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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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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8일 19시 07분 등록

 

유럽 그룹 여행을 기획할 때마다 가장 신경 쓰이는 몇 가지가 있는데 기사 문제도 그 중의 하나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기사를 잘 만나야 여행이 편하다. 그룹이 유럽 투어를 할 경우 여행지와 나라 간 이동은 대부분 장거리 버스로 한다. 당연히 버스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다. 여행하는 사람으로서는 자연히 친절하고 서비스 좋은 기사를 기대하게 마련이다. 적어도 외국인 관광객을 맞는 기사는 그 정도의 자격은 갖추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사뭇 다르다.  유럽 전역을 돌며 이전 손님들을 내려준 곳에서 다른 손님들을 맞아야하는 버스 스케줄 때문에, 좋은 버스 못지않게 좋은 기사를 만난다는 건 그야말로 행운의 영역에 속한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호텔과 버스를 알선해주는 유럽 에이전트에게 좋은 기사를 보내달라고 거듭 부탁을 했다. 6월 여행 때 최악의 기사를 만났던 기억이 악몽처럼 되살아났기 때문에 더욱 신신당부를 했다. 6월 기사는 더할 수 없이 착한 사람이었다. 영어도 완벽했다. 그러나 경험이 턱없이 부족했고, 길에 대한 센스 마저 최악이었다. 원리 원칙만 따지고 얼마나 융통성이 없던지 투어 내내 손님들의 불평을 뒤통수에 달고 지내야했다. 당근 내 속이 까맣게 탔다.

 

그 동안 경험한 유럽 기사들은 운전을 잘하면 성격이 까탈스럽고, 성격이 좋으면 운전을 시원찮게 하고, 운전을 잘하고 성격도 착하면 융통성이 없어 사람 속을 태우는 것이 보통이었다. 사실 모든 게 만족스러운 기사는 좀처럼 만나기가 어렵다. 때문에 현장에서 기사를 달래고 얼러서 손님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중간 역할을 잘 하는 것도 인솔자의 몫이라면 몫이다.

 

이번 여행은 운이 좋았다. 기사를 정말 잘 만났다. 그는 여러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열흘 여행 끝에 류블랴나 공항에서 헤어지던 날, 우린 많이 아쉬워했다. 소 눈망울처럼 순한 그의 눈엔 섭섭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와 우리는 그 동안 가족처럼 깊은 정이 들었다 우리는 그의 노고를 맘껏 치하하며 감사의 선물로 트렁크 수영복을 그에게 주었다. 브라츠(Brac)섬 볼(Bol) 해변에서 그가 수영복이 없어 우리와 놀지 못했던 것을 기억하며 준비한 선물이었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게 될 거라는 말로 그는 감동을 대신했다. Who knows?

그러나 그와의 첫 대면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아침 일찍 인천 공항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은 7시간의 시차를 벌고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자그레브 공항에  밤 늦게 도착했다.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는 긴 비행 일정을 우리는 여행에 대한 설레임 하나로 인내했다짐을 먼저 찾아서 로비로 나간 나는 우리를 호텔로 데려다줄 기사를 찾았다. 그러나, 내 이름이 쓰인 팻말을 들고 공항 로비에 서있기로 한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일순 당황한 나는 사람들이 짐을 찾고 있는 틈을 타 청사 밖으로 나갔다. 버스 세울 만한 곳을 찾아 내달렸으나 기사는 커녕 버스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급하게 그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 순간 청사 한 켠으로 버스 한 대가 들어서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버스 안에서 한 사나이가 나왔다. 구레나룻을 잘 기른 덩치 좋고 키 큰 남자였다. 그는 순한 얼굴로 내게 다가와 ‘로이스냐’고 물었다. 눈에 힘만 주면 그는 영락없는 ‘레옹’이었다.


스탕코에 대한 풀 스토리 읽기 : http://www.bhgoo.com/zbxe/199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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