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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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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 1일 08시 14분 등록


이 숲의 4월은 내내 잔인하도록 눈부신 아름다움.
아찔하도록 짧은 원피스를 입은 여인과 마주앉은 사내의 마음인 듯, 4월 내내 차마 숲의 어느 한 곳에 눈을 두기가 어려웠습니다. 숲을 거닐면 바닥은 온통 풀들의 고운 꽃으로 반짝이고 있습니다. 키 작은 냉이나 꽃다지, 현호색, 민들레, 꽃마리에 이어 어느새 제법 키가 큰 야생화들도 개화를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노란색 윤판나물의 꽃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여 꽃을 피우기 시작하자, 하늘말나리 수줍게 꽃대를 올립니다. 산딸기도 5월의 붉은 열매를 그리며 점점이 꽃을 피웁니다. 봄눈처럼 피고 진 산벚과 개복숭아나무의 잎새는 아가의 손을 닮았습니다. 야생의 느티나무들이 틔우는 새잎은 연두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 합니다.

요사이 밤엔 잠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고라니의 교성은 어둠이 내리기만 하면 온 숲을 흔들고, 푸호- 푸호- 이어지는 부엉이의 울음 소리 가슴을 휘젓습니다. 소쩍- 소쩍- 밤새 들리는 소쩍새의 울음은 어느 며느리 시어머니 구박에 목숨을 끊어 새가 되었다는 전설을 떠올릴 만큼 구성집니다. 손톱 모양의 초승달이 숲에 더하는 빛을 받으면 나도 숲도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확실히 4월의 밤 숲은 들짐승 날짐승과 사람 짐승의 마음을 휘젓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4월 숲 속 욕망들의 광범한 수런거림에도 나는 내 마음을 다잡고 살고 있습니다. 맘잡고 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농사입니다. 하루 조금씩 밭의 이랑 두어 줄에 온갖 작물을 심는 게으른 농사가 그것입니다. 아랫마을 형님이 남겨주신 고추 모종도 조금 심었고, 장날 사온 온갖 쌈채류도 정성껏 심었습니다. 삽주는 야생의 풀처럼 여기저기 드문드문 심는 중이고, 도마토에 수박과 오이도 몇 포기씩 심고 있습니다. 흙을 만지며 새 생명을 땅으로 옮기는 일에는 어떠한 잡념도 끼어들지 못합니다. 오로지 그 시간에는 온 우주에 흙과 나와 모종 몇 포기가 있을 뿐입니다.

밭에 새 가족을 심고 있으니 저들이 온 우주의 기운을 머금어 자랄 테고, 나는 여름내 저들의 수고에 감사하며 풍요로운 식탁을 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지내며 의지하기에 으뜸인 것은 역시 생명이 제일임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자라는 저 작물들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어떻게 다 설명해야 할 지 잘 몰라 아쉬울 뿐입니다.

한편, 내 손길이 닿지 않았는데 찾아온 새 가족이 있습니다. 집을 지으며 벽돌로 쌓은 주방 벽에 가스 레인지의 열을 내보내는 후드 구멍을 파놓았는데, 그곳에 박새 한 쌍이 알을 낳았습니다. 그곳에 박새가 둥지를 틀었음을 알고부터는 차마 후드를 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열흘쯤 지나자 몇 마리인지 가늠할 수 없는 새끼들이 부화했습니다. 며칠 전부터는 엄마 아빠가 먹이를 물고 돌아오면 그들은 ‘쯔 - 비, 쯔 - 비’ 울어댑니다. 그 소리가 하도 정겨워 나는 안절부절, 까치발로 거실을 거닐곤 합니다. 일주일쯤 있으면 저들이 둥지를 박차고 숲으로 날아가리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래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들이 놀랄까 싶어 한 번도 구멍 안을 들여다 보지 못한 이 마음을 저들이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가을날 저 곳에 찾아와 잠시 가족으로 머물다 다시 숲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아, 정말이지 4월의 숲은 잔인하도록 눈부신 아름다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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