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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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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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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3일 08시 43분 등록
쿠바의 어느 정신나간 할매


예전 쿠바를 두 달 동안 여행하면서 재미있는 친구를 몇 명 사귀었다. 그 중에 정신나간 할매도 있었다. 할매는 150cm 정도의 작은 키에 깡마른 몸, 흰 머리가 반은 섞인 단발머리를 하고서, 매일같이 땅콩을 팔러다녔다. A4용지에 땅콩을 20알 정도 넣어 파는데 하나에 100원. 입이 심심할 때마다 하나씩 사먹었더랬다.

처음 할매를 만난 건 산티아고데 쿠바의 어느 카페에서였다. 조용히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갑자기 내 옆에 앉더니 아주 오랜 친구처럼 말걸고, 이런 저런 참견을 해왔다. '이분 왜 이러시나' 어안이 벙벙해서 있자니, 주변에 있던 현지인이 "저 할머니, 제정신이 아니에요."라고 귀뜸해줬다.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그때 땅콩을 하나 사드렸는데, 그 뒤론 날 보면 어디서고 굉장히 반가워했다.

시가지가 좁다보니 거의 매일 할매를 거리에서 만났다. 만나면 레파토리가 있다. 할매는 나를 보면, "오오오~" 감탄사를 마구 방출하며 100년 만난 친구처럼 아주 반가워한다. 볼 뽀뽀를 하고서, 앞 뒤 말 다 잘라먹고 땅콩을 하나 들이민다. "너, 땅콩 살래?" 가끔 동전이 없어서 못사는 날이면, 할매는 뒤도 안 돌아보고 휙 가버렸다. 마치 우리가 언제 만난적이라도 있었느냐는 것처럼. 그런 반응이 서운하기보다 참 재밌었다. 남의 반응따윈 신경쓰지 않는, 참 쿨한 할매였다.

희한하게 할매를 만나면 마음이 편했다. 그녀 앞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될 필요가 없었다. 멋진 사람일 필요도, 잘날 필요도, 정상일 필요도 없었다. 애써 나를 포장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에게 나라는 존재는 '땅콩을 사는 사람이냐, 안 사는 사람이냐' 이 두가지만 있었을 뿐, 다른 정체는 필요치 않았다. 정신나간 할매를 만나면서, 최소한 정상처럼 보이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사전에 찾아보면 '정상'은 '특별한 변동이나 탈 없이 제대로인 상태'로 설명된다. 그런데 과연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건 무엇일까?

정상과 비정상


세계를 3년쯤 돌아다니다 보니, 나라마다 그 '정상'의 범주가 매우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떤 나라에서는 낮잠을 2시간 자는 게 정상이고, 어떤 나라에선 게으르기 짝이 없는 일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아침식사로 아보카도를 먹는게 정상인데 밥을 먹는다고 하면 화들짝 놀란다. 어떤 나라에서는 일생에 3번 정도 결혼하는 건 정상이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여자가 바깥일은 고사하고 집 안에만 있어야 정상이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여자가 밖에서 일하고 능력을 발휘하는게 정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서 '틀리다'거나 '비정상'이라는 개념을 어디에서 배울까? 말할 것도 없이 우리가 자라난 '문화권'이다. 그 문화권이 인정하는 삶의 방식이 무엇이냐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이 나뉜다.  
누구나 ‘정상’이길 바라고, 정상이 아닐까봐 겁내지만 알고보면 ‘정상’으로 사는 것처럼 피곤한 것도 없다. 정상이란건, 어느 문화권이 정상이라고 만들어둔 룰 안에서, 그어진 금 안에서 살아가는 거니까. 한국의 문화권에서 나는 애초 정상인의 범주에 들지 않는 인물이었다.  20대를 지나며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너처럼 살면 망한다' 와 '넌 너무 비현실적이야, 몽상가' 라는 말이었다. 그땐 그 말이 모욕처럼 들렸다. 이 땅에서, 나라는 인간은 발붙이고 살기 어렵겠다고 느껴서 좌절할 때가 많았다. 내 본모습을 최대한 숨기고 정상인처럼 보이기 위해서 필요한 이력을 만들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단 한번도 그 안에서 편안해본적이 없었다. 대신 시간이 갈수록 있는 그대로 살아야한다는 마음이 커졌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라는 녀석이 나온다.  이름도 어려운 이 아해는 옛날옛날 아테네 때 지나가던 나그네를 잡아서 침대에 눕히고, 침대보다 짧으면 잡아늘리고 길면 절단해서 죽인 괴물이었다. 구본형 사부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확장시켰다. 
 
"우리 역시 고정관념이라는 정신적 철제 침대를 가지고 매일 그 위에 누워 잔다. 그것을 패러다임이라 하고, 거기에 맞추어 살아간다. 그것을 세상의 이치라고 부른다. 스스로 평범한 사람이 되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우리를 맞추려는 허망한 노력을 그만두고 대신  그를 제거하고 그의 희생자로 사는 것을 거부하라. 언젠가 신은 우리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너는 진정으로 너에게 준 타고난 소질을 따랐느냐?  바로 그런 사람으로 살았느냐?'"

너.진.정. 네.게. 준. 타.고.난.소.질.을.따.랐.느.냐...?
나답게 살고자 하면서도 끊임없이 '현실에 맞추려고' 애쓰는 내모습이 글 위로 겹쳐져왔다. 그동안 나를 현실에 어떻게든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뜻대로 잘 안됐다. 그래서 이제는 진짜 내 뜻대로 살아보기로 했다. 마음편지에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될 줄 몰랐지만, 이제는 내 정체를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한국사회에서 살기엔, 애시당초 비현실적이고 비정상적인 사람입니다."

와, 이 말을 들을까봐 그렇게 조심했는데,결국 내 입으로 하고 말았네. 속이 다 시원하다. ㅎㅎㅎ그동안 이걸 감추느라, 정상인척 하느라 애쓴 세월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는 왜 성소수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커밍아웃'을 하는지 몰랐는데, 이젠 알 것 같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를 억누르거나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고 싶을 뿐이다. 나 역시 나의 광기, 비정상적인 부분을 더이상 잘라내거나 고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혹 주위에서는 너정도면 어느 정도 뜻대로, 비정상적으로 잘 살지 않았느냐고 말하지만, 아직 내가 살고 싶은 삶의 10%도 못 꺼냈다.) 


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작은 규칙들이야 지킨다고 해도 어떻게 살 것인가는 스스로 결정하게.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면 굳이 따를 필요 없다구.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게."


문화가 내게 맞지 않다면, 내가 문화를 만들면 되고, 
이 모양으로 태어났다면 이 모양을 살리는 게 맞다.
땅 위에 애초 길은 없으나, 가고자 하는 사람이 생기면 길이 만들어지는 법.
세상에 나를 위한 길이 없다면, 내가 만들면 된다. 그게 나의 길이니.  



(사진과 함께 보시려면 클릭 : https://brunch.co.kr/@tjkmix/667)


IP *.181.106.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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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3 19:30:35 *.133.149.97

저는  제 자신과 선수들에게 그렇게 표현했었습니다 ! 

익숙한 방법(길)이 아니라 이길 수 있는 방법(길)을 선택하라. 

그래야만 우리는 결과에 상관없이 후 일에 이 하나의 질문에 확고하게 답할 수 있다. 

"이 길에 네 마음을 온전히 담았느냐? "  곧 결과에 상관없이 후회없는 시합을 했는가? 이다. 

그들이 "선생님은요?" 라고 묻자 내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뒤 돌아보지 않는다  곧 나는 후회나 미련을 갖지 않는다" 

"왜냐면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했고 그리고 그것을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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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8 20:08:46 *.181.106.109

멋진 말이네요!

말씀처럼, 내 모든 걸 쏟아서 해봤다면, 어떤 길을 택하든 후회는 없겠습니다.^^ 

저도 가끔씩 자신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지금 가는 길에 내 마음을 다 쏟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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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5 08:49:30 *.226.157.137

축하드립니다.

100% 다 글리님의 삶으로 살길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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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8 20:09:09 *.181.106.109

땅쿠베락망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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