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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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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26일 08시 03분 등록

그 친구가 처음으로 모자를 벗었습니다. 새카맣게 이마를 덮은 머리카락이 허연 이빨과 대비되어 유난히 돋보입니다. 일년에 두 번 있는 꿈벗들의 소풍에 처음 참가한 그는 그렇게 가발을 쓰고 밝은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의 용기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라면을 끓이는 물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머리카락이 있는 부분의 절반 이상이 자글자글한 살로 덮였고, 그래서 그는 항상 모자 속으로 이마를 감춘 채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했습니다. 불행했을 것입니다. 가장 빛나야 할 시절,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자아는 숨을 곳을 찾아 모자 속으로, 책 속으로 파고 들었겠지요. 그런 그가 모자를 벗었습니다.

그는 종이 위에 ‘내 벗은 머리가 더 이상 내 꿈을 가로막지 못하도록 하겠다’ 라고 썼습니다. 우리는 그 종이들을 조그마한 나무 관에 넣었습니다. 관을 향해 절을 하고 불에 태워 화장(火葬)을 하였습니다. 꿈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의 장례식을 치른 것이지요. 우리의 두려움과 콤플렉스, 실패한 과거, 부끄러운 기억들은 나무 장작과 함께 밤의 어두움에 불똥을 수놓으며 타고 있었습니다.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いま、會いにゆきます)>의 한 장면이 생각납니다. 병명조차 알 수 없는 희귀한 병에 걸린 타쿠미에게 의사는 편안한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천천히 살아갑시다.”
“예?”
“천천히 병과 어울려 익숙해지면 됩니다. 괜찮아요.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당신이 반드시 불행해질 이유는 없어요.”


불행한 상처를 갖게 되었다고 하여 반드시 불행해질 필요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천천히 그것과 친해질 수 있습니다. 눈이 건강하지 못한 저도 언젠가 렌즈를 벗고 무시무시해 보이는 두꺼운 돋보기 안경을 쓰게 될 날이 오겠지요. 수줍은 듯 미소를 짓는 친구를 보며 그 날이 마냥 두렵게 느껴지지만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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