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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마음을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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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6일 00시 20분 등록

처음 그녀가 나의 산방을 찾아온 것은 늦은 봄날이었습니다. 그녀는 혼자였습니다. 하지만 외로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녀는 내게 의향을 묻지 않습니다. 나의 침실 창 밖으로 아름다운 군자산이 잘 보이는 자리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냥 그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한낮에 그녀는 이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해질녘이 되어서 찾아 들고 햇살이 들면 또 떠나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녀와 나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녀가 산방을 찾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산방을 찾아온 아랫마을 형님이 그녀의 존재를 발견하였습니다. 위험함을 경고하며 그녀가 조금씩 옮겨놓고 있는 흔적을 모두 치워버리려 했습니다. 그녀의 흔적을 털어버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말렸습니다. 나 또한 그녀가 점점 더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이곳을 좋아하고 또한 의지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가 차지하는 자리는 커져갔습니다. 식구들도 점점 늘었습니다. 시끄러운 소리도 자주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차츰 날카로운 존재로 변해갔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녀와 딸린 식구들을 무심히 대하려 애썼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그녀의 이름이 궁금해졌습니다. 어렵게 알아낸 그녀 이름은 등검정쌍살벌이었습니다. 모양도 무섭고 크기도 왕바다리만큼 커서 위험한 벌임을 알았습니다.

 

여왕인 그녀는 4월 말쯤 홀로 찾아와 안방 창문 밖 창틀에 작은 집을 지었습니다. 차츰 집을 키우고 자식을 낳아 사회를 이루었습니다. 지금은 손바닥보다 큰 집을 지어 살고 있습니다. 앞을 지나려면 딱 머리 위 높이에 자리한 그들을 지나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별로 관여하지 않으며 동거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침 공기를 맡기 위해 마루로 나왔을 때, 신발 하나가 완전히 뜯겨 있었습니다. 함께 사는 개, 산과 바다의 소행이었습니다. 화가 나서 막대기를 집어 들자 두 녀석은 달아났고 나는 막대기를 집어 던지고 녀석들을 잡으려고 뒤쫓아갔습니다. 붕붕 소리를 내며 날아간 막대기가 그녀 식구들을 자극했는지 벌집 앞을 지나는 내 머리에 3Cm나 되는 크기의 그녀 가족들이 바글바글 달라붙었습니다.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곧 살며시 주저앉으면서 명상 모드로 돌입했습니다. ‘나는 너희들을 해할 생각이 없다. 진정하렴!’ 놀랍게도 대부분의 벌이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두 세 마리의 벌은 떠나지 않고 머리카락을 헤집고 있었습니다. 읍내에 잡혀있던 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없이 그 상태로 이를 닦았습니다. 녀석들은 여전히 내 뒤통수를 떠나지 않았고 나는 이를 닦으면서 계속 명상모드를 유지했습니다. 속옷만 입고 있었던 나는 겉옷을 입어야 하는데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티셔츠를 입느라 머리를 건들면 그들이 공격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이 겉옷을 들고 속옷차림으로 차에 올라 내려오는 길에 마을 형님을 만나 겨우 위험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지속하고 있는 그녀와의 동거는 확실히 위험합니다. 찾아온 손님의 머리 위에 앉아 위협을 가한 적도 있습니다. 손님도 같은 방법으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알았습니다. 그들이 자신을 해하지 않는 한 동거남과 그 손님들을 공격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의 동거가 위험하지만, 또한 아름다운 측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풀이 지천인 내 밭에서 배추흰나비 같은 해충들의 애벌레를 사냥하여 농사에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비를 가릴 창틀을 내주었고, 그들은 나의 농사를 살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비용을 쓰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돕고 있습니다. 어떠세요? 우리의 위험한, 그러나 아름다운 동거가 재미 있지 않나요?

 

 
 
IP *.229.224.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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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6 05:33:25 *.160.33.149

 용규야,  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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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6 19:46:30 *.160.33.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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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6 13:34:03 *.51.12.117
아~!!!!
선생님~!!!!
날로 그림 실력이 ~~!!!

벌이 마치 영국 귀부인의 깃털 모자처럼 이쁘고 멋져요.
저이의 표정은 또한 귀부인 못지 않은 고상함(??!!)을 가지고 있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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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7.16 22:07:29 *.229.251.177
하하...
액자에 넣어 기리고 싶은 모습입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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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용
2009.07.16 08:45:16 *.215.121.114

언제부턴가 하나의 깨달음이 내게로 다가와 속삭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쁜 것을 멀리 한다고 멀어지는 것이 아니며
나쁜 것이 가까이 있다고 해서 나쁜 것이 아니다. 

깨달음이란 나로부터 멀리 존재하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항상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음을 새삼 되새겨봅니다.

또하나의 생각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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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7.16 22:10:29 *.229.251.177
양평엔 장마 피해 없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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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성
2009.07.21 11:31:48 *.62.108.30
숲 해설가 님이라고 칭해야 하는지,,,
오랜시간이 흐르고 변화 된 김형의 모습 어제 TV에서 보았어.
예린이 도 많이 크고 아빠 모습이 많이 있더구만,
김형 모습 보며 내가 행복해 지더이다.
같이 오르던 산들 특히 속리산, 괴산 황토집...

지금 있는 산방에 함 가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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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9.07.24 19:29:37 *.229.155.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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