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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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구본형 사부가 내게 말했습니다. “새 책의 원고를 써서 출판사에 넘기고 나면 어김없이 감기 몸살에 걸린다.” 책 한 권을 쓸 때마다 찾아오는 행사라고 했습니다. 그냥 감기가 아니라 1주일 정도 입술이 터질 정도로 심하게 앓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낼 즈음에는 가능하면 강의 요청을 받지 않고 약속도 줄인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한두 번은 우연일 수 있지만 매번 그렇다는 건 필연인 데, 탈고(脫稿)와 몸살은 필연의 관계로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윤광준 선생은 사진가이자 <잘 찍은 사진 한 장>과 <윤광준의 생활명품> 등 총 11권의 책을 쓴 작가입니다. 그는 며칠 전 변화경영연구소의 오프라인 카페 ‘크리에이티브 살롱 9’에서 진행한 강의에서 말했습니다. “11권의 책을 쓰며 11개의 이빨이 빠졌습니다.” 그러니까 책 한 권을 낼 때마다 이 하나가 빠진 셈입니다. 무슨 말인가 싶은 표정으로 쳐다보는 수강생들에게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치주염 때문이 아니에요. 내가 이빨을 관리하지 않아서 빠진 게 아니에요. 처음에는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 치과 의사에게도 물어보고 양치질도 신경 써서 하고 영양제도 먹었습니다. 지금도 나름대로 관리하고 있고요. 그런데도 책을 쓰고 있거나 내고 난 다음에는 여지없이 이 하나가 빠집니다. 책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정도로 진력을 다해 글을 써왔다는 증언입니다. 나도 책을 써봐서 압니다. 한 권의 책을 쓰는 과정에는 어떤 흐름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는 방향성을 잃고 헤매거나 버거운 장애물에 직면하는 고비가 한 번은 찾아오기 마련입니다. 이 지점이 일종의 변곡점입니다. 여기서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원고의 품질이 판가름 됩니다. 물이 99℃가 아닌 100℃에서 끓는 것과 같습니다. 99와 100℃를 가르는 비등(比等)의 임계점에서는 에너지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임계점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1℃를 올리는 데 필요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합니다. 윤광준 선생 <마이웨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 뭔가를 시작할 때는 누구나 의욕이 넘친다. 의욕에 지지 않는 열정으로 성과를 만들어간다. 변곡점을 넘나들며 실패와 성공의 갈림길에 서기도 한다.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유지하며, 실패는 반전의 에너지로 채우고 성과를 굳혀야 안심이다.”
윤광준 선생과 구본형 사부의 경험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이가 빠지고 심한 몸살에 시달리는 것은 치열한 글쓰기의 후유증입니다. 가치 있는 일을 실현하는 데는 의욕과 열정과 함께 밑심이 있어야 합니다. 밑심으로 끝까지 가야 완결할 수 있습니다. 빠진 이와 몸살은 밑심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그것은 훈장입니다. 치열한 것은 오래 살아남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분야의 정점에 오르는 과정은 자기극복의 연속입니다.
윤광준 선생은 “스스로 타오른 불이 멋지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몸을 살라 어떤 일에 매진하여 나온 것에는 그만 한 힘이 있습니다. 윤광준 선생과 구본형 사부에게 심신의 소진이 신체적 탈진이나 정신적 공허로 남지 않은 이유는 체험의 밀도 때문입니다. 결국 치열했던 것은 오래 살아 숨 쉽니다.
“마음속에 꿈틀대는 불덩이 하나쯤 품고 있지 않은 이는 없다. 불꽃은 꾹꾹 눌러 잠재우지 말고 끄집어내야 활활 타오른다. 타올라야 순환을 준비할 수 있다. 한껏 불꽃을 태우고 난 뒤에 남은 재는 새로운 변화를 위한 자양분이 된다.”
- 윤광준, <마이웨이>
윤광준 저, 마이웨이, 그책, 2011년 2월
* 알림 : 박노진 연구원 신간 <식당공신> 출간
변화경영연구소 박노진 연구원의 새 책 <식당공신>이 출간되었습니다. 제대로 준비하고 공부하면 성공하는 식당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네 명의 ‘식당공신(食堂工神)’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바탕으로 풀어 쓴 책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혹은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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