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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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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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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9일 06시 25분 등록
지난 목요일 저녁의 일입니다.

자정이 다 되어 미술학원에서 돌아온 셋째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이는 몇 시간째 몸이 쑤시고 열이 오르고 오한이 나는데도 선생님에게 아프다는 말을 못하고 그날 주어진 과제를 완료하느라 갖은 애를 썼던 모양입니다. 아이는 옷을 갈아입을 힘조차 없이 침대에 쓰러져 앓았습니다. 다음날 일주일 간의 출장이 예정된 나로서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다른 세 아이에 비해 3.5킬로의 정상적인 몸무게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이 아이는 오히려 다른 아이들보다 자주 아프고, 한번 아프면 심하게 앓는 편입니다. 그러니 나로서는 덜컥 겁이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장 병원에도 데려갈 수 없으니 밤새 초조한 마음으로 아이 곁을 지켜야했습니다. 다행히 다음날은 스승의 날이라 오전 수업만 마치고 일찍 귀가하였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동네 상가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병원이 여러 개가 있었습니다. 마땅히 단골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어느 병원으로 가야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3시간 후면 공항으로 떠나야 하는 나로서는 아이를 가장 잘 치료해줄 병원을 고르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고심하다 <아론 이비인후과>란 병원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아이의 감기 몸살 증세에 적합한 과(科)인데, 아론이라는 크리스천 이름을 내 걸 정도면 자신의 일에 소명을 가진 의사일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의사는 전혀 친절하지 않았고, 아이가 걱정되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나에게 건성건성 대답을 했습니다. 서둘러 다른 손님을 받는 바람에 저는 얼떨결에 밀려 밖으로 나와야 했습니다. 주인을 닮아서인지 그곳의 간호사들로 한결같이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영양주사를 놔달라고 부탁하면서 주사약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지만 담당 간호사는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당연히 좋은 서비스를 기대하고 간 나로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더 이상 그 병원에서 진료를 받게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아이 역시 그곳에서 영양주사를 맞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주문한 영양주사를 들고나오는 간호사에게 ‘이곳에서 아이 영양주사를 맞추고 싶지 않다, 의사 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기분을 말씀 드리고 싶으니 잠깐 시간을 내 줄 수 있는지 알아봐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밖으로 나온 의사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일반 옷으로 갈아입은 채 (나에게가 아니라) 간호사를 향해 말했습니다.
‘그 주사약값 내버려두고 이 손님 그냥 보내드려, 대신 진료비는 내시게 해.’
‘의사선생님 잠깐만요.’
‘됐습니다, 가세요.’
(그가 그렇게 서두른 이유가 점심시간이 임박한 때문이었단 말인가. 그에게 손님은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곳에서 나와 두번째로 찾아간 이비인후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곳은 사실 처음에 이름만 보고 제껴 둔 곳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인데도 간호사들은 먹던 점심을 밀쳐놓고 열이 나서 힘든 아이를 침대에 누이고 먼저 (의사의 처방이 필요치 않은) 영양주사를 맞게 했습니다.

‘아이구, 목도 많이 부었네. 그래, 고3이라 얼마나 힘이 드니? 엄마 출장가신 동안 아프면 와서 진료 받아. 돈은 나중에 어머니가 내시면 되니까 전혀 염려 말고!’
점심에서 돌아온 의사는 진심으로 우리 아이를 걱정하며 다정하게 말을 건넸습니다. 소심한 우리 아이는 심히 안심이 되는 표정이었습니다.

두 의사를 보면서 그날 나는 느끼는 것이 많았습니다.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 일에 마음을 담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납니다. 마음을 담아 일하는 사람은 무한한 신뢰와 편안함을 줍니다. 두 시간 주사를 맞으며 푹 잠을 잔 아이는 이내 생기를 회복해 미술학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지난 밤에 국제 전화로 아이의 안부를 물으며 그 의사가 다시 얼마나 감사하던지요. 이제 그 병원은 우리 식구들의 단골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예전의 나 같으면 이미 영양주사에 바늘을 찔러서 들고 오는 간호사에게 그곳에서 아이 영양주사를 맞추지 않겠다고 말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말하지 않고 참는 것을 미덕이라 여겼던 예전의 나는, 그런 나 때문에 세상이 더디게 변한다는 걸 잘 알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할 말은 하려고 합니다. ^^*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저는 지금 시드니에 와 있습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좀 가지려고 주말을 껴서 미리 출장을 왔습니다. 토요일 새벽에 도착해 먼저 148미터에 달하는 시드니 대교에 올랐습니다. 오후에는 시드니오페라하우스에서 ‘러시안 트리뷰트’란 타이틀로 진행된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올해부터 시드니 심포니의 상임 지휘를 맡게 된 노장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의 지휘로 ‘쇼스타코비치 바이올린 협주곡 1번’(협연:Sasha Rozhdestvensky)과 (아쉬케나지가 직접 편곡한)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을 감상하였습니다. 일요일에는 기차를 타고 카툼바로 가서 광대하게 펼쳐진 블루 마운틴의 깊은 원시림 속을 헤매다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어제는 일을 마치고 페리를 타고 맨리(Manly)에 가서 한 영국 사나이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장엄한 구름 사이로 해가 떨어지는 아름다운 저녁을 쉘리 비치의 한 카페에서 맞으며, 자신들의 ‘심장’을 따라 사는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용기와 순수함이 내게도 전이되기를, 시드니 항으로 돌아오는 페리 갑판에 서서 간절히 빌었습니다.

이미 인터뷰는 마쳤지만 여기에 소개하지 못한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다음 주에는 샌디에이고 고속도로에서 운명의 사고를 당한 후 세계 여러나라를 돌며 1천 여명의 사람들에게 행복과 성공에 대해 물어본 오메가 석세스 프로그램 마스터 <제로>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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