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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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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15일 06시 58분 등록

당신이 관심을 갖고 있고 언젠가 뻗어나가고 싶은 분야에서, 이미 일가를 이룬 고수를 발견했을 때 당신의 기분은 어떨 것 같은가요? 나는 아주 상쾌했습니다. 아,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난 정말 멀었구나, 기분좋게 항복했습니다.

라디오PD 정혜윤이 쓴 ‘침대와 책’ 얘기입니다. 2층으로 통하는 계단 밑 공간에서 동화는 물론 농민신문까지 읽어치우던 아이가, ‘해방 전후사의 인식’과 ‘공산당 선언’과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던 앳된 날을 거쳐, 부장님께 된통 깨지는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 그녀는 삶의 모든 국면에서 책의 위로를 받습니다.

내 옆의 남자들이 매력 없고 한심해 보이는 날에는, 남자들이 예뻐죽겠는 책을 찾아 읽는 식입니다. ‘개선문’이나 ‘빅 피시’나 ‘장미의 이름’이 거기에 해당된다네요. 세월은 가고, 헛되이 나이 들어가거나 늙어간다고 느낄 때는 보르헤스를 읽습니다. 보르헤스, 평생에 걸쳐 서서히 시력을 잃어 55세 즈음에는 완전히 실명하게 된 그가 말합니다.

“이제 그토록 사랑했던 눈으로 볼 수 있는 세상을 잃어버렸으니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해. 난 미래를 만들어야 해. 내가 정말로 잃어버린 가시적인 세상을 이어받을 미래 말이야.”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특히 나쁜 일이 장기적으로 글로 변한다, 왜냐하면 행복은 다른 것으로 변환될 필요가 없으니까”라고 말해주는 보르헤스 앞에서, 사소한 우울은 한낱 응석이 되고 말겠지요.

그녀는 사방에 책을 쌓아놓기 좋게 주문제작한 침대에 누워서 책을 봅니다. 그래서 그런가 유독 책과 책 속의 인물을 사랑합니다. ‘새로운 이상한 나라의 현대적 앨리스’가 되어 책 속으로 들어가 돌아다닙니다. 저자와 주인공을 만나 거의 정을 통하는 수준입니다. 이처럼 솔직하고 감성적이고 앙큼하고 유혹적인 독서기는 처음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갖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댕길 수 없습니다.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지요.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되겠습니다만, 그녀의 독서기를 보노라니, 책도 충분히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상대가 인식하는 범위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비트겐슈타인의 통찰과,
‘나의 사랑은 결코 대체되지 않는다.’ 뒤라스의 열정과,
‘우리는 그 무엇이긴 하지만 전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파스칼의 겸허함과,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담대함을 줄 수 있는 대상이 그리 흔하겠습니까?
책과 만나 나의 불꽃을 일으키는 일에 더욱 정진해야겠습니다. 언젠가는 내가 누군가의 가슴에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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