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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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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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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4월 15일 09시 33분 등록

지난 토요일, 11명이 자신의 장례식을 치루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너무 가까이 있어 오랫동안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했던, 어머니에게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라는 고백을 했고, 어떤 이는 첫사랑의 연인에게 어디서나 행복 하라는 말을 남겼으며, 어떤 이는 자신이 지금 죽을 수 없는 두 가지의 이유를 들어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이는 꼭 작년 이맘때 사랑하는 이를 앞세운 심경에 자신의 장례식 풍경을 그리는 아픔을 전했으며, 어떤 이는 남편과 시부모님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이승을 떠나며 전하고자 하는 사연은 조금씩 달랐으나 남아 있는 이들에 대한 애틋한 심경만은 같았습니다. 그들은 가상 장례식을 통해 현재의 자신을 돌아 보고 있었습니다.

1년 전 저도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개인사를 밝혀야하는 것이 불편했던 저는 두 가지의 버전을 준비해 갔습니다. 적당히 메이크업한 편지와 저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편지. 순서가 다가오기 전까지 갈등 했지만 저는 결국 저를 드러내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편지를 읽는 동안 혼재된 감정이 솟구친 저는 흐느껴 우느라 제대로 읽지도 못했습니다. 나중에 동기 중 한 분은 제가 어떤 글을 읽었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고스란히 저의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저의 틀을 깨고 싶어 2년이나 마음의 준비를 해서 들어 간 연구소였습니다. 그렇게 첫 만남에서 무너진 저는 아주 가벼워졌습니다. 고백하건데 그 이전에 제가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타자에게 자연스럽게 전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세월이 지나 친분이 쌓여도 일정한 거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저에게 사람들은 양파라고 불렀습니다.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이 몹시 어색하기만 했던 저는 동기들에게 다가가는 것에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무엇이든 함께 나누고 싶었고, 함께 성장하는 기쁨을 누리고 싶었습니다. 많은 것을 가르쳐준 동기들의 얼굴이 이글을 쓰는 지금 하나 둘 스쳐 갑니다.

수료를 마친 지금, 사람들을 곧잘 잊어버리고, 사람들과 섞여 있는 것보다 혼자 놀기를 즐기던 내향적인 예전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벌써 잠깐의 여백동안 저는 다섯 편의 영화와 한 편의 공연을 혼자 보았고, 일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보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우쳐 주신, 선생님께 저도 선생님처럼 짧은 편지를 씁니다.


선생님.
지난 일년간의 과정을 거치며 저는 제안에 무겁고, 깊었던 상처를 다 내려 놓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책과 자연이 스승이었던 제게 사람이 스승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아름다운지 몰랐습니다.
지아비를 잃은 지어미의 슬픔을 달래주려 말없이 오래 얼싸 안아 주시던 모습, 이른 아침에 45명의 제자들을 먹이려 손수 회를 떠 오시는 모습, 매달 열 한 시간 동안 강행되는 수업을 묵묵히 지켜주시던 모습,
1년 동안 제가 선생님께 배운 것은 사람이 아름답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모습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한 번도 저희에게 말씀하시지 않았지만, 누구의 말이라도 주의 깊게 들어 주시고, 누구라도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서 자신의 내부에 들어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 낼 수 있도록,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독려해주시는 모습은 저희를 깨닫게 했습니다.

지난 1년, 저는 아침마다 선생님께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하루를 열었습니다. 선생님이라면 이런 경우 어떻게 하실까를 늘 생각하며 마음의 푯대로 삼았습니다.
선생님. 제가 보고 배운 것 중, 백분의 일이라도 실천할 수 있기를 감히 소망해 보겠습니다.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당신을 만나 넘치게 행복했던 일 년을 마음에 두고, 한 없이 부족하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실천 해 보겠습니다.


늘 부족했던 제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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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가장 자기다워지고, 사람다워질 때는 어떤 때일까요. 아마도 자신이 인정받고, 존중 받았을 때일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 중에도, 자신이 특별하게 큰 나무 그늘아래에 존중 받으며 서 있다는 생각이 들며 다 함께 행복해지는 것을 경험 하는 것, 저는 그것을 구본형효과라고 부릅니다.

‘ 내안에 무언가 위대한 게 살고 있어 지금 나를 부르고, 나는 더 이상 어제의 내가 아니다. 내 꽃이 막 활짝 피었으니 세상아 너는 참 아름답구나’

전년도 시 축제에 선생님이 쓴 짧은 글귀입니다. 누구의 꽃이라도 활짝 필 때까지 기다려 주는 법을 배운 지난 일 년은 제 인생을 통 털어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습니다. 이 편지를 쓰며 저는 다시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런 스승을 만난 저는 평생 오늘처럼 길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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