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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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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4월 19일 22시 08분 등록

일주일 쉬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또 다시 해방감의 쓰나미를 맞이하리라는 기대는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두 달 째에 접어들며 한동안 체증같은 묵직함이 도무지 가시지를 않았다.

 

버릴 책을 골라내는 작업이 팔다리를 잘라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옷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물건들은 더더욱 애착이 갔다. 아무리 봐도 더 이상 버릴 것은 없어 보였다. 아니 그렇다고 우기고 싶었다.

 

그래서 한동안은 남아있는 잡동사니 색출에 더 열을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 피해 다니던 내 안의 불편함과 외나무 다리에서 딱 마주치고 말았다. 

 

뭘 망설여! 걍 다 버려!! 답답하게 왜 자꾸 망설여? 그렇게 꾸물거리는 사이에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인생 끝나면 어쩔 거야? 어떻게 책임 질 거야?”

vs

 

그래!! 다시는 쓸 일 없는 물건이라 치자? 하지만 아직은 다 쓸 만한데 무조건 다 내다 버린다구? 네 공간만 시원해지면 다야? 새 주인을 찾아주려는 노력 정도는 해봐야지. 네 볼 일 끝났다고 그리 내팽개치는 거, 그거 습관이야! 병이라고!”

 

어느 쪽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우선 조급함을 내려놓고 서로를 주장하는 내 안의 두 목소리를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일단 뜨거운 붉은 피에게 인연이 다한 물건들을 가차없이 고르게 한다.

2. 추억을 떠올리며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다.

3. 베란다에 놓아두고 그 아이와 지구를 위해 가장 아름다운 처리법을 모색하는데 충분히 정성을 다한다.

4. 할 수 있는 모든 것(손질해 중고마켓 판매, 나눔 등)을 했는데도 주인을 찾지 못한 것은 아름다운 가게 등에 미련없이 기부한다.

 

베란다에 쌓이는 물건들이 자꾸만 늘어났다. 집은 정리 전보다 더 어수선해진 느낌까지 들었다. 이게 뭐야? 그냥 거기서 멈출 걸 그랬나? 아직 때가 아닌가? 또 괜한 짓을 했나? 별 생각이 다 올라올 즈음이었다. 마치 흔들리던 초점이 딱 맞은 사진처럼 입장이 명료하게 정리되는 물건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혼수로 해왔던 화장대를 보내고, 언젠가 폼 나게 입고 나가려고 준비해두었던 정장들을 보내고,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가 피어오르는 추억이 담긴 아이들 옷들을, 자꾸만 밀려오는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매달리던 책들을 조금씩 떠나보낼 수 있었다그 때 나를 찾아온 느낌은 해우소에서 쌓인 노폐물들을 흘려보낼 때와는 또 다른, 그러니까 잘 익은 과일이 똑 하고 떨어지는 것 같은 깔끔한 분리감이었다.

 

!! 그렇구나!! 이별에도 필요한 시간이 모두 다른 거구나!!! 아름다운 이별이 사랑의 완성이라면 내게 딱 좋은 타이밍을 감지할 수 있는 유일한 센서는 나 자신 뿐이겠구나!! 몸의 신호를 감지해낼 수 있다면 무리해 서두를 이유도, 무작정 밀어낼 이유도 없겠구나. 비움이란 그렇게 내 안의 열망과 저항 사이에서 나를 위한 황금률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겠구나. 그러니까 비움'이란 그 결과보다 '과정' 자체가 더없이 소중한 선물인 거구나!


3aaivoSfyXhxb+D3f3Jm59j99TAAAAAElFTkSuQmCC 

1. 뽀송뽀송 데일리 이불과 손님용 이불

2. 식구별로 1칸씩 컴팩트한 옷장

3. 장르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책장

4. 쿠킹 클래스 가능한 주방

5. 요가 클래스 가능한 거실

6. 영상강의 촬영용 룸

 

그 때였다. 지난 달 비움을 시작하면서 정리해 둔 비움을 통해 만나고 싶은 집의 모습이 떠올랐다. 비움 가이드의 주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하나씩 적어 내려가다 집을 통해 세상과 더 깊이 연결되고 싶은 내 안의 선명한 열망을 만났던 기억. 아무리 아니고 싶어도 여전히 한참은 육아와 살림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시기이니 두 영역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거다.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먼 것이 사실이었다. 공간이야 어떻게든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도 대체 무슨 수로 그 공간으로 세상을 초대할 수 있을지 머리로는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어차피 할 수 있는 다른 일이 없으니 뭐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에 지나친 기대를 걸었다가 또 실망으로 힘들어 질까 봐 슬쩍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또 한 달을 보내며 뭔지 모를 자신감이 차올랐다. 정말로 이런 공간 속에서 살게 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았다. 아니 이미 그 공간을 느끼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더 짜릿한 건 이제 그런 것 따위는 어찌 되어도 아무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물건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쌓인 먼지와 찌든 때를 닦아내니 공간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연두빛 고운 속살로 피어나는 봄 새싹 같은 생명력에 희미해졌던 기억도 함께 살아났다.

 

잊고 있었다. 이 공간에서 맞은 기쁨들이 많았었는데...이 공간을 마련하고 설레하던 시간들, 그리고 정성을 다해 공간을 가꿔가던 시간들이 참 좋았었는데...언젠가부터 집이 나와 세상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일부러 집에게 무관심하려고 애써가면서까지 집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두 달 간 물건과 함께 내 안의 조급함과 불안도 함께 빠져나간 걸까? 어찌 된 영문인지 정말 오랜만에 진짜 집으로 돌아온 듯한 편안함이 찾아왔다

IP *.70.3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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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1 01:45:24 *.52.254.111

적절한 순간...  그렇군요... 

열망과 저항 사이에서 자신을 위한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 비움을 완성하는 황금률이라는 게 있군요 ! 

멋진 표현이고 저에게 확실한 전이를 가능하게 해 주는  대목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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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7 08:35:09 *.70.30.151

 누구보다 그 감각을 정확히 이해하고 계실 선배님의 공감이

뒤늦게 더듬더금 길을 찾은 후배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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