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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9일 01시 10분 등록
낙엽, 그 간결함

대부분의 나무는 해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면 생장을 도모하고, 짧아지면 겨울을 준비합니다. 태양의 절대적 영향권 하에 있는 지구에서 하나의 생명으로 살아가기 위한 나무의 지혜는 그렇게 우주의 질서를 따르는 것입니다. 가을에 지는 활엽수의 낙엽이 그 구체적 증거의 하나지요.

봄부터 광합성 작용을 통해 영양을 생산하고 나이테 하나를 더하며 나무 전체를 살찌우는 역할을 했지만, 이제 나무는 그 잎을 지워야 함을 잘 압니다. 그렇지 않으면 연한 잎이 해를 입을 수 있고, 나아가 물과 양분을 나르던 수관을 따라 겨울 추위가 파고들며 나무 전체가 동해(冬害)를 입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나무는 잎자루 부분에 ‘떨켜’를 만들며 스스로 잎을 떨어냅니다. ‘떨켜’는 일종의 코르크 조직 같은 것이어서 잎과 연결되었던 나무의 통로를 틀어 막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나무가 보유한 수분을 지켜내고 해로운 미생물의 침투를 막기 위한 것이지요.
나무는 그렇게 태양의 질서에 따라 자신을 간결하게 하며 다시 봄을 준비할 줄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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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운명처럼 정하게 된 ‘행복숲’ 부지를 찾아가 몇 차례 어둠을 기다리고 맞이한 적이 있습니다. 적막하지만 평화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마다 공교롭게 바지 속의 내 핸드폰이 짤막한 진동을 보내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문자 메시지였습니다. ‘대리운전’ 광고 메시지이거나 ‘금융대출’ 광고… 가끔은 어느 지하 술집 마담이나 웨이터들의 안부(?) 인사였습니다. 모두 내 고단했던 회사 경험의 유산들 중 한 부분입니다. 산에 살기로 한 이상 이제 더 이상 받을 이유가 없는 문자여서 피식 웃고 지웠지만, 생각해 보니 그것은 단순한 광고 메시지 이상의 메시지로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내게 간결해 질 것을 요구하는 메시지였습니다. 도시에서 쌓아온 지난 세월의 고단한 관계들을 남김없이 떨구라는 메시지로 도착했습니다. 도시의 토양에서 더해온 나이테를 그대로 안고 자연으로 돌아오되, 도시의 잎은 낙엽으로 떨구라 했습니다. 그리고 변화가 가져오는 험난한 겨울을 받아들이고 새싹을 틔우기 위한 겨울눈을 준비하여 마침내 새 봄을 맞으라는 엄중한 요구로 느꼈습니다.

어둠이 드리우는 산 속에서 나는 나무의 방식을 따라 간결해 지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내 도시의 삶을 가능하게 했던 잎새들을 하나 둘, 미련 없이 지울 것입니다. 나무이건 사람이건 새 봄에 새 잎을 돋아 올리려 한다면 그렇게 간결해 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간결해 지는 것을 두려워 하면 결국 더 큰 동해를 입어야 하는 것이 우주의 질서일 테니까요.

올 가을은 아무래도 나무의 낙엽, 그 간결함을 배우는 계절이 될 듯 합니다.
IP *.189.2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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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
2006.10.19 08:31:19 *.116.34.174
이 편지는 김용규님이 보낸 것입니다. 보내는 사람이 '구본형'으로 되어 있어 여러분들이 내가 산 속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저는 서울에 있습니다. 약간의 메일 사고가 생긴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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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규
2006.10.19 11:18:41 *.191.117.50
메일 사고를 낸 김용규입니다. 저의 불찰이 빚은 실수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혼란을 드렸고, 구본형 선생님께도 폐를 끼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차후 이런 혼란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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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동
2006.10.19 19:35:33 *.142.145.9
앞으로 이런 사고가 없도록 조치를 해두어야겠네요. 시간 좀 들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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