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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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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9일 10시 15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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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도는 우리 국민에게 잊을 수 없는 한해가 될 것이다. 지난 2월, 김수환 추기경이 영면하셨고, 5월에 노무현 전 대통령이,  8월, 광복 64주년이 지난 3일 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다. 잇달아 이 땅을 떠난 세 분의 개인사가 우리나라 격변의 현대정치사와 많은 부분 교차하고 있기에 1900년도에서 2000년도로 넘어 오던 시점, 온 거리에 새 천년을 축하하는 휘장이 거리에 불붙듯 나부낄 때 보다 더 격세지감 [隔世之感]을 느끼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를 믿는 사람은 패배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그가 걸어온 단 하나의 길에 책임을 질수 있는 말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의 서거 소식을 접하자마자 그를 추모하는 말과 글이 범람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 잊을 것이다. 그가 반짝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열정을 담보했는가를 우리는 또 쉬이 잊고야 말 것이다.   거시 이데올로기가 사라지고, 지극히 개인주의적 일상의 안위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방관자적 입장이 중시 되고 있는 지금,  뼈아픈 현대사의 아픔이 사라지고 나서야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이 무엇을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숙고하지 못한채, 지나쳐 버리고 말 것이다.  

역사학자 Edward Hallet Carr는 1962년에 펴낸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 라고 썼으며, 이 구절은 여러 각도로 다양하게 풀이될 정도로 유의미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E H 카의 글처럼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되려면 역사가 바르게 정의됨은 물론, 역사에서 현재에 적용될 가치를 찾아내 그것을 보존, 지켜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현대를 살아가는 남은자의 몫이다.  왜곡되고, 퇴보하는 역사는 불성실한 역사학자나 정치가에 의해서만 기록되는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의무조차도 방기한 방관자적 입장도 함께 쓰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우리를 지독하게 사랑했던 세 사람을 보내고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것과 같은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돕겠다는 초심으로 나섰던, 우리가 사랑해야만 하는 지도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아프게 껴안아야 한다.  그들과 역사의 수레를 함께 밀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와 현재의 관계, 그것의 의무를 이행하는 길이다.

E H 카는 ‘역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역사는, 역사 자체의 방향감각을 찾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온 방향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한 믿음과 굳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미래의 진보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에 자기들이 이룩한 진보에 대해서도 급속히 무관심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경고하고 있다.

  온 몸으로 자신이 역사임을 증명하려 애쓴 한 사람이 역사속에 잠들었다. 그가 그의 뜻대로 역사에 남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천명한 절대가치를 일관되게 지켜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시적 목표를 위해 한 생을 바친 그들처럼 생을 바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시대의 희망이 사라져 버린 뒤가 아닌, 현존하는 희망을 위해 불 밝힐 수 있는 단 하나의  촛불을 당겨줄 수 있는 혜안, 그 의무를 다해야 후세가,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의 직무유기를 묻지 않을 것이다.   

‘도시 전체가 암흑으로 뒤덮여 있는데, 나 혼자 촛불 하나를 들고 있다고 해서 그 어둠이 걷힐 리 만무하다. 하지만 어둡다, 어둡다 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우선 내가 가지고 있는 초에 불을 붙이고, 그 불을 옆 사람에게, 또 그 옆 사람에게, 초가 타고 있는 한 옮겨 주고 싶다. 그래서 내 주변부터 밝고 따듯하게 하고 싶다. 눈빛 푸른 젊은이여, 만약에 당신이 내 옆에 서 있다면 내 촛불을 기꺼이 받아 주시겠는가’

한비야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中

유독 여름에 약한 저, 그 어떤 이해 조건을 떠나서 오늘은 그를 위해 애도하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역사의 수레는 멈출 줄을 모르기에 우리는 또 앞으로 걸어가야 하겠습니다. 

  2009년 팔월, 흐린수요일, 앤의 편지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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