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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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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2일 18시 58분 등록

같이 오른다는 것에 관하여 (데날리 이야기)

 

 

에베레스트를 다녀오고 정확히 6년 뒤 역시 월급쟁이 신분으로 북미대륙 최고봉(Denali, 6,194m)에 올랐다. 히말라야를 향해 오줌도 누지 않겠다는 맹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다시 만년설에 눈을 돌리는 걸 보면 병인가 싶기도 하다. 미치지 않고서야, 그 난리를 치고도 잊지 못하는 산재이 버릇은 참으로 고쳐지기 힘들다. 게다가 몸담았던 회사는 산업 전반에 닥친 불황으로 위기로 치닫고 있었고 이 위기를 어떻게든 끝내라는 특명을 받고 50명의 팀원을 거느린 팀장으로 보무당당하게 구원투수로 9회말 등판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렇지만, 때를 같이 하여 산재이들이 나에게 손을 내밀었으니 무뚝뚝한 그들의 한 마디에 나는 짐을 쌌던 것이다. ‘같이 오르자’, 그들은 많은 말을 하지 못한다. 할 줄 모른다. 그들의 같이 가자는 말에는 사실 모든 허망한 서사와 나름 삶의 의미와 꿈을 향한 욕망과 부탁과 수사와 그리고, 내가 혹시라도 그곳에서 위험에 빠지면 내 마지막을 네가 기억해줬으면 좋겠다는 말과 그래서 네가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말이 뒤섞인 애매한 우주계의 말이다. 산재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산에 가자이며 또한 가장 두려워하는 말도 같이 가자는 말이다.

 

북미 최고봉 데날리는 알래스카 주 한 중간에 있다. 주도州都 앵커리지 북북서쪽으로 210km 떨어진 봉우리다. 원주민이 불렀던 이름은 데날리였으나 오랫동안 매킨리Mckinly로 불렸다. 알래스카 대륙을 러시아로부터 사들인 즈음, 1896년 미합중국 대통령에 당선된 윌리엄 매킨리를 기념해 붙인 이름이 21세기 초반까지 통용되고 있었다. 2015 8,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알래스카를 직접 방문해 매킨리산을 원주민이 본래 부르던 Denali라는 이름으로 복원시켰는데 데날리라는 이름은 높은 것, 숭고함, 위대함이라는 뜻이다. 러시아 영토였을 당시에는 볼샤야고라(큰 산이라는 뜻)로 불렸다.

 

북미최고봉이라는 상징성으로 인해 많은 산악인이 찾는다. 북극권에 위치한 이 산은 추위가 남다르다. 온갖 추위를 경험했다 여겼지만 데날리는 달랐다. 온대 기후에 위치하지만 높은 고도로 인해 만년설과 국부적 돌풍이 부는 히말라야 추위와 근본부터 다른 추위였다. 극지방의 습한 바람과 기본부터 한대 지방에 위치해 있는데다 고도까지 높아 세상에 없는 추위를 연출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히말라야와는 달리 극지방에 치우친 위치로 인해 고도가 높아질 수록 산소 부족이 심해 등반 난이도는 상대적으로 높다. 히말라야에서 경험한 최저의 온도는 영하 45도였지만, 데날리에서는 영하 55도가 평균이었다. 한국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자 고상돈, 일본의 산악영웅 우에무라 나오미 등 유난히 이 산에서 산악 영웅들이 많이 목숨을 잃어산악영웅들의 무덤이라고도 불리지 않던가. 실제 이 산을 오르다 유명을 달리한 산악인은 난공불락의 히말라야 K2(8,611m) 봉우리보다 많다.

 

그곳에서, 많고 많은 에피소드 중에 이 얘기를 나는 하고 싶다. 에베레스트에 올랐던 사람들 그대로에 6명의 악우들을 더해 총합 9명이 장도에 올랐다. 대원들의 연령도 다양해서 50 2, 40대가 5, 30, 20대가 각 1명씩이었다. 여성 선배님이 1명 있었고 고산에 오르기엔 역부족으로 보였던 고령의 선배님들도 다수 있었다. 모두가 고생스럽게 훈련한 만큼 대장님(에베레스트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던 형)은 초지일관 대원들 모두를 정상에 올리고 말겠노라며 전원 등정의 의지를 보였다. 그는 만년설이 휘날리는 이곳에 오기까지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고난을 뚫고 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자리를 비운 날만큼 그대로 매출 하락으로 이어지는 영세 부품 업체의 사장,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며 기말고사 기간 중 이곳에 오기 위해 학부모들에게 굴욕을 느끼며 읍소했던 선생님, 이제 갓 자리를 얻게 됐지만 휴직일 수의 곱절로 눈치 받은 늦깎이 말단 공무원, 오랜 고시공부 끝에 이제 새신랑이 됐지만 만년설의 열정을 녹이지 못한 고시생, 윗선 눈치보기 바쁜 대기업 부장의 지위와 자신의 꿈을 맞바꾼 월급쟁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준비를 뒤로한 채 결단한 취준생, 그리고 나.

 

여기까지 온 이상 개개인은 등정에 대한 열망에 가득 차 있다. 안타깝게도 확실한 것은 모두가 오를 수는 없다는 것. 등반이 계속될수록 체력과 고소증세로 인해 같이 오를 수 없는 상황이 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두가 오르겠노라 나선다면 등정 가능한 대원조차 그들의 뒷바라지로 오르지 못할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가능성 있는 대원들로 구성한 1차 공격조가 기상 악화로 실패한 날 밤, 마지막 캠프의 희박한 공기 속에 기침을 해대며 좁은 텐트에 9명이 무릎을 세워 잡고 모여 앉았다. 같이 가자, 같이 가면 오를 수 있다, 같이 올라 성공하면 명예롭다, 같이 오르다 실패하면 그 또한 명예롭다, 9명이 와서 몇몇만이 오르면 오른 사람과 오르지 못한 사람 모두 멍에가 남는다.

 

모두가 오르기로 의기투합했던 순간, 한 사람이 남기를 희망했다. 정상에 오르는 날은 자지 못하고 먹지 못하며 18시간을 칼바람, 돌풍과 함께 걸어야 한다. 정상에 오르면 누구나 기진맥진하고 1차 하산 목표인 마지막 캠프에 누군가 남아 만약에 있을 조난사고에 멀쩡한 정신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 원정대 9명 전체가 위험에 빠진다. 이를 너무나도 잘 아는 한 사람이 자신은 정상에 오르지 않을 것을 마지막 캠프에서 선언한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 캠프에 남아 모든 교신을 예의주시하겠다 말했다. 너희들이 내려오는 시간 따뜻한 차를 끊이고 기다리겠다 말한다. 그의 덕으로 결국 남은 8명이 모두 정상에 올랐고 조난의 위험이 있었지만 그가 있다는 믿음에 모두가 안전하게 하산했다. 아마도 누구 하나가 사단이 났더라도 그는 제 죽는 줄 모르고 올라가 끌고 내려 왔을 거다. 그는 6년 전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대장이었다. 같이 오른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북극의 살을 애는 추위는 지금도 온 몸을 부르르 떨게 하지만, 그날 우리는 뜨거웠다.



IP *.161.53.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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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3 00:09:57 *.134.131.135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고 그 추위에 몸서리를  '부르르...'  떨게 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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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4 07:57:59 *.208.9.208

그는 6년 전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대장이었다. -존경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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