니면 양파 망으로 뒤집어 씌워 따낸 뒤 확 묻어버릴까…… 여태 함께 살겠다는 마음으로 불편함을 무릅쓰고 최대한 그들의 공간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마음이 분노로 이글댔습니다. 그러나 고민은 길게 가지 않았습니다. 그냥 함께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들의 공격이 나에 대한 두려움, 아니 자신들의 생존에 대한 두려움에 근원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연에 살면서 더 확실하게 알게 된 진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삶이란 것이 본래 위험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 위험은 늘 주변에 존재합니다. 자연 속에서는 온갖 야생의 것이 위험이고, 도시는 한편 다른 종류의 수많은 사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곳이기도 합니다. 위험은 늘 두 갈래의 방향을 자극합니다. 움츠려 들게 하거나 공격하게 하거나. 두 갈래 중에 한 갈래를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두 갈래 속에서는 자기다운 삶을 실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 위험 너머를 보는 쪽을 선택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말벌 없이는 이 숲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들과 여전히 더불어 살기를 선택했습니다. 그대는 어떠신지요? 상존하는 위험을 어떻게 다루시는지요? 어느 쪽을 선택하시는지요?

IP *.229.156.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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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9.08.13 08:41:12 *.148.95.177
어휴, 녀석들이 드디어 일을 냈군요.
이야기를 듣는것만으로도 몸서리가 치는데 매일 함께 살고 있다니 형도 참 독하십니다.
얼마전에 선덕여왕에서 고현정이 이렇게 말했다네요. (저희 사장님 말씀)
"두려움을 이기는  방법을 아느냐? 철저하게 맞서던지, 아니면 냉큼 도망가는 것이다."
형 이야기를 듣고 보니 방법이 하나 더 있었네요. 더불어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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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규
2009.08.19 14:01:37 *.87.61.114
박승오님 메일을 드린다는 것이 직장생활이 바빠서 연락을 못드렸습니다.

인터뷰 관련해서 연락한번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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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8.20 10:15:02 *.229.250.180
하하, 독하지 못해 함께 사는 거 아닐까?
요즘도 거실 앞 마루에는 온갖 벌들이 윙윙댄다.
가끔은 겁도 나지.
그래도 어쩌겠니 여기가 그렇게 좋다는데, 함께 살아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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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윤
2009.08.13 11:19:57 *.20.125.86
"더불어 살기"로 한 그 마음을  벌들도 알아줬으면 합니다.  쫌 있으면 이곳 제주도는 벌초 행렬로 온섬이 들썩입니다.  작년에 조상님 묘에 벌초하러 갔다가 묘 바로 옆 풀 섶에 벌집이 있는 걸 보았습니다. 삼촌들이 마른풀에 불을붙혀 연기로 벌을 쫓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벌들은 자기집을 지킬려고 있다가 운명을 다하기도~~~~~~.
위험~~?  늘~두려운 존재이지요..............., 외부적 위험도 위험하지만 내부적 위험이 더 위험한 것 같네요~~.내 마음이 약해지는 위험이 찾아 올 때 내 정신을 일으켜 세우고 반듯하게 해 주는 그 무엇~~~~~~.???  그 것은 제주의 자연(오름)과 책 읽기 입니다.  김용규님의 산방생활과 그 주변 다른 모든것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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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8.20 10:19:37 *.229.250.180
말씀대로 이제 곧 벌초의 시즌입니다.
낫보다 예초기가 훨씬 위험한데, 우리는 이제 모두 예초기에 익숙해 졌습니다.
고무신을 신고 낫질로 소 꼴을 베던 시절에는 그런 사고가 훨씬 덜했지요.
문명이 가속화되고 빠르고 편리한 장비들에 친해질수록
우리의 삶은 자연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심지어 적대적으로 변화해 간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일례일 것입니다.

제게도 제주의 오름을 지키는 일에 애쓰는 제주의 지인이 있는데,
그 오름을 사랑하는 분이셔서 더욱 반갑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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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9.08.13 15:38:16 *.134.7.64
말벌에 쏘이고도 그정도이신 것을 보니 피가 그리 맑지는 않은가 봅니다. ^_^

어릴때 장난치다가 벌에 여러번 쏘여봐서 그런지 얼마전에 벌을 가지고 놀다가 쏘였는데 따끔하고 말더라고요. 내 피를 벌의 독이 부풀리게 하지 못하더라고요. 모기에 물려도 아이들은 이상하게도 크게 부풀어 오르는데 저는 아무렇지도 않을때가 많아요.

=

지난번 쌍살벌을 머리에 넣고 도 닦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는 안 통했나 봅니다.

늘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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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8.20 10:22:22 *.229.250.180
제 도시에서의 삶이 탁했으니 피가 탁하기야 하겠지요. ^^
허나 피가 탁한 것과 벌에 쏘여 불어오르는 정도의 인과관계는 금시초문이라는... ㅋㅋ

이제 곧 아니 이미 가을입니다.
가을햇살처럼 아름다운 나날 이으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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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한
2009.08.14 10:08:13 *.174.66.219
결국 공존의 길을 선택하셨군요. 이거 웬지 앞으로 산방가기가 겁이 날 것 같습니다.

위험을 옆에 두려는 결정은 현재의 제 그릇으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일단, 마음이 불편하거든요.
위험하지만 벌(또는 위험을 주는 그 무엇)이 있음으로 해서 숲이 있을수 있다는 큰 그림을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여 위험이라는 두려움을 넘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저같이 머리로 받아들여 불완전하기 이를데 없는 이성으로 판단하려는 중생들에겐
넘기 힘든 벽이네요.
형님의 용기있는 결정이 벌들의 마음까지도 공명시킬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니면 계속 보호망을 쓰고 사셔야 할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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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8.20 10:25:22 *.229.250.180
지난 번 등을 달았던 뒤안에 있는 아궁이 옆 처마의 말벌들은 요즘 무척 사나워졌다.
도무지 뒤안에 가는 것을 허용하질 않는다.
며칠 전에는 보호망을 쓰고 가서 연장을 챙겨왔다는...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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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분
2009.08.14 16:25:34 *.131.197.26
가슴에 와 닿은 '선택'이라는 말씀
제가 선택할 수 있는 거군요
그렇다면
선택할 수 있을 때 선택하겠습니다.
기쁜 선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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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8.20 10:26:49 *.229.250.180
네. ^^
늘 스스로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선택과 함께 하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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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골반
2009.08.15 23:47:43 *.234.76.197
작년 가을 용규님의  산속  통나무 집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나무를 쳐다보며 집중하는 눈 빛이 나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자유를 위해 과감히  실행하는 용기가 멋이 있던지.....
가끔 올라오는 글 에서 나무 냄새와  산 속의 에너지가 느껴지던지.....

저는 이번 크로아티아 여행지에서 어느 남자에게 내내 용규씨란
이름을 불러 얼마나 황당했는지..... ㅋㅋ

이젠 벌에 물린 목덜미의 부푸러 오른 혹댕이도 다이아몬드 중 가장 큰 다이아로 보인답니다.
항상 조심하시며   산속의 이야기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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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8.20 10:27:59 *.229.250.180
네. 조심하며 살겠습니다.
근데 누구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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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규
2009.08.19 14:00:42 *.87.61.114
저의 요즘 생활과 비슷한 듯싶습니다.

위험은 늘 두 갈래의 방향을 자극합니다. 움츠려 들게 하거나 공격하게 한다는 그말..

직장생활에서 느끼고 있습니다.

위험과 그에 따른 불안은 늘그러듯이 온저히 저로 사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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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8.20 10:31:28 *.229.250.180
움츠려들거나 공격하는 쪽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힘.
그것을 가질 수만 있다면 삶이 조금 더 평화로워지더군요.

저 또한 늘 헤매지만,
저는 가능한 멀리 보고 깊게 보고 또한 넓게 보려 애쓰는 것으로 수련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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