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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13일 07시 33분 등록

비자림.jpg


그렇게 45일간의 일정 중 사흘 오전을 오롯이 혼자서 보낼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 이런 시간이 가능하다니.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꿈만 같았지만 막상 자유시간이 주어지니 반가움보다 막막함이 먼저 밀려왔다. 해야 하는 일이 사라지자 하고 싶은 일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첫날에는 그림 그리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가 기뻐할 것 같은 바다 앞 드로잉 까페를 답사하며 아이에게서 돌려받은 시간 첫 자유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흐뭇함으로 살아온 세월의 관성이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다녀온 미술관 까페에서 뜻하지 않게 붓을 잡게 되면서 나를 옴짝달싹 할 수 없게 하던 두려움 한 뭉텅이를 녹여낼 수 있었던 덕분이었을까?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니 아이가 아니라 를 위해 가고 싶은 곳이 떠올랐다. 몇 해 전 제주여행에서 시간이 안 맞아 문 앞까지만 가고 들어가 보지 못했던 천년의 숲 비자림이 궁금했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아이에게 같이 가지 않겠냐고 몇 번 권해보았지만 역시 허사였다. 결국 재미있게 다녀오라는 딸의 배웅을 받으며 혼자 게스트하우스를 나왔다.

 

홀로하는 여행은 숙소를 빠져나온 첫 발자국부터 시작되었다. 가는 길부터 오롯이 내 리듬에 따라 움직이고 멈추며 호젓한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수백 년의 세월이 만들어 낸 비자림 숲길은 천천히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몸 안의 긴장을 풀어내며 호흡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하루라도 빨리 함께하기만 해도 치유가 일어나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갈망에 몸 달아 안달하던 시간들이 떠올라 잠깐 얼굴을 붉혔지만 곧 편안해졌다. 마침 불어온 바람에 나도 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는 걸하는 숲의 다독임이 전해지는 듯했다.

 

사흘째가 되자 아침을 맞기도 전에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해녀박물관이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하는 곳이라 며칠간 근처를 오가며 여러 차례 표지판을 보기는 했지만 전혀 끌리지가 않았다. 억척스럽게 제주의 살림살이를 일궈온 여인들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쩐지 나와는 상관없는 존재들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비자림에서 돌아온 오후 딸아이와 함께 나간 바다에서 소라게와 작은 물고기와 따개비들을 깊이 만나고 나자 그녀들이 다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바다가 전해주는 생명의 소리를 평생 들어온 여인들의 삶이 진심 궁금해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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