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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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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일 23시 03분 등록

할말을 사이공에 두고 왔어

 

대기업에서 혁신을 담당하는 팀장이었던 적이 있다. 회사를 떠나기 전 3년간 실로 화끈하게 일했다 자부했었다. 더 나은 다른 회사에서 비결을 알려달라며 우리 팀을 배우러 왔으니 교만한 어깨에 힘 빠질 날 없었다. 어느 날 자신이 끌어 모은 팀원 중 일부가 구조조정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는 걸 확인하고 그들을 대신해 회사를 나왔다. 폼 나게 살 나이는 지났지만 스스로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때를 맞추어 얻게 된 직장은 라오스. 뜬금 없게도. 낯선 나라에 단신으로 와 곡절을 겪었다. 어이없는 이 외로움을 스스로 해명하려 밤을 샌 적이 있다. 혼자 잔 이불에 채 남겨두지 못한 쓸쓸함은 사무실까지 따라왔고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직장인 정체성이 미웠던 때, 증오하기를 멈추지 못하던 내가 무서웠던 그때. 다시는 월급쟁이 안 할거라 다짐하며 남들 다 보는 카페에 앉아 혼자 꺽꺽 울었다. 한참을 울어 쪽팔림이 밀려왔기로 카페를 나서며 중얼거렸다. 그래 여긴 아니다. 두 달 만에 한국에 돌아가려 짐을 쌌다. 그때 보였다. 여기. 황홀한 라오스의 속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구 상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꽁꽁 숨겨 놓고 나만 즐기고 싶은 곳. 메콩강 붉게 타는 노을과 아름다운 여인들, 길을 지날 때마다 누구나 한 움큼씩 던지는 그들의 미소, 미소, 미소. 심각한 얼굴을 하고 다니는 내 조국에 화가 날만큼. 심각하지 않고 바쁘지 않아도 이렇게 잘 살 수 있는데 말이다. 내 살던 나라에선 상상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감지하게 된 후 가족 모두를 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아이들은 현지에서 학교를 다니고 어리둥절했던 아내는 일과 육아까지 감당해야 했던 야만의 나라를 이내 잊었다. 저녁마다 와인으로 꽐라꽐라 되어 춤추다 지쳐 잔다. 그렇게 느린 시간에 살게 되었다. 이리 살 수 있는데 말이다. 늦게 나마 이리 살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긴다. 언제까지 거기 처박혀 있을 거냐는 지인들의 타박에 나는 말한다. 여기서 더 놀다 갈란다.

 

모든 면에서 느려 터진 내가 남들보다 빠른 게 두 가지 있었으니 아이스크림 먹는 속도와 산에 가는 준비다. 두 가지 외엔 느리고 느리다. 모든 게 빨라야 사람 취급 받는 나라에서 어떻게 돈 벌었나 싶을 정도라고 가끔 아내가 지나가며 말하기도. 그도 그럴 것이 달변이 마냥 부러워 자책하며 고장 난 조리개처럼 열고 닫히는 내 입에 소가 서식하나 스스로 의심해 보기도. 제대로 된 신체자본 없이는 어디 가서 명함도 내 밀지 못하는 나라에서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라고 딸이 측은하게 바라보기도. 그도 그럴 것이 눈썹은 자라다 말아서 어느 때부턴가 붙은 별명은 모나리자. 눈은 작고, 아래위 할 것 없이 두꺼운 입술에 볼품이 사라져 그래서 또 붙은 별명 썰면 두 접시. 열등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 말이다, 상식은 뒤집어 져라 있는 모양이다. 사람들아, 베트남에서 나는 일등 남편이요 신랑감이다. 열등이 무언가, 씹어 삼키는 것인가. 여기서 가장 잽싼 남자보다 내가 빠르다. 말을 모르니 느리게 말하든 빨리 시부리든 아무도 모른다. 무엇보다 여기선 마스크 따지지 않는다. 돈을 적게 벌든 많이 벌든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는 남자를 최고로 친다. 잘생기고 말 잘 하는 놈들아, 나 여기서 더 놀다 갈거야.

 

- 안녕하세요. 장재용입니다. 수요일마다 만나게 될 글은 고국을 떠나오면서부터 썼던 일기를 걸터듬어 씁니다. 글은 잡스러울 것 같습니다. 사소하고 개인적이며 중언하고 부언하다가 가벼워질 테고 또 필요이상으로 무거울 수도 있을 테지만 어쩌겠습니까, 읽으셔야 합니다. 제 마음(편지) 이니까요. 속절없는 경계인, 낯선 나라에 살게 된 이방인, 외로움, 다른 체제, 다른 문화로 벌어진 웃지 못할 일들, 그리운 내 나라 산과 사람들, 자녀들의 교육, 무섭게 변화하는 사회와 경제, 역사적 배경 등 다양한 주제와 에피소드로 찾아 뵙겠습니다. 기해년 상반기는 [짙은 라오]를 주제로 라오스 이야기를, 하반기에는 [수요일에 떠나는 사이공]을 주제로 베트남 이야기를 풀어 내려 합니다.

언젠가 해질녘 휘어진 야자나무와 그 아래 벌거벗은 여인들이 춤추는 해변에 살아보리라 꿈꾸던 적이 있었지요. 실재하는 그곳을 열망했다기 보다 사위가 붉어지는 그 해변의 감미로운 하루와 그 여유가 제 마음을 흔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수요일, 제 글이 여러분들의 눈을 지긋이 감기고 여유의 속살로 데려갔으면 좋겠습니다. 남쪽하늘에 낄낄거리는 햇빛 한 오라기처럼. 

 

장재용

 -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8기 연구원, 월간 산 객원기자, 베트남 교민잡지 칼럼 필진

 -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등정, 북미최고봉 데날리(6,194m) 등정캐나다 록키산맥 단독종주

    백두대간 종주, 낙동정맥 종주 

 - 2016년 프로야구 NC다이노스 개막전 시구

저서) 딴짓해도 괜찮아 (비아북, 2017.10), 구본형, 내 삶의 터닝포인트 (유심, 2018.12, 공저)


변경연에서 알립니다 ---

1. [출간소식] 구본형, 내 삶의 터닝포인트(공저)
삶을 시처럼 살고 싶어하셨던 우리시대 대표적인 변화경영사상가, 구본형 선생님의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 후 이야기를 12명의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삶의 길을 찾는 이들을 위한 등대였고, 부지깽이이자 힐링 멘토였던 구선생님에 대한 간절한 사부곡이며, 자기변화에 대한 고백입니다.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구본형과 함께 새로운 삶을 찾고 싶은 분들께 일독 권해드립니다:

2. [팟캐스트] 『꿈꾸는 가방의 비밀』 박중환 작가 2편
변경연 팟캐스트 46번째 에피소드이며 시즌1 마지막 방송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 박중환 작가의 일, 삶,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제약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최고의 실적을 올리던 나날을 뒤로하고, 사표를 냅니다. 컨설턴트 회사에 이력서를 무턱대고 내보고, 보험회사에 입사합니다. 실적을 올리기 위해서 혼자서 고군부투하는 모습은 오늘날 모든 가장의 모습일겁니다. 영업은 아무리 팀이 잘짜여져 있더라도, 결국은 혼자 고민하고 실행해야하는 외로운 싸움입니다. 로이스님도 변함없이 자리해주셨습니다. 

3. [모집] <내 인생의 첫 책 쓰기> 15기 수강생 모집
터닝포인트 경영연구소 오병곤 대표가 2019년 상반기 <내 인생의 첫 책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할 15기 수강생을 모집합니다. 좋은 책은 진실한 책으로 땀과 진실에 충만한 책,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삶의 변화를 다짐하게 하는 책이라고 합니다. 기획, 집필, 퇴고, 출간하는 책쓰기의 전 과정을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인생반전을 위한 6개월 프로젝트로 책을 통해 삶의 혁명을 꿈꾸는 분들의 참여 기다립니다: 

IP *.55.193.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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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3 06:34:46 *.151.165.247

장재용님!

반갑습니다.

같은 필진으로 환영합니다.

엄청난 산악인이군요.

8848

말만 들어도 춥고 어지러운데...

재미있는 이야기 보따리를 많이 풀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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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8 18:45:58 *.161.53.174

선생님, 반갑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전, 포항 선생님 댁을 방문한 적도 있습니다.^^

선생님 글도 매주 흥미진진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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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3 08:51:20 *.102.1.24

안녕하세요? 장재용님, 

수요일 마음편지의 새로운 필진..기대충만입니다. 반갑습니다. 

1편만 읽었는데 다음여행지는 라오스로 가야 할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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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8 18:47:02 *.161.53.174

기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굿민님의 기대에 어긋나면 안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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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4 04:55:13 *.144.57.179

첫번째 글을 올리셨군요. 흥미진진합니다. 외국에 계시다보니, 어떻게 사시는지 구체적인 풍경이 궁금합니다. 간간히 사진도 올려주세요. 


다음글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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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8 18:48:17 *.161.53.174

연대님, 시장조사 차원에서라도 호치민에 들려주십시오. 변화경영연구소 호치민 주재원 사기진작 차원에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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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6 09:53:04 *.210.112.106

재용님- 새로운 필진이 되신것 축하드립니다!!

매주 수요일에 이젠 열혈 독자로 만나게 되겠네요~^^

<짙은 라오>,와 <수요일에 떠나는 사이공>을 기대합니다. 

축하드리고 기대하겠습니다!

멋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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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8 18:51:02 *.161.53.174

제가 참으로 걱정스러운 것은 '선배님의 반만이라도 따라가야 할 텐데' 입니다. 새로운 필진이지만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 더이상 "일상에 스민 문학"을 볼 수 없다는 아쉬움도 짙습니다. 선배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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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7 10:57:38 *.8.233.43

맘 편지를 글로벌 편지로 만들어주시는 후배님

먼 곳에서의 공헌과 동참, 감사합니다^^


올 한해 건강히, 맘편지와 함께 많은 행복 누리시기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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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8 18:54:04 *.161.53.174

동경해 마지 않던 금요 편지, 기질별 인생전환 로드맵의 주인공! 선배님과 한 배를 타다니, 올랄라. "진짜공부"는 감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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